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보]오빠의 억울한 죽음 꼭 밝혀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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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보]오빠의 억울한 죽음 꼭 밝혀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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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미확인 사망 사건 진상 가족 모두 노력해 밝히겠다

^^^▲ 故 함광열 이병의 여동생 함수진 씨
ⓒ 뉴스타운^^^
‘오빠를 잃은 동생의 슬픔은 과연 어떤 것일까?’ 솔직히 기자는 주변에 아주 가깝고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없어 고 함광열 이병의 동생 함수진 씨(21)를 만난다는 것이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비록 사건이 일어난 지 30개월이 넘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오빠를 잃은 슬픔에 어디 가시랴는 생각 때문에 부담은 한층 더해만 갔다.

드디어 신촌의 한 아담한 카페에 함수진 씨의 모습이 보였다.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 기자와 달리 함 씨는 밝고 쾌활했다. ‘괜한 고민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함 씨는 당시의 충격과 아픔을 상당부분 극복한 듯했다. 이로써 기자는 그간 가졌던 부담을 훌훌 털어버렸고 함 씨의 얘기에 더욱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 전화로 통화했을 때는 나이가 좀 있을 거라 여겼는데 예상 외로 상당히 젊어 보이네요.

그 말씀 칭찬이죠.(웃음) 오빠가 사고를 당했을 당시에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어요. 사고가 일어난 지 3년여가 다 되니 올해 21살이죠.

‘나이가 좀 있을 거라’는 말은 친근감의 표시로 부러 한 말이 결코 아니었다. 전화 통화했을 때 함 씨의 나이를 어림짐작 한 건 함 씨가 밝힌 나이보다 2~3살은 더 위였다. 기자의 예측을 보기 좋게 따돌린 그녀의 성숙함은 아무래도 오빠의 죽음을 맞이한 시련일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이런 식상한 말이 있지 않은가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 오빠가 사고를 당했을 당시의 상황을 얘기해 주세요.

사건이 일어날 당시 저는 고 2였어요. 학교에 있을 때 소식을 접했는데 너무 무섭고 떨렸었죠. 군내 자살 의혹이라는 말들은 좀 들어봤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제게 닥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맨 처음 소식을 접한 건 엄마였어요. 엄마는 사고소식을 들은 지 채 20분도 안돼서 현장에 도착을 하셨대요. 그런데 정말 황당한 일을 겪으셨더라고요. 엄마가 “내 아들 어디있냐”고 통곡하시며 사고 난 화장실로 가시려 했지만 군인들이 엄마를 못 들어가게 막더라는 거예요. 사고 현장에 유가족, 그것도 고인의 엄마인데 못 들어가게 막았던 이유는 뭘까요?

군인들은 엄마에게 현장 보존 때문에 그런다며 막아섰대요. 현장 보존이라는 말은 그런대로 수용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요. 엄마는 오빠가 있는 화장실을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헌병대 수사관들에게 붙잡혀 있는데 오빠가 있는 화장실뒤로 군복 입은 사병들과 수사관들이 들락날락 거리더란 겁니다. 그래서 엄마가 마구 소리를 지르시며 소리치셨답니다. “(현장보존 때문에)엄마도 못 들어간다고 하면서 저 사람들은 뭔대 저기 저렇게 왔다갔다 들락날락거리는 거냐!”

아마도 저희들(유가족) 생각에는 그 시간에 (사건현장에다가) 피 뿌리고 방탄헬멧에 총 갖다 놓느라고 그렇게 왔다갔다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입니다.(2보 - ‘납득하기 어려운 軍의 수사 결과’ 참조) 그런 어이없는 수사를 참…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 이후에 가족들이 다 도착했을 거고, 수사관들은 유가족들에게 뭐라고 하던가요.

수사관들에게 당시의 모습을 들은 바에 의하면 총은 일직선으로 놓여 있었고, 방탄 헬멧은 똑바로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수사관의 말을 듣고 첨엔 기가 막혀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총이 어떻게 일직선으로 놓여 있을 수가 있으며, 어떻게 방탄 헬멧은 변기의 앞부분과 변기통 깡통(휴지통)사이에 가지런히 그것도 똑바로 뉘일 수가 있었을까요. 수십 번을 시도해봤지만 그렇게 되기란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수사관들이 말한 것처럼 총알이 오빠의 머리를 관통했다면 분명 벽 부분에 탄두 자국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발견할 수 없었죠. ‘화장실 벽이 단단해서 자국이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호기심에 손톱으로 화장실 벽을 긁었더니 어이없게도 벽이 막 부서져 떨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부실한 곳에서 관통한 탄두의 자국이 없다니 이게 어디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요?

