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내 얼굴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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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내 얼굴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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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도 수필문학추천작가회 연차대회에 다녀와서

금년도 수필문학추천작가회 연차대회가 부산 해운대에서 열렸다. 다소 먼 것이 연유가 되어서 버스 안에서는 꽤나 시끄러웠다. 하지만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말들이 난무하면서 유익함과 재미가 있었다.

목적지로 가는 버스 속에서 내가 받은 한 장의 사진이야기도 그런 이야기 중에 하나다. 내 얼굴이 15도쯤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이름지어서 '15°기울어진 내 얼굴의 자화상'이라는 이름을 부쳤다. "웃지 못하는 인간은 병들은 인간이다"라고 말한 니체가 생각났다.

왜 다들 잘도 웃고 있는데 나만 이방인처럼 혼자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결론은 내가 못나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선생님, 사진작가 맞아, 어떻게 찍어서 피사체가 이 모양이야" 착한 여자 선생님은 웃기만 했다. 내가 그런 질문을 한 이유는 내 자화상에 대한 확인을 하고 싶어서였다. "피사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라는 말이나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떻게 해요" 라고 대답해 주길 은근히 바라며 반복의 질문을 했지만 죄송하다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내 스스로에게 자답했다. 늙어감의 추함이 대답이라는 것과 다시는 사진을 찍지 않겠다는 자성을 했다. 그리고 모든 잘못은 자기에게 있고 피사체는 반드시 있는 대로 보여 줄뿐이지 허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하지만 엉뚱한 질문으로 사진을 찍어준 선생님에게 화풀이를 하며 은근하게 나를 즐겼다.

버스 안에서의 또 다른 화제는 술이다. 나를 아는 동료들은 지나치면서 내 어깨를 툭 치거나 가벼운 웃음을 지면서 "에이 술도 못 먹는 사람이 인간이냐"하고 익살스럽게 염장을 지른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래 인간이다. 어쩔래"하고 응수를 했지만 무엇인지 모르는 정체성과 상실감이 나에게 있음을 자문하게 만들었다.

인간이 무엇 때문에 사는 가에 대해

김삿갓은 시(詩) 한 수와 한잔의 술을 위해서 산다는 말로 시와 술을 연관지었다. 그는 술에 취해 노상방뇨하고 양반을 비웃으며 세상을 삐뚤어지게 바라다보는 여유와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술을 못 먹는 내가 그를 닮아 가고 있는지 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히죽거리며 웃었다.

시인 보드레르는 술과 인간의 관계는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는 부드러운 투사와 같은 관계라고 말했다. 임어당은 80세까지 술과 담배를 즐겼던 인물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묵시적 교훈과 지식정보를 주고 있다.

또한 조선 최고의 주선(酒仙)은 남성이 아닌 '황진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중종 때 송도의 이름 난 기생으로 빼어난 용모와 가무로 당대의 시서(詩書)와 술로 이름을 날리던 영웅호걸들을 사로잡았다.

치마꼬리를 잡는 사내를 발로 차는 여유가 있었고, 심지어는 사대부의 등을 타고 에로틱한 시를 노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선을 지키는 정도를 알았기 때문에 기녀로서 영웅호걸들을 손아귀에서 넣고 놀았다.

반대로 연산군은 술과 향락에 빠져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켰던 임금이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8도에 미녀와 좋은 말을 구하는 임무를 띈 채홍준사(採紅駿使)라는 관리까지 두고서 과도한 술과 향락을 즐겼던 인물이다. 그는 정도를 몰라서 실패한 임금이다.

이러한 말들을 종합해 보면서 내가 술을 못 마신다는 것은 무엇인지 부족해 보이고 덜 떨어진 것 같기도 해서 내가 아주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 속에 빠져 있는 나에게 불쑥 B선배가 내 앞으로 비척거리며 닦아와 "야 조성연, 너 술두우 못 마시지이" 하고 또다시 내 염장을 지른다.

