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단일화는 여자한테만 물어봐라
스크롤 이동 상태바
[제23화] 단일화는 여자한테만 물어봐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우 연재소설 응답하라2017] "남자뿐인 당원 조직이 겁나서 그러는 것입니까"

추병태 탐정은 라면 한 그릇을 순식간에 해 치우고 손으로 입술을 쓱 문질렀다.

"그래, 무슨 사건이냐?"

추 탐정이 50년은 썼을 법한 낡은 구식 녹음기를 틀면서 말했다.

"녹음을 하십니까?"

"응, 내가 컴퓨터가 서툴러서 기록을 하기 쉽지 않거든. 이놈은..."

추 탐정은 녹음기를 한참 노려본 뒤 말을 이었다,

"이놈은 내가 경감으로 승진했을 때 청장님이 하사하신 거라. 청장님은 새 것으로 하나 구비했지. 그때부터 30년을 나하고 같이 사건현장에서 뛴 동지라네."

추 탐정은 딸깍 소리까지 크게 나는 녹음기 스위치를 눌렀다. 칩이 아닌 테이프가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요즘은 모바일로 녹음뿐 아니라 영상 녹화까지 할 수 있는데, 이런 구닥다리를 쓰시니 얼마나 불편하십니까?"

"그런 말 말게. 이게 나한테는 꼭 맞아. 나는 핸드폰 같은 것도 없다네."

"예? 핸드폰이 없다고요? 그럼 전화는 어떻게 거세요?"

추 탐정이 고물 컴퓨터 옆에 놓인 유선 전화기를 가리켰다.

"어서 용건부터 말해보게, 우선 사건 제목을 붙여야 하는데 무슨 살인사건이라고 할까? 요즘은 성폭행 살인 사건이 많으니까..."

"그런 건 아니고요. 사건 제목을 붙이자면 '대통령 후보 자동차 폭발 사건'이라고 할까요?"

이야기를 듣던 추 탐정이 눈을 크게 껌벅였다. 젊은 시절부터 큰 눈 가장자리에 주름이 많이 잡혔는데 이젠 완전히 주름이 윗볼까지 잡혔다.

"그럼 대통령 후보가 죽었나? 누구야? 오혜빈인가, 공대성인가, 아니면 양천수인가?"

"죽거나 다친 건 아니고요. 그냥 차만 좀 망가졌어요."

"뭐야? 그럼 살인 사건은 아니란 말이지?"

추 탐정이 몹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예. 공대성 후보의 자동차에 폭발 장치를 하고 암살을 기도했는데, 마침 공 후보가 타고 있지 않을 때 폭발물이 터져 무사했습니다."

주경진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한참 듣고 있던 추 탐정이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을 정치 테러라고 하지. 군사정부나, 독재 정부 시절에 많이 있던 일인데, 그런 것은 탐정이 할 일이 아니네."

"살인미수 사건인데 흥미가 없으세요?"

주경진은 당황했다. 어떻게든지 추 탐정을 엮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의 남당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려던 사건입니다.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사건인데 경감님 같은 베테랑 탐정이 맡아야지 누가 하겠습니까?"

"글쎄 그건 정치 테러라니까. 난 정치하는 사람들은 사람으로 생각하지를 않네. 갸루상 말이 아니라도 그들은 '사람이 아니므니다'야."

"그럼 공 후보가 죽었다면 맡으셨겠네요."

"물론이지. 그건 살인사건이잖아. 모르그가 살인사건, 그린 살인사건,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이런 것처럼 대통령 후보 살인사건이지."

"이 사건이 공대성 후보의 자작극이라는 소문이 퍼져 공 후보가 아주 곤경에 처해있습니다.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정치적인 음모를 밝히는 것이 이 세상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주경진이 열을 올리며 추 탐정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 세상을 바로잡을 생각이 없네. 그건 나보다 더 위대한 정치인들이 할 일이고. 나는 살인범이나 잡는 게 천직이지."