재조사 결과 - 진정성 보이지 않아 ‘실망’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감에 따라 함 씨의 모습도 처음 인사했을 때의 밝고 쾌활함은 온대간대 없고 진지함과 열성을 띤 자세로 바뀌어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나가는 함 씨의 그 진지함은 전화 통화했을 때 느껴졌던 함 씨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로소 매치시켜주었다.

- 시간이 꽤 많이 흘렀는데요, 현재 시신은 어떻게 보관되고 있는지요.

지금은 6개월에 1번씩 시신을 보관하고 있는 냉장고를 바꿔주고 있어요. 사체가 있는 안치실은 현재 아예 잠겨 있어요. 사체는 이 사건을 해명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에 잘 보존해야 한다면서 헌병대에서 아예 안치실 문자체를 자물쇠로 잠궈 버렸어요.

- 군에서 재조사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처음보다 진전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저희 가족 모두 그러길 바랐지만 실망스럽게도 그러질 못했던 게 사실이에요. 단지 처음 조사결과보다 말을 다소 부풀린 것일 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재조사반 측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름을 들며 자신들의 결과에 타당성을 입증하려 했지만 저희 가족들은 이를 믿지 않아요.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재조사반 측은 국과수 근처에 가보지 못했다고 봐요. 설마 권위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이런 허무맹랑한 결과들을 내놓았겠어요.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재조사 결과를 가족들에게 보고한 수사관이 나중에 “광열이가 선임들한테 놀림을 좀 받은 거 같다. 한 번은 선임들이 춤을 춰보라고 했는데 광열이가 잘 못 춰서 부대원들이 심하게 놀렸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엄마와 저는 서로 마주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오빠는 고등학교 때 댄스동아리에서 맹활약했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오빠가 춤을 못 춘다고 놀림을 받다니요, 정말 얼토당토 않는 얘기죠.

- 함 이병 사건은 아직 미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처음엔 헌병대에서 사건을 감식해 기록을 남겼고 이를 검찰에서 맡아 수사를 했는데요, 저희가족들의 반발로 육본에서 재조사를 펼쳤어요. 하지만 2003년 10월에 미결 판정이 났죠. 지금은 육본 최고부서에 이 사건이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

- 함 이병의 동료들과 면담을 했다면 더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물론 시도했었죠. 오빠의 동료였던 박 모 사병을 만나러 울산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어요. 당시 박 상병은 집에 없었고 그의 아버지만 (집에)계셨는데요, 그분도 아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은 얼핏 들었지 자세히는 모른다며 박 상병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셨어요. 그런데 박 씨가 계속 전화를 받지 않는 거예요. 하도 답답해서 박 씨의 친구에게 연락을 했지만 친구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왔어요.

“1명만 빼놓고는 모두 타살당한 거 같아요”

이제까지 30개월 동안 국군 벽제 병원에서 생활했던 함 씨는 모두 39구의 시체를 봐왔다고 한다. 그 중에 함 이병과 같이 의혹이 가는 사건들이 얼마나 있었냐는 질문에 함 씨의 대답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1명만 빼놓고는 모두 타살당한 거 같아요”라는 함 씨의 말이 사실일까. 믿고 싶지도, 또 믿기지도 않았지만, 만약 함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병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일까? 함 씨의 얘기를 듣자 몸이 절로 오싹해졌다.

- 현재 유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가족들 모두 분향소에서 계속 생활하고 있어요. 저는 올 해 학교에 들어가기 때문에 앞으로는 주말엔 분향소에서 지내고 평일엔 학교를 다니는 식이 될 거 같아요. 아버지와 삼촌은 분향소에서 출퇴근 하고 계시죠.

- 그동안 가족 모두가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오빠의 일로 인해 우리 가족은 솔직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게 사실이에요. 아버지는 수개월 동안 일도 못 나가셔서 가족 모두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고, 저 역시 수능을 다시 보기도 했고… 한때는 집안 자체가 풍비박산 날 뻔도 했죠.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미심쩍어 하는 반응이었어요. 사건이 일어날 당시엔 다들 분노하고 위로하고 그러셨는데 6개월이 지나고 부터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 군대가 수개월도 더 지났는데 그렇게 발뺌을 할까. 진짜 자살이 아니냐, 솔직히 뭐가 있으니까 자살하지 않았겠냐’며 오히려 우리가족을 의심하는 거예요. 처음엔 주변 분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기가 막히기도 하고 화도 좀 났지만 이제는 그분들이 그렇게 반응할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것이 제일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왜 ‘냄비현상’이라는 말 있잖아요. 처음에는 확하고 불붙다가도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냉랭해지고 마는. 아마도 국방부에서는 바로 이점을 노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사실 들어요.