예전 같았으면 그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었지만 조건 반사적으로 "왕년에 누구 술 안 먹어 본 적이 있어" 하고 다소 큰소리로 응수했다. "그래 어디 그럼 먹어봐" 하고 가득 부은 술잔을 내게 내 밀었다.

내가 풀이 죽으며 움츠러들자, "넌 쪼다냐, 쪼다는 다음에 오지마" 하는 말과 함께 경멸에 찬 눈으로 나를 처다 보았다. 그렇게 선배와 입씨름이 계속되었지만 나는 완전히 이단자로 낙인이 찍혔다. 내가 술을 못 먹음에 대해서 이번처럼 비애를 느껴보기는 처음이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자신을 은근히 즐겼다.

K선배가 갑자기 호루라기를 내 앞에서 불더니 여성문우를 업어치기 하려는 동작을 했다. 하지만 나는 엉뚱하게도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해방감에 빠졌다. 다소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아직도 수사는 끝나지 않았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선배는 씩 웃으며 "아직도 수사는 계속되고 있지" 하면서 호루라기를 다시 한번 부는 것이었다. 그 소리에 나의 젊은 시절이 되살아났다.

장발머리에 나팔바지를 입던 시절이

내가 교정으로 들어서는 순간에 기율부장(氣律部長)이 호루라기를 불며 나의 머리통을 치던 생각이 되살아나며 묘한 감정이 살아났다. 그래서 자꾸 불어 달라는 주문을 했다. 화장실입구에서도, 식당 앞마당에서도, 통도사 절 입구에서조차 마주칠 때마다 호루라기를 빨리 불라고 주문했다.

그 때마다 선배는 "그래 조성연, 너 엉뚱해, 하지만 내가 네 말을 듣고 호루라기를 분다. 하지만 미친놈은 네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되는 거이여잉, 알았지" 하면서 거침없이 불어 댔다. 그 때마다 우리는 동질감을 느끼며 미친 사람처럼 서로 처다 보고 웃었다.

"세미나가 별거여, 호루라기 많이 불기지, 많이 불어 줘" 나는 그런 말을 외쳐댔다. 그리고 남이 무어라고 하든지 서로 처다 보고 웃으며 호루라기를 불었다.

이 번 세미나에서 파리에 있는 몽마르트 언덕과 '달맞이 언덕'이 부산 해운대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집에 돌아간 문우가 있다면 그는 글을 쓸 자격이 없다. 내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중의 하나다. 깊은 가을밤 해운대 비치를 한참 걷다가 동료들이 술집으로 간다는 말에 할 수 없이 뒤로 쳐졌다. 그 때에 다른 동료 몇 명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달맞이 언덕을 가보자" 한 여성 문우가 제안을 했다. 너무 시적인 제안이어서 그냥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한 참을 걷고 나서야 겨우 발견한 것이 '몽마르트언덕'이라는 간판이었지만 그 집의 웅장함에 기가 죽어서 겨우 찾아간 곳이 작은 카페였다.

킬킬거리며 홍차를 한잔 마시고 나오다가 입구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종업원에게 "달맞이 언덕이 뭐 이래"하고 시시하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달맞이 언덕이요, 여기서 한참가요, 여기는 겨우 초입인 걸요"하고 이상한 눈으로 한참을 처다 보는 것이 이북사람으로 보는 눈치였다.

그래서 시적 감상으로 시작한 달맞이 언덕 찾기는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부산 해운대에 달맞이 언덕이 있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동화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다른 것이 닮아서 같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번 세미나에서 문우들과 동화되길 바랬지만 술을 못 마시는 이유로 동화되지 못했다.

어느 선배의 "80달러로 돌아가자"는 애국의 말과 연어처럼 "귀소본능"하자는 것에 대해서도 동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세미나를 끝내고 나의 집 마당에 돌아와서야 조용필이 부른 '창 밖의 여자'를 박자 틀리게 한번 불러 보고 싶어져서 화가 치밀어 오르고 다시 한번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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