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여당(女黨)의 잠자리 거부 성명
스크롤 이동 상태바
[제38화] 여당(女黨)의 잠자리 거부 성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우 연재소설 응답하라2017] "수사본부에서 허연나 총장을 소환했는데요"

"허연나 총장이 오혜빈 당선인을 직접 만나 지시를 받았다면, 오혜빈 당선인은 왜 숨어 있는 것입니까?"

주경진이 추 탐정의 진의를 알려고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추 탐정의 뇌 속에는 시집 안간 노처녀 외동 딸 나미의 우는 모습만 보였다. 나이가 마흔은 넘었을 나미가 왜 울고 있을까?

"나미한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주경진의 다급한 질문에 추 탐정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어?"

"그 알량한 미완성 독심술 또 발휘한 것이지요."

문지수가 웃으면서 주경진을 쳐다보았다.

"독심술? 심술치고는 어설픈 심술이군. 실은 뒤팽이 어제 죽었다네."

추 탐정이 갑자기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뒤팽이 죽었다구요? 뒤팽이야 1840년대 에드거 앨런 포우가 만든 프랑스 청년 탐정인데 이제 죽다니, 무슨 말씀인지..."

문지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미가 아끼던 반려견이야. 강아지 홈즈를 낳아준 엄마 시추종인데 나이가 열다섯은 됐을 걸."

주경진이 설명을 해주었다.

"폐암에 걸려 동물 병원에 한 달 동안 입원해 있다가 그제 밤에 죽었다는 통보를 받고 이틀째 식음을 전폐하고 울고만 있어."

"노처녀의 유일한 친구였는데... 잘 위로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주경진의 말에 추 탐정의 눈이 물기에 젖었다.

한참 만에 주경진이 분위기를 바꿀 양으로 말을 꺼냈다.

"허연나 총장과 오혜빈 후보가 서로 짜고 하는 짓이 아닐까요?"

"말도 안 돼요.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합니까?"

문지수가 반박했다.

"극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 온 세상의 관심을 집중시킨 뒤에 취임식 날 짠하고 나타날 수도 있지."

"지금 연속극 쓰는 거예요? 짠은 무슨 짠!"

"허연나가 납치극 주모자일 수도 있지. 주모자가 아니면 최소한 관련자일 수는 있어. 김마리 사건 현장에 나타났고, 오혜빈 당선인 실종 현장에도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숨겼다는 것이 수상하단 말이야."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수사기관이 몰랐을 뿐이지요."

주경진이 추 탐정의 말에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허연나 총장이 오혜빈에게서 받았다는 총리 지명 같은 지시 사항의 경로를 설명하지 않고 있는 건 무슨 속셈일까?"

추 탐정이 주경진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수사본부에서 밝혀내야 할 사건입니다. 아마도 허 총장이 꾸며낸 일일지도 모릅니다."

"허 총장이 꾸며낸 일이라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추 탐정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죽이려는 것이지요."

문지수가 불쑥 말했다.

"죽이다니?"

"정치적으로 매장하자는 뜻이지요. 정적을 최측근인 양 총리로 지명해서 정문오 의원의 정치적 생명을 끊으려는 것일 수도 있지요. 제 생각에는..."

주경진이 침을 한번 삼키고 나서 말을 이었다.

"오혜빈 후보가 끝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재선거가 실시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여당에서는 허연나가 가장 유력한 대통령 출마자가 되고 남당에서는 공대성이 출마하겠지만. 하지만 공대성은 패장이기 때문에 다시 후보가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문오가 후보로 나올 것은 명확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정문오를 미리 흠집을 내 놓는다면 허연나는 아주 편하게 이길 수 있지요. 적장인 오혜빈 후보와 내통하고 있는 정문오를 정치적으로 죽이려는 묘수가 될 수도 있지요."

그때였다. 문지수의 핸드폰에 문자가 떴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문지수가 약간 긴장했다.

"수사본부에서 허연나 총장을 소환했는데요."

"음, 이제야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군."

추 탐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본부에서 여섯 시간 동안 심문을 받은 허연나 총장이 수사본부 문을 나서자 모여든 모바일 기자 수백 명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무슨 진술을 했습니까?"

"오혜빈 당선인에 관한 수사를 받은 것입니까?"

"오혜빈 당선인은 살아있다는 것이 맞습니까?"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허연나 총장은 딱 한마디만 하고 차에 올랐다.

"수사본부에 물어보세요."

허연나는 당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수사본부에 갔다 온 것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고 다시 놀랄 만한 발표를 했다.

"오혜빈 당선인은 대선 공약의 가장 중요한 대목인 정치개혁에 대해 지시를 했습니다. 국회를 폐쇄하기 위한 절차를 밟으라는 지시였습니다. 따라서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 절차에 들어갈 것입니다. 늦어도 2018년 6월 이전에는 국민투표로 국회를 폐쇄하고 직접 민주주의가 이땅에서 실현되도록 절차를 밟겠습니다."

발표가 나자 전국이 벌집 쑤신 듯 들끓기 시작했다. 남당을 비롯한 군소 정당들이 격렬한 성명을 내고 군중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여당을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오혜빈을 탄핵하라!"

많은 시민단체들도 격렬한 성명을 내놓았다. 촛불 집회도 열렸다. 그와 반대로 국회를 없애자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싸움터가 된 국회를 유치원생 놀이터로 만들자!"

"국회의원이 낭비하는 비용으로 오락 영화를 만들자."

"국회 예산으로 전국에 국립 노래방을 만들자."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국회 폐지를 찬성하고 나섰다. 연일 시민단체 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허연나의 발표가 있은 지 사흘 만에 국회 폐지 국민투표를 둘러싼 찬반 집회는 마침내 충돌을 일으켰다.

광화문, 서울 시청 광장, 여의도 광장에서는 결렬한 충돌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경찰력을 어마어마하게 동원했지만 충돌을 막기는 어려웠다.

시위 나흘 째 되던 날 여당의 젊은 당원들이 희한한 제안을 했다.

"국민 투표 절차가 시작될 때까지 우리 대한민국의 여당 당원을 비롯한 모든 여성은 남당에 대항해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 여성은 단결하여 남자를 굴복시킵시다. 국회 폐쇄 국민투표가 실시될 때까지 남자들과의 잠자리를 거부합시다. 대한민국 여성 만세!"

이런 성명이 나오자 마침내 모든 여자 유권자들이 박수를 치고 나섰다. 일부 남성들도 동조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도 남자를 거부한다!"

여러 단체가 잠자리 거부 찬성 성명을 내놓았다. 특히 성매매로 지탄 받던 직업여성 단체도 성명을 내놓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인 멸종사태가 올 거야."

"아이를 못 만들게 하다니."

"오래 살다 보니 별 걸 다 무기로 삼는구먼."

잠자리 거부 시위는 엄청난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계속)

[이상우 연재소설 응답하라20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