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세종 온양행궁에 대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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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세종 온양행궁에 대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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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은 역대 국왕들이 가장 선호하는 최고의 왕실온천지, 온궁의 건립과 축조, 운영이 조선말까지 지속된 곳은 온양 유일

▲ 지난 6월 28일 오후6시 아산시에 위치한 해링턴호텔에서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가 ‘세종 온양행궁에 대한 재조명’을 주제로 열린 역사포럼에서 김일환 교수가 주제발표에서 1906년의 대원군 별장 탕실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타운

아산의 ‘온양행궁(溫陽行宮)’이 대원군 집권시절에 온천별장으로 쓰였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새로 발견된 사진(하단, 1906년 촬영)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소장 이영관)가 지난 28일 오후 6시 아산시에 위치한 해링턴호텔 2층 회의장에서 ‘세종 온양행궁에 대한 재조명’을 주제로 열린 포럼의 주제발표에서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김일환 아산학연구소 교수는 “당시 사진은 주 일본 독일대사관 무관인 보병중위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Hermann Gustav Theodor Sander, 1868~1945)가 1906년 8월 러일전쟁 격전지 조사를 위해 사할린을 시작으로 9월에 한국을 방문해 한반도의 변화 확인 차 일본사진사와 동행해 온양을 지나가면서 촬영해 보관해 오던 것을 손자 슈테판 산더(Stefan Sander)가 2004sus 한국에 기증한 것으로 여러 사진 가운데 첫눈에 온궁 관련 사진임을 알고 발견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동안의 연구자료와 함께 ‘온궁’을 입증하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 교수는 ‘세종 온양행궁에 대한 재조명’에 대해 보다 상세히 발표했다. 역대 조선왕실의 온행기록을 살펴보면 1483년 세조의 정희황후는 57일간 체류했고 1750년 영조는 8일간 머물렀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김 교수는 “온천욕치료가 통상 10일 이상 장기간 머물기 때문에 국왕의 임시거처로 행궁을 건축, 이것을 온궁(溫宮)이라고 하는데, 국왕이 찾아가는 온천마다 행궁을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온양은 역대 국왕들이 가장 선호하는 최고의 왕실온천지였기에 온궁의 건립과 축조, 운영이 조선말까지 지속된 곳은 온양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온양온천의 역사는 서기 18년 백제 온조 대왕때 ‘탕정(湯井)’이란 지명이 나오면서 시작됐고, 통일신라 때 성덕왕(712), 고려시대에 문종(1082)이 찾을 정도로 역사적 유래가 깊다”며 “온천지로써 확대된 것은 조선 초기 태조부터 조선 말기 대원군까지 국왕을 비롯한 최고 권력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온천지가 됐고 특히, 세종이후에는 왕실가족들까지 찾는 최고의 온천장으로 자리 잡아 역대 국왕과 그 가족들이 수시로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찾아 왔고, 이것이 이 지역의 독특한 온천문화를 낳은 바탕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 1906년의 대원군 별장 탕실 사진 ⓒ뉴스타운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온양행궁의 축조를 감독하면서 본인이 직접 설계도를 확인하고 백성들에게는 민폐가 될 것을 우려하여 규모를 작게 만들도록 조처하고, 왕실의 온천행은 간헐적이어서 비워두는 시간에는 일반백성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애민정신을 보여 주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정유재란때 왜병이 온양지역을 급습하자 불타고 폐허가 되었다. 조선후기 국왕의 온천행이 재기된 것은 현종때 온양행궁을 다시 복구하여 어실 6칸, 탕실 6칸, 草舍를 비롯한 약 1백여 칸으로 복원되었다. 이후에 숙종, 영조, 사도세자까지 4대에 걸쳐 국왕의 온양온천행은 활발해 졌으며 신정비각이 세워지고 아산지역에 독특한 온천문화를 형성했다.

특히, 사도세자를 마지막으로 국왕과 왕실가족의 온행은 중단되었지만 정조가 부친인 사도세자의 추억의 장소인 온궁에 ‘영괴대’를 설치하고 영괴대비를 세우는 등 각별한 관심을 두어 관리했다.

1834년(순조34) 온양에 온 조수삼(趙秀三)의 ‘온정기(溫井記)’에 의하면 이 무렵에 행궁은 비록 낡기는 해도 욕실건물이 완전하게 유지되고 있었고 1871년(고종8)에는 국왕이 정무를 보던 정전(正殿)은 없어졌지만 함락당, 혜파정이 신축되고 대원군이 온천행을 하는 등 여전히 잘 유지되었으나, 1904년부터 일인들에 의해 온궁이 침탈되어 을사보호조약 이후에 일인들의 손에 넘어가고 온양관(溫陽館)이 지어지면서 온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환 아산학연구소 교수는 “온양온천은 세종이 가난하고 병든 백성을 돕기 위해 온천을 통한 복지정책을 실천하던 현장이며, 지방인재 선발을 위한 문,무과 실시 아산 인근에서 국왕이 행했던 사냥과 같은 레저 활동, 온행 중에 아산지역을 대상으로 지어진 많은 시문(詩文) 등의 문학작품들이 아산지역 온천문화의 자산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며 “아산은 타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한국온천문화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관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장은 “그동안 연구소에서 다뤄진 지역의 다양한 학술연구 가운데 ‘온양행궁에 대한 학술연구’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됨에 따라, 지역과 연계된 역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면서 이 분야에 대한 고증과 복원 등 학술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포럼에서 다루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 “온양이 한국 온천문화의 메카라고 불리는 것은 온양행궁이 있어서 붙여졌다고 본다”며 “포럼을 통해 온전히 복원되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기승 순천향대 인문학진흥원장은 “종전에는 포럼이 ‘사랑방’처럼 스터디그룹 형태로 운영되어 왔는데, 오늘은 좀 더 크게 확대된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며 “새롭게 비젼을 재정립하고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에는 지역 향토사학자, 문화유산 해설사, 관련 공무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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