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이나 고치기 힘든 병중에 있다면, 어느 정도 죽음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죽이는 경우는 다르다.
존재에 대한 확인을 위해서 자살을 선택하는 실험정신에 사로잡힌 이도 있을 수 있다. 세상의 부조리를 극복할 방법이 없어 자살로써 부조리한 삶에 대한 인식을 잊고자 할 수 있다.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존재에 대한 포기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자신에 대한 포기이며,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 존재를 없애버리는 것은 역시 존재의 의미에 대해 부조리한 방법으로 맞서기에 자신에 대한 포기다.
'왜 사람들은 자신을 포기하려는가'라는 물음을 묻기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다.
자신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단 한가지의 이유가 과연 없는가를
찾아야 한다.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다. 사유함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사유함으로 스스로 생각의 벽을 만들어
버린다. 사유하지 않는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동족에게 스스로 먹힌다거나 무리를 벗어나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동물들은 그들의 본능에서 나오는 종족보존의 원리나 개체보존의 원리에
의해 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본능적 요인보다는 이성적 요인에 의해 자신의 포기에 이른다. 남이 보기에 살아야 할 수백 가지 이유를 가진 사람이 단 한 가지 죽어야 한다는 자신만의 이유 때문에 목숨을 버린다. 아니, 뒤집어 보면 당사자는 죽어야 할 수백 가지의 이유 중에 살아야 할 한 가지 이유를 찾지 못해 자신을 포기한다. 어쩌면 그 살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막아 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살아야 할 단 한 가지 이유를 찾는 것. 내 일 때문에, 내 가족 때문에, 내 자식 때문에, 더 넓게 보면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때문이라도 훗날 역사에라도 혹은 세계사에 남을 인물이 되기 위해서라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자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울증이라는 병 때문에 볼래야 볼 수 없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패배감이 드는 것은 수많은 죽어야 할 이유 중에 단 한 가지만이라도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질 수 있게 했더라면, 자살이
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혹자도 요즘 상당한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으나 장래를 생각해서 과거의 화려했던 기억을 또올리며
옛 명성을 되찾기위해,아니면 앞서 말한것 처럼 미래를 설계해 놓았기 때문에 패배감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는 것이다.
참 좋아하던 영화배우가 세상을 떠나면서 내게 준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수많은 살아야 할 이유들 중에 그것을 발견할 믿음과 눈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갖추지 않고서는 언제든지 보잘 것 없는 죽어야 할 이유 때문에 그 귀중한 살아야 할 이유들마저 자신의 삶과 함께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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