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부모님의 직업을 묻는 게 가장 싫었다. 부모님은 각종 노동에서부터 운전수, 행상, 노점상, 동전장사, 넝마장사, 미군장사 등 별의별 직업을 다해보며 살았다. 그러다 삼청동 무허가집이 철거되고 신촌으로 이사와서 당구장을 하게 됐다. 당구장은 지금의 신촌 현대백화점 맞은편에 있는 3층 건물의 3층에 있었다. 이름이 처음에는 아카데미 당구장이었는데, 나중에 신촌 당구장으로 바뀌었다. 당시의 모든 건물들이 다 재개발 재건축되었음에도 유독 그 건물만 그대로 남아있다. 현대백화점 자리가 과거에는 신촌시장이었고, 그 옆으로 지금은 복개된 개천이 흘렀다.
처음엔 당구대가 9대 였는데 이내 7대로 줄었다. 아버지가 또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서주어 마포 한강변에 있던 집이 남에게 넘어가버렸다. 그 바람에 당구대 2대를 줄이고 그 자리에 방 2개짜리 살림집을 들여놓고 살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구장 집 아들이 된 덕에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당구를 쳤다. 처음엔 재미로 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재미로만 치는 게 아니었다. 가끔 혼자서 온 손님들 때문이었다. '누구 같이 칠 사람 없어요?' 그럴 때 가끔 내가 불려나갔다. 처음엔 '뭐, 이런 어린 애랑 쳐?' 하던 손님들 중에 나만 찾는 사람도 생겼다. 그러나 문제는 깽(게임) 값이었다. 내가 지면 돈을 못 받는 거였다. 나만 찾은 인간은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손님이 한산할 때는 괜찮은데, 치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손님이 꽉 차버리면 큰일이다. 벌 수 있는 돈을 못 벌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도 속이 바싹바싹 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그 때 생계형 당구를 친 거였다.
그 당시는 제2 한강교(지금의 양화대교)가 막 생겼을 때였다. 신촌은 건물 몇 개가 듬성듬성 있었고, 아직도 그 일대가 대부분 호박밭이었다. 60년대 말이라 사회질서가 엉망이고 치안이 불안했다. 당구장은 소위 동네 깡패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이들이 당구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그런데 그 때마다 이들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쫒겨났다. 아버지는 고향인 전라도 광주에서 유명한 건달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신촌 일대의 건달들이 떼 지어 나타났다. 아버지를 집단보복하러 온 거였다. 그 상황에 우리 가족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하자는 어머니를 말리며, 이들을 인근의 공터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몇 시간이고 연락이 없었다. 어머니는 거의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밤이 늦어서야 아버지가 술이 몹시 취해 나타났다. 사지가 멀쩡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었다. 좀 전에 데리고 나간 깡패들이 다 따라 들어왔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아버지를 '형님, 형님' 하며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졸지에 신촌 깡패들의 오야붕이 됐다.
이 깡패 삼촌들이 나를 몹시 예뻐했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 한 유망주였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두언아, 너는 커서 검찰총장이 될 거야. 그 때 우리가 잡혀 들어가면 네가 잘 봐주어야 한다.' 신촌 주변에 신영극장과 대흥극장이 있었다. 당시는 쑈가 인기있을 때여서, 쑈 공연이 벌어지면 이들 극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만원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라도 무상출입할 수 있었다. 깡패 삼촌들은 나를 목마 태우고 자전거 체인을 빙빙 돌리며 늘 유유히 입장하곤 했다. 이 삼촌들은 나중에 늙어서도 아버지 생일날엔 우리 집에서 꼭 모였다. 지금도 선거 때가 되면 이미 할아버지가 된 삼촌들이 나를 돕는다고 선거 사무실에 모인다.
우리 또래는 대학생 무렵에 당구들을 배웠다. 그리고 곧 미쳤다. 하지만 그 때 나는 당구가 너무 싫었다. 생각해 봐라. 빵집 아들이 빵 좋아하겠는가. 어쩌다 당구장엘 가면 난 허풍을 떨었다. 천 다마가 어떻게 네깐 놈들이랑 같이 치냐고. 그러면서 왼 손으로 이백을 놓고 쳤다. 하지만 이게 다 사기였다. 사실 난 초등학교 때 이백을 치고 아직도 이백이다. 나도 처음에는 왜 이렇게 당구 실력이 안 느는지 의아했다. 그러다 한참 후에 알았다. 나는 왼 손잡이가 아닌데도 왼 손으로 치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아마 내게 처음으로 당구를 가르쳐 준 사람이 왼 손 잡이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내 지인들은 아직도 내가 천 다마라고 굳게들 알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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