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보람을 찾은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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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음악이 나를 살려

음악

나는 책과 음반을 구입해서 집에 오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음반의 포장 비닐을 뜯어서 전축 바늘을 올려놓고 책을 펴면서 흘러나올 음악을 기대하는 짧은 순간은 황홀함 자체였다.

내가 고전음악에 특별히 매료된 이유가 있다. 고전음악은 나의 복잡한 심경을 데리고 변화무쌍한 감정을 일으키면서 다양한 경로로 여행을 시킨 다음 결국 제자리로 되돌려주었다. 그러면 복잡했던 마음이 어느 사이 안정을 찾았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선율과 리듬에 의해서 심리적 조화와 탄력과 생동감까지 불어넣어진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작곡가들이 시대적 불행과 개인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혼과 열정을 모두 쏟아 부어서 인생을 표현한 것이라는 일체감을 맛보았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들의 삶과 집중력과 열정에 무한한 존경심 가졌으며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후 작곡가들의 애환과 사랑과 인생이 모두 담겨진 작품에 대한 보답으로 더 이상을 갚고 살겠다고 빚진 마음을 명심하고 또 확인해두었다.

음악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깐 화제를 돌려보겠다. 우리에게 알려진 불후의 명곡들은 200년이 넘은 작품들이며 최소한 100년 이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현대는 과거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첨단의 기계와 기술, 정교한 악기와 시설들이 갖추어졌다. 그렇다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막힌 음악들이 계속 작곡되어야 한다. 그럼 왜 100 이내의 현대에서는 훌륭한 음악이 거의 작곡되지 않을까.

나는 이후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 음악가들은 음악에 인생의 모든 것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음악에 인생의 애환과 사랑과 고통 등 모든 혼과 정열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위도 대가도 없이 평생 음악과 함께 하며 음악으로 언어를 대신하고, 사랑을 대신하고, 고통과 슬픔도 대신하고, 인생을 표현하면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조화하고 승화해냈다고 생각한다. 오직 음악이 좋아서, 음악밖에 없어서, 음악이 삶의 전부이고 삶의 자체였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작곡가들은 먹고살기 위한 일환으로 음악을 전공한다. 그리고 훌륭한 음악을 연주만 잘해도 명성을 얻고 직장도 얻고 지위도 얻고 박수를 받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리고는 갖가지 행사에 초대를 받는 등 얼마든지 활약이 가능하다. 때문에 열정을 발휘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존엄성의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사람은 위기가 지나면 금새 망각해버리고 또 나약한 자신을 붙들고 안주하게 된다. 물론 자기 인생에서 뚜렷한 지표나 목표나 관점이 없기 때문에 남의 것들 속에서 위안하고 합리화할 수밖에 없게 된다.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다시 화제를 바꿔보자.

현대인은 시와 소설 등 문학 활동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교양, 정서, 취미, 등산, 스포츠를 즐기거나 봉사활동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붓지 않으면 단순한 반복 행위이거나 습관적인 인생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이 가정에 열정을 쏟아 부으면 가정의 주인이고 세상에 열정을 쏟으면 세상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열정이 없으면 단순히 반복하는 구경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자신에게 가져다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기 한계에 이르면 자연의 이치로 변명하거나 순리 속으로 숨어버리기도 한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도 하지만, 바꾸기도 하고,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항상 피곤과 손해와 짜증과 부담이 전혀 없는 범위 내에서만 사랑도 인생도 시도 정의도 미래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 세상의 일부 심지어 무심결 돌아가는 자연의 이치나 순리로 눈가림까지 해버린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유사이래 인간은 사랑을 해왔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사랑을 했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상 누구든지 해왔던 똑같은 사랑을 되풀이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에 순수한 열정을 바쳤다. 그리고도 부족해서 인생을 바치고 결국 목숨까지 받쳤다. 때문에 그들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흔한 사랑」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을 개척했으며 「고귀한 사랑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들은 흔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들의 인생을 통해 직접 새로운 사랑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주인공이 되었다. 그들의 고귀한 사랑은 소설의 벽을 뚫었으며, 감동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서 실존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결코 못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사랑을 못하는, 할 수 없는 이유들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문학도 시도 사랑도 인생도 사람도 모두 소중해서 어느 것도 남들이 왈가왈부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혼과 열정이 빠지면 단지 그것들에 붙어서 안주하거나 합리화하거나 미화하는 것일 위험에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갈수록 어리석음의 도수가 높아진다.

따라서 사람은 항상 자신의 혼과 열정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얼마나 쏟아 붓는지, 발휘하고 있는지, 효과를 보는지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또한 혼과 열정은 물론이고 자신의 인생과 생명까지 쏟아 붓을 일을 진실로 간절히 찾아보았는지 자문해볼 기회라도 있어야 한다.

물론 보통 사람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으며 후진국에서는 평생 인식조차 못할 수도 있다. 심지어 고문관처럼 취급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일수록 항상 밝고 맑고 명랑하게 사는 것이 생명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열정을 쏟아서 직접 만들 능력은 없더라도 몸담은 사회를 명랑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은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흥분하고 비난하고 개탄하고 조소하고 한탄하는 것은 그나마 자기 역할도 못하는 것이 된다.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분야는 과거 험난한 시대 속에서 누군가가 혼과 열정을 불어넣고 죽음까지 감수해서 만들어놓은 것들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그들 덕분에 자기 분야에서 편히 먹고살면서도 인생과 세상을 쉽게 들먹이고 함부로 결론을 내린 채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자기 도덕성에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주변을 주저앉히기도 한다. 이는 지금도 어디선가 자기 인생과 열정을 온통 쏟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지극히 게으르고 사치스런 태도다.

