![]() | ||
| ^^^▲ 송기원 <사람의 향기> 표지 ⓒ 창작과비평사^^^ | ||
"나는 글쓰는 일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곧장 지리산이며 계룡산 골짜기의 암자를 떠돌고, 때로는 히말라야 골짜기의 힌두 수도원이며 미얀마의 명상사원을 기웃거렸다... 눈 덮인 히말라야 골짜기에서는 바로 그 골짜기에 영원히 자신을 버려버리고 싶었고, 갠지스 강에서는 황톳빛 흙탕물 속에 자신을 버려버리고 싶었고, 힌두 수도원에, 명상사원에, 심지어는 지리산 어느 절간의 깊은 똥통에마저 자신을 버리고 싶었다."
<월행> <다시 월문리에서>의 작가 송기원(55)이 <인도로 간 예수> 이후 8여년 만에 네 번째 소설집 <사람의 향기>를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냈다. 이번 소설집은 고향을 무대로 작가 자신의 고단한 가족사와 고향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9편의 단편이 연작 형식으로 실려 있다. '끝순이 누님', '울보 유생이', '물총새 성관이', '헤조갈래', '바보 막둥이', '정애 이야기', '사촌아부지', '폰개 성', '양순이 누님'이 그것.
근데 왜 고단한 가족사인가? 작가가 살았던 시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었던가. 하지만 작가 송기원의 삶은 가난과 배고픔, 병고 등으로 점철된 그런 고단함과는 사뭇 다르다. 왜? 작가의 말에 나와 있는 그대로 "나는 사생아라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삶의 조건 때문에 저 어린 사춘기 무렵부터 도덕이나 윤리 따위에 시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 송기원의 고단한 가족사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이번 소설집에서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시대적 배경을 이루고는 있지만 작가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따라다니는 '나', 그러니까 일종의 화자에 불과하다. 이는 그동안 작가 스스로의 고단한 삶을 다룬 앞의 소설과는 달리 작가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삶을 그만큼 폭넓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향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저마다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다. 유난히도 큰눈에 흰자위를 희번덕이는 당달봉사 끝순이 누님이 나오는가 하면 억척어멈 '헤조갈래', 해창댁의 행려병자 아들 '바보 막둥이'가 나온다. 또 작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나온다. 유복자로 태어난 외사촌형인 '울보 유생이', 자식을 낳지 못하는 '나'의 의붓 아버지인 '사촌아부지', 아비가 다른 동복누님의 삶을 살고 있는 '양순이 누님'이 그것들이다.
'끝순이 누님'은 '나'(작가 자신)의 외가가 있는 '가메뚝'이라는 마을에 살았던 당달봉사 끝순이 누님에 대한 이야기다. 끝순이 누님은 소리와 냄새만으로도 사람들을 척척 알아맞히지만 마을 사람에게 겁탈을 당하고 만다. 그로 인해 끝순이 누님이 원치 않는 아이를 갖게 되자 끝순이 누님의 어머니 '당골레'는 그 충격으로 죽게 된다. 마침내 끝순이 누님마저도 마을을 떠나게 되고...
유복자로 태어난 외사촌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울보 유생이'는 그 스스로도 사생아였던 송기원 문학의 비밀이 숨어 있다. 소설 속의 '나'(송기원)는 말한다. 어릴 적부터 친척집에 얹혀 눈칫밥을 얻어먹던 울보 유생이, 어려운 일만 생기면 무작정 울고 보는 그런 유생이가 밉기만 하다. 그런 어느날, 유생이가 생모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 '나'는 일종의 동류의식을 느낀다.
'울보 유생이' 속의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사생아이자 가난한 장돌뱅이인 나의 출신성분에 대한 자학적인 고민을 한다. 사생아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음습하고 더러운 밑바닥에 자리잡은 하찮은 존재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울보 유생이나 '나'나 둘다 꼭같은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때 나는 최초로 문학이란 것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마치 작가 자신의 은밀한 고백처럼 말이다.
'사촌 아부지'는 '나'의 의붓아버지다. 하지만 사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사생결단으로 치닫던 그 싸움의 대상은 바로 '나' 이다. 그래서 '나'는 사촌 아버지의 폭력성과 그 무시무시한 공포가 결국 나로 인해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촌 아버지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외에도 폐병쟁이 성관이의 이야기를 다룬 '물총새 성관이', 문둥이의 딸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살아온 정애와의 재회를 다룬 '정애 이야기', 작가 송기원의 삶의 이력이 생생하게 담긴 '폰개 성' 등도 작가 송기원 특유의 체험과 그 체험 속에서 천천히 발효되는, 마치 묵은 간장맛과 된장맛 같은 송기원 문학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다.
"다른 작가들은 이미 데뷔하는 순간부터 아예 문제삼지도 않았을 자의식 따위에 쉰이 넘도록 매달려 있다가 고작 이제야 자유로워진 주제에, 그것도 무슨 자랑거리라고 주절대고 있다니! 그러나 어쩌랴. 나는 내 안에 저렇듯 선명한 빛깔로 내 이웃사람들의 삶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신비하게까지 여겨지는 것을"
![]() | ||
| ^^^▲ 이종찬 ⓒ 작가 송기원^^^ | ||
작가 송기원은 누구인가?
1974년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동시 당선
"자의식은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하여 단색(單色)만을 강요한다...자의식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어쩌면 나는 바로 그 자의식이야말로 눈물겨운 자기표현이며, 더없이 소중한 생명의 에너지라는 것을 깨달았을 터이다...그렇듯 자의식에서 자유로워지다 보면, 아아, 내 삶의 어느 하나 눈부신 보석 아닌 것이 있으랴"
작가 송기원은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경외성서'(經外聖書)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 가 함께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월행(月行)>(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가 있으며, 장편소설로는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여자에 관한 명상>(1996) <청산>(1997) <안으로의 여행>(1999) <또 하나의 나>(2000)가 있다.
시집으로는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1983) <마음속 붉은 꽃잎>(1990)이 있으며, 1983년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혜받았다. 1993년에는 제24회 '동인문학상'을, 2001년에는 제9회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