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냉전 추구하지 않겠다지만, 냉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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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냉전 추구하지 않겠다지만, 냉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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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냉전이 미국에 장점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 주목
- 미국, 냉전시절에는 개입주의로 ‘자비로운 초강대국’으로 활동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 / 사진 : 공식 트위터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 / 사진 : 공식 트위터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올 921일 유엔에 모인 세계 정상들 앞에서 우리는 냉전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바이든은 미국 미국과 다른 파트너 중 어느 나라도 선택할 것을 요구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냉전 전망을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닐 것읻다. 바이든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외교정책 관측통들은 한쪽은 미국과 다른 한쪽은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를 사실상 각국이 편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냉전으로 치부하고 있으며, 게다가 20223월 여론조사 결과 10명 중 6명 이상이 냉전의 가능성이 5년 전보다 더 높다는 응답이 나왔다.

그레고리 대디스(A Gregory A. Daddis) 샌디에이고 주립 대학교 및 미국 현대 군사사학 교수 겸 USS 미드웨이 석좌교수는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기고한 글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냉전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냉전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이든의 개인적인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할 이유가 없다 면서도, 냉전의 역사학자로서 냉전이 미국에 장점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냉전으로의 복귀 불가 입장이 전적으로 워싱턴의 외교정책 기조를 대표하는 것인지 질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정말로 정직했다면, 일부는 협력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냉전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정체성과 개입(관여)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부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될 때까지, 냉전은 미국의 역대 행정부와 그 이후 사라진 더 넓은 미국 국민들에게 이점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냉전시대 동안 개입주의 외교정책(interventionist foreign policies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에서 콩고에 이르는 먼 곳에서 미국은 스스로를 확장주의 공산주의 위협(expansionist communist threat)에 맞서 신생 민주주의 국가를 지원하는 자비로운 초강대국(benevolent superpower)’이라고 표현했다.

트루먼 대통령의 말대로 모스크바가 독립국 정복을 위한 전복을 넘어무장침략과 전쟁을 구사하고 있을 때, 한국이든 남베트남이든 동맹국을 지원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었다. 초강대국이 지역 동맹국을 통해 서로 싸우는 대리전쟁(Proxy wars)은 적이 이념적 세계적 위협으로 여겨질 때 입맛에 훨씬 딱 맞았다.

냉전은 또 미국인들이 도덕적인 국가 정체성을 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무신론 공산주의의 폐해와 대조되는 문화적 자본의 형태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틀에서 미국인들은 보편적인 민주주의 원칙의 도덕적 옹호자였다. 반대로 공산주의자들은 그러한 윤리적 교리와 반대되는 존재였다.

예를 들어, 1947년 인기 만화 이것이 내일인가(Is this Tomorrow)”에서 아이들은 공산주의자들의 권력 상승이 "기아, 살인, 노예제, 그리고 무력"의 도구에 의존한다고 배웠다. 모스크바의 심복들을 피비린내 나는 붉은 필치로 그릴 때 모호함은 거의 없는 선명성이 두드러졌다.

그러한 위협을 고려할 때, 군산복합체(congressional-military-industrial complex)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국방비 증가에 대한 간단하고도 대중적인 근거를 찾았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1년 동안 미 의회는 국방비의 20% 증액을 승인했다.

베를린 위기, 중국 내전에서의 공산주의 승리, 1949년에 일어난 옛 소련의 성공적인 핵실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의 형성은 미국인들이 그들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 기계가 필요한 미래를 예고했다. 물론, 미군의 성장은 세계무대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의미했고, 이는 급증하는 국방 예산의 추가적인 이점이었다.

