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전에 폴란드 자유노조연대를 통해, 구 소련 고르바초바의 만남을 통해 동구권 냉전 종식에 불을 지피며 20세기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다. ⓒ www.catholic.org^^^ | ||
가톨릭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선종(선생복종 善生福終의 준말로 선하게 살다가 대죄없이 복되게 끝 마친다는 말로 가톨릭에서는 직제, 직위에 관계없이 사용하는 말)에 끝 없는 애도를 표하며, 그의 부활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일반인에 공개
화면에 최초로 비친 교황의 시신은 바티칸 프레스코 기법의 교황 궁에 안치돼 있었으며, 로자리오(기도에 사용하는 묵주)를 꼭 잡고, 그의 팔 아래에는 교황이 평소 쓰던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또 그에게는 크림색의 제복이 입혀져 있었으며, 희색의 주교관(교황이 의식 때 쓰는 관)을 쓰고 있었고, 그의 머리는 금빛 베개를 베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외교관, 사제들, 정치가 등이 그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성 베드로 광장에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인파가 모여들어 손에는 묵주를 들고 교황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또, 그들은 고인의 초상화를 들고 '사랑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지난 일요일 새벽 교황의 선종이 확인되자 로마에서는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나돌았다. 그 메시지는 “그가 신께 가실 수 있는 길을 모두 촛불로 밝힙시다”였다고 <에이피통신>은 전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455년 만에 최초로 비 이탈리아인으로 최연소의 나이인 58세에 교황 직에 올라 그전까지 보수 일색의 전통을 무너뜨렸다. 그는 이혼, 낙태 및 산아제한에 대해 반대를 해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으나, 재임 27년 동안 전 세계 129개국을 돌명 참여하는 교황의 이미지를 보여 줌으로서 우리 세계가 안고 있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 가톨릭 교계의 수장이라는 한계를 뛰어 넘어 세계의 지도자로서 이미지를 구축했다.
동구권 냉전 종식에 큰 기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념의 갈등으로 점철됐던 20세기 세계 정치사에도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나치의 폭정을 경험을 그는 1978년 교황에 취임한 다음 해 조국 폴란드를 방문, 라흐 바웬사가 이끌던 솔리다리티(자유노조연대)에 지지를 표명하면서부터 동구권 해체의 첫 단추를 끼웠다.
또 그는 1989년 당시 개혁이라는 의미의 페레스트로이카(Presttroika)와 개방이라는 글라스노스트(Glasnost)를 주창하던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역사적인 만남을 통해 그때까지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는데 성공했다.
그는 최근에 들어서 냉전이 사라지고 세계 유일 강대국이 된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해서도 주저 없이 쓴 소리를 냈다. 또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며 전쟁 피해를 막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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