시간이 어느덧 많이 흘렀다. 진지함도 진지함이었지만 논리정연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녀의 언변에 매료되어 기자는 식사 때가 한참 지나 배고픈지도 모르고 열심히 듣고 있었다. “가족 모두 오빠의 억울한 죽음은 꼭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 하나 갖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힘이 들더라도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죠.”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는 뭐라고 표현키 어려운 힘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해봤다. ‘고 함 이병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리라는 가족들의 그 뚝심 있는 믿음이 함 이병의 억울한 죽음을 조금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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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친구 2005-02-26 13:21:00
작년에 광렬오빠를 보고 왔습니다.
오빠와 같이 공부 하고, 밥 먹고, 놀던 것이,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데.
어느덧 이렇게 시간이 지났습니다..
오빠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 저희들이 받은 충격은.......
다른 친구들이 모두 군복무중이여서, 친구 몇만 올라갔었는데..
그때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저희들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였습니다.
광렬오빠를 잘 알기에 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큰 진실이기에... 그 사실을 왜 밝히지 않는 것인지..
아마도 수사과정중 진실은 모두 밝혀졌다고 봅니다..
그것을 단지 포장하고 덮는데 시간이 걸렸을뿐..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져, 광렬오빠가 편안한 곳에서 밝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우리 수진이와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용기를 보냅니다.

최나영 2005-02-26 13:40:40
2002년에 사건이 일어나고,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아직도 제 기억 속에는 광열이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생각나는데..
아직도 답답하게 느껴지는 시간은 가고 또..가고 있네요.

광열이 일을 아는 모든 분들은 힘 내셔서 꼭!! 이 문제가
밝혀질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함재현 2005-02-26 13:49:29
저는 광렬이형의 대학교 후배입니다.

대학교시절의 형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인관계에서도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같은과와 선배들사이에서 광렬이형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인터넷을 통한 동호회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부대에서의 놀림이나 내무생활로 자살한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또한, 군대에 가보았던 아니 가보지 않아도 일련의 사건들을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바라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을 군대에서는 자살로 몰아가는 것 황당하고 어이없을 뿐입니다.

저의 생각은 군대에서 군대의 명예와 사건과 관련있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또 군대에서의 암묵적인 일종의 관례에 의해 모든 책임을 고인이 된광렬이형에게 몰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타살의혹 사건을 공개적이며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처리하여 군 부대내에서도 경각심을 일으켜 이러한 일들이 더욱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한부현 2005-02-26 13:55:06
대학 생활을 같이 하던 한 동료입니다...
제가 이 사건에 대해 접하게 된 건 저 또한 군생활을 한참 하던 2002년 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같은 군인의 입장으로써, 평소 굉장히 친하던 친구로써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소식을 듣자 마자 전 제가 근무하던 부대측에 가봐야겠다고 청원휴가도 신청 했었지만.....무산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현장에 가보질 못했는데요...수진이나...어머님,아버님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아직도 저를 포함한 친구들의 마음속에는 평소에 더 없이 밝고 명랑하고 쾌활한 광열이 형의 모습이 눈에 아련합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만나자고 했으면 만나 줬을 그런 사람이 같은 자리에 없다는 것에 대해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비록 큰 도움이 되어 주진 못하지만 언젠간 결국 진실이 밝혀지리라고 마음속으로 늘 기도 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고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억울한 우리 청년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

김명철 2005-02-26 17:02:21
저는 잠깐 광열이와 1학년때 같이 생활했던 동료입니다.
제가 군 생활을 하고 있던 2001년10월! 일병 휴가를 나왔
을때 학교를 방문해서 광열이를 만났고 체육관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맥주한잔 들이킨 기억이 훤합니다. 그리고 광열이의
말이 "군생활 잘해라! 다음에 휴가나오면 난 설에 있는데,
오면 꼭 연락해라!" 는 말이 마지막 말이 될줄이야...
그리고 03년1월 중순경에 부현이가 "광열이형 세상떠났다."
란 말을 듣고 이 소식을 처음 알았는데, 차마 믿겨지지 않
더군요. 지금도 그의 모습이 제 기억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하늘나라에서 이승에서 못누렸던 모든것 누리길 바
랄뿐입니다.
"광열아! 넌 영원히 떠났지만 너의 모습은 우리마음에 영
원히 살아있는걸 하늘나라에서 조차 알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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