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필립제슨 재필의 커리커쳐 ⓒ 뉴스타운 | ||
지금까지 우리는 필립제슨 재필이 아주 훌륭하고, 독립협회, 독립문, 독립신문을 창간한 위대한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왜역적들이 꾸며낸 거짓 말입니다.
재필은 1864.11.20에 나서 19세까지 조선사람 서재필로 있었습니다. 당시 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서 6대신을 죽인 갑신5적(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중의 한 사람 이었습니다. 그 뒤 미국으로 달아나서 필립제슨이란 이름으로 일본지령을 받은 일본간첩으로 의혹을 지닌 채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 하여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건양 1) 2월 11일부터 약 1년간 왕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관에 옮겨 거처한 사건이래, 조선이 일본굴레에서 벗어나서 왕권을 회복하려는 운세에 있었으나, 흉물 간첩 같은 필립으로 말미암아 다시 망할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각설, 갑오년(1893년)에 생긴 부왜(附倭)내각인 김홍집내각은 을미년1895년 5월10일 미국사람 필립제슨을 외부협판(차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내부대신 유길준이 국고금 5천원을 미국에 있는 필립에게 송금하면서 그 돈으로 조선에 나와서<신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필립은 일본에 머물면서 신문 만드는 기계를 주문해 놓고,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그로부터 1개월 후 홍집은 분격한 서울 군중들에게 맞아죽었고, 길준은 일본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필립은 동지를 잃게 돼 외롭게 됐습니다. 필립이 비애왕(悲哀王)이 내린 추방령을 받기 2년 동안 한 일은 ‘독립신문 만들기’, ‘독립협회 만들기’, ‘독립문세우기’였습니다.
고종 시대 나타났던 <독립신문>은 이렇듯 국고보조에 따른 어용신문으로 출발, 고종33년(1896)병신년 4월7일부터 시작하여 고종36년(1899)기해년 12월4일까지 3년 9개월 동안 한성에서 모두 776호를 내었습니다. 초대사장이 필립제슨 재필이었고, 2대 사장이 윤치호였으며, 3대 사장이 앰벌레였습니다.
그럼 독립신문이 어떤 신문인지 알아보아야 됩니다, 독립신문은 토왜의병(討倭義兵)을 두고 한결 나쁜 놈(匪徒)이라고 지껄이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독립신문>이 왜노(倭虜) 앞잡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노를 물리쳐서 국권을 회복하자는 사람이 곧 토왜의병입니다. 의병이란 근왕병(勤王兵)으로서 임금을 도우는 군대입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절대권자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의병이 되는 기본자격입니다. 임금이 해산하라고 하면 울면서라도 해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의병입니다.
임금이 해산하라고 했는데도 해산하지 않는 것이 난동꾼입니다. 지난 날에 있어서 토왜의병들과 동학꾼들 사이에 있어서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임금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던 것이 동학교도 였습니다. 고종 시대 토왜의병을 밝힘에 있어서 <독립신문>은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다음은 독립협회에 대한 글입니다
독립협회1기 필립과 안경수시절
고종33년(1896)병신년7월2일부터 무술년(1898)2월26일까지 사이가 필립과 안경수 시절의 독립협회가 됩니다, 고문이 필립이요, 회장이 안경수요. 회계 또한 경수요. 위원장이 완용입니다. 위원으로는 김가진, 김종한, 민상호, 이채연, 권재형, 현홍택, 이상재, 이근호요, 간사원으로는 송헌빈,남궁억, 심의석, 정현철, 팽한주, 오세창, 현제복, 이계필, 박승조, 홍우관이었습니다
독립협회2기 필립과 완용시절
고종35년(1898)무술년 2월27일부터 그해 5월13일 까지 사이가 필립과 완용시절의 독립협회가 됩니다. 고문이 필립이요 회장이 완용, 부회장이 윤치호요, 회계가 이상재, 윤효정, 서기가 남궁억이요, 제의가 이근호, 정교, 양홍묵입니다.
독립협회3기 윤치호와 이상재 절
고종35년(1898)무술년 5월14일부터 그 해 10월6일까지 사이가 윤치호와 이상재시절 독립협회가 됩니다. 회장이 윤치호요, 부회장이 이상재입니다. 서기가 박치훈. 한민용, 회계가 이일상입니다. 이 무렵 모든 협회를 해산시킨다는 임금조칙이 내려진 것이 고종35년 무술년11월8일이었습니다.
윤치호가 독립협회회장이 되기로는 고종35년 8월28일이었는데, 그가 회장대리를 한 것이 그해 3월11일부터였습니다. 그것은 회장 이었던 완용이 그 해 3월11일에 전라북도관찰사로 임명됐기 때문에 부회장이었던 치호가 직무대리를 맡았던 것입니다
독립협회4기 일본인 회원
어느 나라 사람이든 돈만 내면 회원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인 회원이 나오게 됩니다. 일본인 ‘고하’가 독립협회 회원이 된 것인데 그에 따른 기사가 다음과 같습니다.
일요일(1898.6.5)독립협회 회원들이 모여 토론하는데, 본회에 명예회원 일본의사 고하송씨가 연설하기를 "내가 일본사람으로 대한독립협회 회원에 들었으니 여러 회원네가 혹 나를 의심하실 듯 하기에 이에 설명하오니, 그리들 아시요.
