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전주문화방송 주관 제1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데, 혼불 문학상은 우리 문단사에 큰 획을 그은 최명희 작가의 작품정신과 시대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문학상이다.
작가 박범신 심사위원장은 “한 시대를 살아간 허난설헌의 삶을 매우 꼼꼼하게 바느질한 느낌으로 작품을 정교하게 꾸몄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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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문희 작가(오른쪽),이정은 정춘자 작가 ⓒ 뉴스타운 | ||
“내 어찌 이 땅에 아녀자로 태어나 이 작은 틀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던고. 죽어 다시 태어나면 저 너른 중원천지를 말 타고 달리는 남정네로 태어나리라.”
천재도 과하면 독이 되는 것인지, 조선 중기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은 그 독(毒)으로 얻은 빛난 대가로 오랏줄로 꽁꽁 묶여 냉랭한 별채에 갇히고 소외당했다.
이 소설 ‘난설헌’은 이런 불우한 천재 허난설헌의 일생을 담아냈다.
허난설헌은 시인으로서의 생과 여자로서의 두 가지 행로 어디에도, 오롯이 자신의 이름으로 살지 못했다. 남편이 햇빛 찬란한 양지밭과 같지 않았기에 여자로서의 생에 늘 잿빛 어둠이 길게 드리웠고, 시인으로서도 그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해 시는 늘 한줌의 그리움으로 애달팠다.
27년 짧은 일생 동안 명주실을 뽑아내듯 써내려간 허난설헌의 시들이 알알이 박혀있다. 종이와 붓만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써 내려간 시는 오직 여인에게만 한없이 가혹했던 시대를 향한 부르짖음처럼 여겨진다.
양반가의 여성에게조차 글을 익히도록 하지 않았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시를 쓰는 며느리가 달갑지 않았던 시어머니.
8세 때 이미 신동으로 소문난 아내 곁에서 별다른 재기 없는 자신을 자학하며 바깥으로 돌기만 하는 통 좁은 남편. 어깃장으로 서로 할퀴는 부부사이. 애뜻함이든 미움이든 눈길은 어긋나고, 허난설헌의 진심은 반사되고 부서지기만 했다.
허난설헌은 꽃다운 젊은 시절 15세 조혼을 한 뒤 엄격한 법도에 눌려 일생 문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에 더해 시집살이의 고됨은 차라리 사회활동이 자유롭고 마음껏 자연과 창(唱)과 문(文)을 벗 삼아 사는 기녀의 삶이 낫겠다 싶다. 사간헌의 영수인 대사간인 아버지 허엽과 따르던 오빠 허봉의 잇따른 객사로도 부족해 허난설헌은 딸과 아들을 차례로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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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문희 작가(왼쪽), 함계순 작가 ⓒ 뉴스타운 | ||
살림은 뒷전이고 서책이나 팔랑거리며 기녀들이나 하는 시나 나불대는 어미에게 물들 수 있다는 시어미의 엄혹한 규제 속에 제 자식 한 번 품에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던 허난설헌이었다.
소설 내용 중에서 나타난 것처럼 애절함이 느껴진다.
“두 손을 휘저어 붙잡으려 하면 조금 전까지 온기로 느껴지던 아이들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손에 잡힐 듯 다가오지만 손가락 사이로 물처럼 새나가버리는 아이들이 그미의 가슴에 사무친다. 후드득, 뺨을 적시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그는 눈을 뜨고 일어나 서안을 끌어당긴다. 어느새 먹물이 말라버린 붓은 빗금 한 획도 그리지 못하고 마른다. 물처럼 새고, 먹물같이 사위는 것들…뜨겁고도 세찬 한숨이 토해진다.”
여자, 조선, 그리고 남편의 아내. 허난설헌의 세 가지 한(恨)은 우리 시대의 여성들이 겪는 아품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남자들의 큰 소리가 울밖을 넘지 않아 많이 개선되었다.
허난설헌의 너무 영민함도, 너무 다정함도, 지나친 나약함도 닫힌 세상이었던 조선은 배겨나지 못한 듯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염하고 방만한 백일홍의 이미지와 단아하고 청초한 난설헌의 모습이 자주 오버랩된다. 껍질이 없어 미끄러운 나무 백일홍은 있는 그대로 발가벗고 서 있다.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이름이 없는 여성이란 뜻인지. 칠거지악으로 겹겹이 억압하고 수 겹의 속곳으로 정절을 강요당하는 조선의 여인과 백일홍이 대비된다. 아련히 백일홍을 바라보는 허난설헌의 눈빛이 선연하다. 규제와 억제된 삶의 한 모서리를 허물고 싶은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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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표지 ⓒ 뉴스타운 | ||
최 선생은 작가의 말에서 “난설헌을 통해 다시 태어난 허난설헌이다. 가슴에 돌덩이처럼 얹히며 마음에 박혀버린 허난설헌을 불러냈다. 작품을 쓰는 내내 난설헌과 소통했던 날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 고백했다.
"눈시울을 적시면서 허난설헌과 나눈 귓전에 속삭이던 말들이 오롯이 한 권의 소설로 남았다”고 덧붙였다.
작가 최문희 선생은 경남 산청 출생으로 서울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1988년 “돌무지”로'월간문학'신인상을 수상 문단에 데뷔했다. 1995년 “율리시즈의 초상”으로 제4회 ‘작가세계문학상’. “서로가 침묵할 때”로 국민일보 ‘1억고료 소설모집’에 당선한 바 있으며 소설집 “크리스탈 속의 도요새”, “백년보다 긴 하루”, “나비눈물”등을 펴냈다.<다산북스/값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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