그 말은 추 탐정의 진심인 것 같았다. 주경진은 낭패한 표정으로 딱딱한 나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커피 생각나면 내가 한잔 타 줄게."

추 탐정은 거절한 것이 미안한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주경진은 추 탐정에게 거절당하고 힘없이 대선 캠프로 돌아오다가 모바일에 뜬 양천수의 돌발 회견을 보았다.

"나는 남당(男黨) 대통령 후보인 공대성 후보에게 후보자 단일화를 제안한다."

오혜빈과 단일화 협상을 할 것이라는 정계와 언론계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단일화 방법으로 어떤 제의를 할 것입니까?"

어느 모바일 기자가 물었다.

"우리나라 유권자 중 여자만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해서 이긴 쪽이 단일 후보로 나가는 방식입니다."

양천수의 또 한 번 예상을 뒤엎는 발언에 모두 어리둥절했다. 이어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양천수 후보는 남자 아닙니까? 그리고 공대성 후보도 남당의 대통령 후보이고요. 그런데 왜 여성 유권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자는 것입니까?"

같은 내용의 질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남자 유권자들이야 모두 뻔하지 않습니까? 누가 되든 단일후보 된 사람에게 투표할 테니까요. 하지만 여자 유권자는 모두가 오혜빈 후보를 찍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혜빈 후보와 양자 대결을 했을 때 여자 표를 따야 당선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뻔한 이치를 왜 모르십니까? 그러니까 여자 유권자 1만 명에게 여론을 물어 이긴 사람이 단일 후보로 나가는 겁니다."

"공대성 후보가 정당 공천을 받았으니까 당원들, 즉 남자뿐인 당원 조직이 겁나서 그러는 것입니까?"

온종일 단일화 문제로 모바일 언론이 시끄러웠다.

양천수의 폭탄 제안을 두고 곤혹스러운 것은 오혜빈 후보나, 공대성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공대성 캠프에서는 그 제안을 일축해 버리고 싶은데 그럴 때 역풍이 불어닥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양천수는 국회 해산, 모바일 행정 등 첨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공약을 많이 내 놓았다. 따라서 비록 남녀로 구분된 기상천외의 정당 제도를 택했다고는 하지만 정당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는 구태 정치의 표본으로 몰린 상태가 아닌가. 만약 정당 배경이 없는 양천수와 대결했을 때 양천수 말대로 여성 유권자들이 젊고 파격 공약을 많이 쏟아놓은 양천수를 택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었다.

곤혹스럽기는 오혜빈 캠프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공대성이 양천수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대선 캠프 핵심 멤버 회의에서 오혜빈 후보는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양천수의 느닷없는 돌발 행동에 공대성 후보는 똥 밟은 기분일 것입니다."

김마리 의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양천수가 이길 것입니다."

허나연 사무총장의 의견이었다.

"여자 유권자를 대상으로 후보를 정하자는 것은 양천수의 실수입니다."

일주일 전부터 대선 캠프에 합류한 인기 소설가이며 대학 교수인 마광숙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혜빈이 물었다. 오혜빈은 마광숙을 캠프에 끌어들이기 위해 몇 달 동안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왔다. 마광숙 교수에게는 미소를 잃지 않으며, 언제나 공손한 말투였다.

"생각해 보십시오. 눈알이 등잔 같은 남자 유권자들이 버티고 있는데, 다른 생식기 보유자인 여자한테 가서 물어보고 정하자고 하면 가뜩이나 공처가 콤플렉스에 젖어 있는 한국 남자들이 질투 나고, 화나고 하지 않겠습니까? 남자 무시, 남편 무시, 총각 무시, 그래서 생식기가 팍 죽을 것 같은 이런 감정을 어떻게 수습하겠습니까?"

양천수의 돌발 제안으로 '공대성 자동차 폭발 테러 사건'은 묻혀버리는 듯했다. 모든 모바일들이 양천수와 공대성의 단일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며칠 못가 또 다른 돌발 사건이 대선 정국에 충격을 주었다.

(계속)

[이상우 연재소설 응답하라20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