특히 지금처럼 어려운 시국에도 어제나 그제나 내일도 똑같이 살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혼과 열정과 인생과 죽음을 기어코 찾아서 쏟아 붓지는 못하더라도 서로를 뒷받침해주거나 함께 해주어야 할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은 자칫 자신이 평생 몸담은 사회에 대해 진실한 관심과 애정과 열정 한번 없이 막연히 선과 정의를 붙들고 살기도 한다. 또한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아름다움과 낭만과 사랑 속에 묻혀서 사방팔방을 헤아리기조차 못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남의 잘못을 따지거나, 남의 인생을 왈가왈부 참견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는 자신이 평소에 말하고 표현하는 것들에 비해서 실제로 세상에 대해 어떤 열정을 쏟고 있는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직접 몸담은 사회에서라도 주인과 주인공으로서 참다운 역할에 충실한지를 한번쯤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 애정과 열정을 바친 사람은 서당개가 풍월을 읊는 정도의 관심에 그치지 않는다. 정말 애정과 열정을 쏟았다면 진행 과정과 결과에 지대한 관심과 함께 책임까지 지려고 한다. 또한 당장은 손해가 되더라도 적극적으로 감수하고 나선다. 뿐만 아니라 주변도 설득하고 참여시킨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아무런 애정도 없이 단지 풍자하고 비꼬고 우스개로 세월을 지새기도 한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웠고 배움이 부족했던 우리 부모들도 진심으로 아이를 키웠다면 훌륭하다. 우리 부모 시대는 잘 키우고 싶어도 여건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서 부모들은 못 먹고 못 입어가며 희생하고 헌신으로 자녀를 키웠다. 이는 새로운 뭔가를 이뤄내는 열정은 없더라도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열정도 헌신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때문에 아무리 지위가 높고 나이가 많고 부자가 되고 많이 배웠다고 하더라도 애정과 열정과 헌신적인 희생이 없으면 그냥 그런 인생이고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조용히 묵묵히 사는 것이 좋다.

준비들이 되어야 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 그런데 모두 멍할 뿐 아무 준비도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당시에 만일 김영삼씨와 김대중씨가 정말 나라를 사랑했고 국민의 삶을 걱정했던 정치인이었다면 그간에 많은 준비를 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죽어도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중요한 순간을 놓쳐버렸다. 때문에 잠깐 사이에 전두환씨가 과감하게 치고 나섰다. 이는 오랜 세월 중앙 무대 정치권에서 맴돌았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두 김씨는 국가를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은 평소 준비가 부족한 우리 국민성 그대로를 드러내준 것이다.

이제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지나서 참여정부에 몸담고 있다. 그리고 알다시피 보다시피 엉망의 연속이다. 그럼 우리는 준비가 되었는가? 전혀 아니다. 너무나도 전혀 아니다. 그리고 준비하자고 하면 시기상조라고 하고 관계가 없다고 한다. 그럼 사람들은 평소에 무엇하고 사는가. 과연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해 열정을 쏟아 붓고 사는가.

수없이 한가했던 시간에 각자의 노력과 열정으로 기회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머리라도 맞대고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하고 있으며 내일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겠는가. 상황이 닥치면 돈도 보고 분위기도 보고 여건이 되면 움직일 생각인가?

혹시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혹시 나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고 수없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간 함께 했던 사람들 중에 과연 누구와 얼마나 어떻게 함께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특히 국가와 사회와 후손과 미래는커녕 자기 자신 속에 갇혀서 이것도 저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성 때문에 의도적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세력을 형성하고 기득권을 차지한 채 엉망을 만들어버렸다.

너무나 안타깝다. 아무리 산신령이 있어도, 세상 운명을 내다보는 초인이 있어도 결국에는 속수무책으로 대안과 비전이 없는 국민이 되고 말았다. 6.25를, 10.26을, 12.12를, 5.18을, 최근의 지진 사태를 예상한 예언가는 없다. 이처럼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도 부지불식간에 터져 버린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하면 기회가 와도 허사이기 때문에 허둥지둥 혼란밖에 없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준비해야 한다. 그간 수없이 원도 없이 반복했던 계모임과 동창회와 향우회는 잠시 보류하고 전체 국민이 나서서 함께 고민하고 거들어야 한다.

만일 내가 좋은 음악을 들었다면, 좋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면 자신만 좋아지고 끝나서는 안 된다. 또한 전해진 감명을 남에게 그대로 권하기만 해도 부족하다. 내가 음악을 들었다면 내가 몸담은 우리 사회도 나로 인해 좋아져야 한다. 또한 설사 음악을 듣지 못한 사람이나 책을 읽지 못한 사람도 바로 나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하며 나로 인해서 더욱 좋아져야 한다.

마지막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도 오직 음악밖에 없는 인생, 음악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인생, 음악이 없다면 차라리 죽어도 되는 인생을 경험해보기 바란다. 음악은 예를 든 것이니 뭐든 여러분이 만들어서 열정을 쏟아보기 바란다. 인간의 참된 삶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열정과 진지한 과정과 이후 상황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는 인생이 가장 기본적이고도 참된 삶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정말 이런 열정으로 삶을 살려고 한다면 막연히 음악만 가지고 죽음까지 각오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남이 만들어놓은 음악에 목숨을 바치는 웃기는 일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그 과정에서 반드시 남의 음악보다 대단한 뭔가를 발견하게 되거나, 새롭게 열정과 목숨을 바칠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결국에는 길고 지루한 내용이 되어버린 독서와 음악을 마칩니다. 그리고 잠시 장거리 여행을 장기간 다녀와야 함으로 글을 올리지 못하게 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혹시 꼭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이 있는 분은 당분간 메일을 이용해주시면 성의 껏 댑변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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