* 개인적 및 정치적 이득

국가 안보 목적을 수행하는 동안, 냉전은 미국의 정치 지형 전반에 특정 이익 단체와 개인들을 홍보할 수 있었다. 놀랄 것도 없이 기회주의 정치인(opportunistic politicians)은 그들만이 국가의 안보를 수호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전시라는 그럴듯한 말을 하면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위스콘신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Joseph McCarthy)는 포퓰리즘 지지율을 얻기 위해 동료 시민들을 서로 겨루며 가장 악명 높은 것으로 입증됐다. 1950년 매카시는 세계가 두 개의 적대적인 무장 캠프(hostile armed camps)”가 있다면서, 국가가 파괴 사막의 등대(a beacon in the desert of destruction)”가 될 것을 촉구했다.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은 자신이 비()미국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캠페인을 이끌었다. 그의 몰락은 아닐지 몰라도 대중적 악명은 냉전 공포가 어떻게 이용되고, 정치적 보상으로 어떻게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매카시의 붉은 공포(Red Scare)가 시사했듯이, 미국 내 인식된 공산주의의 위협은 또한 보수적 사회 비평가들에 의해 빠르게 변화하는 미국 사회에 합의를 강요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예로, “빨갱이 사냥자(red baiters)”들은 남부 흑인 청년회의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잠입되었고, 더 큰 민권 운동은 아나키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전선이라고 악의적으로 주장했다.

오늘날의 보수주의자들은 마찬가지로 개인의 정체성, 권리 및 더 넓은 이민에 대한 통합을 촉진하려는 미국주의를 촉진하기 위해 다른 위협에 사용할 수 있을까? “냉전 합의(Cold War consensus)”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그렇게 믿고 있다.

* 신화와 현실

1990년대는 냉전의 승리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음을 암시했다. 탈냉전 세계에서 국제 시스템의 안정성이 무너진 것처럼 보였을 뿐만 아니라, 통일된 적의 부족함은 미국 시민들을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숨 막히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호소하는 등 가정에서 요란한 문화전쟁을 벌였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주창하며,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에 근거한 언어 사용이나 활동에 저항해가며 그것들을 바로 잡으려는 운동을 말한다.

정치학자 존 J.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1990년 냉전 말기에 유럽이 과거 침략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창출한 국가 시스템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공교롭게도 미어샤이머는 최근 냉전 이후 나토가 옛 소련 국가들에 밀어붙인 것이 현재의 전쟁에 대한 책임이라고 제안했다. 아마도 냉전은 정말로 두려워했던 만큼 안정감을 제공했을 것이다.

20019/11 테러와의 글로벌 전쟁은 21세기를 위한 미국의 새로운 대전략을 구축하기에 충분히 실존적인 새로운 위협에 대한 약속을 제공했다. 2002년 국정연설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아들 부시)은 미국이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기 위해 무장하는 악의 축(an axis of evil)”에 직면해 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모든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 악의 축과 테러 동맹국(terrorist allies)’은 냉전 공산주의자들이 있는 한 미국의 관심을 지속시킬 만큼 충분한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20년 동안 폭력적으로 남아있었지만, 그곳의 위협은 실존적이기보다는 국지적으로 보였다.

푸틴의 러시아는 오늘날 선과 악을 겨루는 새로운 투쟁인 글로벌 냉전으로의 복귀 가능성을 예감하고 있다. 따라서 바이든 대통령이 냉전을 추구하지 있지 않다는 주장을 고려할 때, 미국인들은 21세기 냉전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신화와 기억 속의 냉전은 통일된 미국인들이 상당히 안정적인 국제 시스템을 이끌었던 더 목가적인 시대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수십 년은 미국인들이 인정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국내외에서 훨씬 더 논쟁적이었다. 아마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확증편향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 미국 주도의 세계평화)에 젖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비로운 초강대국을 누리는 데에 생각을 모았을지도 모른다.

워싱턴의 일부는 실제로 새로운 냉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기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들(policymakers)은 국가를 그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읽기를 해야지 상상속의 화려했던 과거에 더 의존하는 일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는 지금 민주주의의 쇠퇴에 권위주의(강권주의)의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절대적 가치처럼 여겨 지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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