내가 근본 일본사람으로 대한에 와서 사오년 수초를 먹으니 일본은 곧 나의 제1고향이요, 대한은 곳 나의 제2고향이라. 내가 어찌 대한을 한갓 남의 나라로 여기리오. 기간에 듣고 본즉, 층의가 있는 제공께서 나라를 위하여 자주독립의 기초를 견고케 하시고 백성을 위하여 문명부강의 사업을 면려토록 하시기에 내 비록 외국 사람일지라도 흠향하는 마음으로 이 회중에 들어 왔소.
지금 동서양 호랑이들이 서양서는 다 먹고 더 먹을 것이 없는고로, 우리 동양으로 와서 큰 고깃덩어리를 보고 욕심을 내여 삼켜먹으려고 입에 침을 질질 흘리는 모양이니, 동양형세가 어찌 위급치 아니하리오.
대한 .일본. 청국은 동양에 가장 중요한 나라로 인종이 또한 같은 동포형제라. 청국이 망할 지경이면 대한과 일본이 협력하여 구원하겠고, 일본이 망할 터이면 대한과 청국이 구원하겠으니 비유컨대 한 동리에 세 사람의 집이 있는데, 한! 사람의 집에서 불이 나거나, 도적이 들면 그 이웃에 사는 두 사람의 집에서 어찌 무심히 문만 닫치고 있어 그 한사람의 집에서 화재와 적환을 혼자 당하게 하리요.
그러한즉, 불가불 한. 일. 청 삼국 인민이 이제는 잠들을 깨고 모두 동심합력 하여 서양호랑이의 환될 것을 방비하여야 옳겠소"하였다니, 외국사람도 층의 있는 이는 남의 나라에 와서도 구국 애민하는 목적에 이렇게 열심으로 향하는데, 하물며 대한신민 되고야 우리나라의 자주독립하는 권리와 우리 동포형제의 문명부강하랴는 사업에 어찌 추호인들 번홀이 여기리오.
아무쪼록 일심애국하야 세계만국의 고등대접을 받도록 힘들을 쓸지어다.(독립신문3:1898년6월7일잡보,쪽259)”
이 글을 실었던 때가 윤치호사장 시절이었습니다. 이때 치호가 독립협회 회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경술년에 일본 돈과 일본작위를 받게 된 독립협회회원
경술국치(1910년 8월 22일)가 있은 지 열흘 뒤가 되는 9월 1일에 일본은 고종임금을 덕수궁 이태왕(李太王)이라고 부르고, 순종임금을 창덕궁 이왕(李王)이라고 부르고, 고종임금아들 강(堈)과 희(희)를 공(公)으로 불러서 일본 황족으로 흡수하고, 병자년 이래 자기조국을 해롭게 해가면서까지 일본에 붙어서 끝내 일본을 이롭도록 하는데 애를 썼던 부왜역적에게는 일본 돈과 일본귀족 작위를 주기로 했습니다.
그 가운데 이미 죽고 없는 사람에게는 그 유족에게 일본 돈을 주기로 했고,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일본귀족이 되는 작위를 주기로 했는데, 일본 돈과 일본작위를 받게 되었던 독립협회 회원이 가진 . 경수 . 완용 . 종환 . 상호 . 근호였습니다.
경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 유족들이 일본 돈을 받게 되었고, 완용은 백작을 받게 되었으며, 가진 . 종한 . 상호 . 근호는 남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독립협회 회원 가운데, "왜노 앞잡이"로 선발된 사람이 여섯 사람이었습니다. 치호로 말하면, 경술년에 일본 작위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치호아비 웅렬이 남작을 받음으로써 아들이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치호는 나라 잃은 지 35년(1945) 4월 3일에 일본귀족원 위원으로 뽑혔습니다.
(바로잡기)
신용하 지음 <<독립협회연구>> 라는 책 가운데 독립협회 회원 이름을 실어놓았는데, 고종 시대 토왜의병(討倭義兵) 허위 . 기우만 . 려영조가 독립협회 회원으로 되어 있고, 항왜지사(抗倭志士) 신기선 . 이도재 . 이건창이 독립협회 회원으로 되어 있으며, 광복도모 토왜인 박은식 . 신채호가 독립협회 회원이 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기술이었습니다. 지은이 신용하가 그 책에서 이르기를 ‘이것은 창작과 비평 1970년 봄 호에 실린 자료이고, 나는 그것을 그대로 옮겼다’고 말하기는 했으나, 그때 신진학자로 필명을 날리던 이가 검증도 하지 않은 채 거짓자료에 속아 넘어가 것은 심히 잘못된 자세에 다름 아니라 할 것입니다.
필립제슨 재필과 치호가 토왜의병들을 두고 나쁜 놈들이라고 독립신문에 지껄였는데, 그 토왜의병들이 부왜단체인 독립협회에 들어갈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필립이 원수처럼 미워하면서 배척한 사람이 신기선 . 이건창이었는데, 신기선과 이건창이 부왜단체인 독립협회 회원이 될 리가 만무합니다. 신용하는 독립신문을 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