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닮은 당대표였으면 좋겠다
이완구 국무총리 닮은 당대표였으면 좋겠다
  • 김동일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06 18: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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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기득권화 되어버린 5.18과 4.3과의 대결을 귀찮다고 거부하고, 무섭다고 도망가는 그럼 사람은 말고, 유리벽을 깨고 걸어 나와 국민들의 애끓는 말을 경청하고 국민들의 뜻을 받들 줄 아는 그런 정치인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수년 동안 4.3바로잡기 운동을 해왔지만 부끄럽게도 이룬 것은 없었다. 그러나 많이 싸웠다. 게시판에 수많은 4.3 글을 쓰면서 4.3정부보고서의 7대 거짓말이라는 책도 한 권 내었고, 수많은 성명서와 기자회견문, 청원서, 투서도 써봤고, 그리고 탁상에서만 운동한 것이 아니라 서울과 제주에서 가두집회, 기자회견, 세미나도 셀 수 없이 주최했었고, 4.3평화공원 참배를 막기 위해 국무총리가 탄 차량 앞에 뛰어들기도 했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4.3바로잡기 운동은 실적이 없었던 것은 막강한 4.3중앙위원회 때문이었다. 결국 결론은 4.3 왜곡의 몸통은 4.3중앙위원회였고 4.3중앙위원회를 그냥 두고서는 4.3바로잡기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박근혜 정권은 유한하고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후반부에는 4.3중앙위원 교체에 총력을 쏟게 되었다. 4.3중앙위원 교체는 국무총리 지시 한마디면 해결이 되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그때부터 4.3집회의 모든 타켓을 국무총리로 조준했다.

4.3정립연구유족회원 두 사람과 나, 세 사람은 4.3유족들이 챙겨준 피 같은 여비를 들고 제주도에서 국무총리가 있다는 세종시 정부청사를 찾아갔다. 당시 국무총리는 황교안이었다. 국무총리는 꼴도 구경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근처에 여관을 잡고 공무원들이 출근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3박4일 동안 정문과 후문에서 피켓시위를 하면서 수천 장의 유인물을 공무원과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4.3이 바로잡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4.3유족들의 염원과 대한민국 역사가 제대로 서기를 바라는 호국영령들의 염원이 황교안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4.3은 변함이 없었고 황교안도 변함이 없었다. 황교안도 박근혜만큼이나 구경하기 어려운, 구름 위의 신선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황교안이 살고 있다는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앞을 찾았다. 총리공관 근처는 집회금지 구역이었고 1인 시위만 가능했다. 제주에서 두 사람이 상경하여 4박5일 계획으로 삼청동에 민박집을 잡았다. 여기에 자유논객연합 회원들과 아스팔트 애국단체 몇 분이 동참하여 두 군데에서 교대로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살을 에는 영하의 날씨였다. 총리공관 정문에는 우리말고도 먼저 자리를 잡은 1인시위자가 있었다. 70이 넘어 보이는 작고 남루한 노파였다. 그 할머니는 큰 피켓은 길가에 세우고 작은 피켓은 목에 걸고 있었다. 시위 내용은 10여 년 전에 사랑하던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는데 그 처리절차에 문제점이 많으니 재조사를 해달라고 황교안에게 사정하는 중이었다. 아마도 큰 문제는 잘 모르겠으나 할머니는 딸을 잃은 애통한 마음을 1인시위로 달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시위가 10년째라는 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딸을 잃은 후부터 하루도 빼먹지 않고 시위를 이어왔고, 그날도 영하의 날씨를 뚫고 자기 몸집보다 큰 피켓을 들고 총리공관을 찾아온 것이었다. 지성은 감천이라서 할머니의 애통한 뜻은 하늘도 뚫었을 지 싶었는데 그런데 여기는 영하의 삼청동, 할머니의 딸을 향한 사랑은 황교안의 담을 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할머니의 시위는 청와대, 경찰청, 국회의원, 국무총리까지 10년 동안 이어졌지만 여기는 영하의 대한민국, 할머니의 염원은 그 어느 담도 넘지 못하고 총리공관 맞은편 길에서 고드름으로 얼고 있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10년의 세월 동안 사람인데도, 대한민국 국민인데도, 고관대작의 담벼락 아래에서 할머니는 유령처럼 떠돌 수밖에 없었더란 말인가.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그렇다면 청와대나 경찰청, 국회의원들 중에 10년 동안 할머니의 말을 들어준 사람이 아무도 없더란 말입니까? 아니, 지나가면서 유리창을 내려서 손을 흔들어준 사랑이 딱 한 명 있었어요. 아~ 그래도 아직 사람 닮은 사람은 있었구나. 나도 시위와 집회를 많이 다녀봤기에 그 소통의 기쁨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건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누가 그랬습니까? 이완구 국무총리가 그랬어요. 아~ 아뿔싸, 이완구는 이미 몇 달 전에 성완종 비자금 사건으로 낙마한 터였다.

우리는 미리 허가를 받고 시위 마지막 날에 공관 앞에서 비공식 기자회견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황교안이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자유논객연합 회원들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황교안 앞에 현수막을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의 뜻을 황교안에게 전달시키자는 목적이었다. 시간에 맞춰 대형현수막을 들고 성명서를 낭독하고 구호를 외치는 중에, 우리 대열 앞으로 황교안의 검은 차가 미끄러져 왔다. 혹시나 차를 세우고 황교안이 내려서 우리 성명서를 받아준다면, 아니, 유리창만이라도 내려서 우리 현수막을 쳐다봐준다면, 제주도에 있는 늙으신 4.3유족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줄 수도 있을 터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검은 세단은 딴나라의 차처럼 묵묵히 부드럽게 미끄러지면서 저쪽 나라로 사라져갔다.

보수우파를 대표하는 한국당의 당대표를 뽑는다고 하니 문득 이완구가 떠올랐다. 애국우파 시민들은 얼마나 한국당을 향해 소리쳤던가. 그러나 애국우파와 한국당 사이에는 두꺼운 방탄유리가 있었다. 방탄유리 바깥에는 애닮은 국민들이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고 있었지만 방탄유리 안쪽은 따뜻하고 소음도 들리지 않는 한국당 정치인들만의 천국이었다. 한국당 정치인들은 거기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겁쟁이였고 그 안에만 있고 싶은 게으름뱅이였다. 그 두터운 방탄의 유리창을 내리고 가여운 노파에게 손을 흔들어준 이완구 전 국무총리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김진태, 황교안, 홍준표, 오세훈, 당대표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완구를 본받았으면 좋겠다. 한국당의 당대표는 한국당의 두터운 방탄유리를 깨고 국민들에게 걸어오는 사람이면 좋겠다. 국민들이 아무리 소리쳐도 유리벽 저쪽에서 듣지 못하는 사람은 말고, 국민들이 4.3폭동, 5.18폭동을 외쳐도 4.3폭도들에게 참배하고 5.18폭도들에게 참배하는 그런 사람 말고, 이미 기득권화 되어버린 5.18과 4.3과의 대결을 귀찮다고 거부하고, 무섭다고 도망가는 그럼 사람은 말고, 유리벽을 깨고 걸어 나와 국민들의 애끓는 말을 경청하고 국민들의 뜻을 받들 줄 아는 그런 정치인이 나왔으면 좋겠다. (참고로 이완구는 성완종 사건에서 2017. 12. 22. 대법원 무죄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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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2019-02-08 09:26:46
이완구총리는 현직충남도지사때 큰아들결혼식, 장모상, 부친상 을 주위에 알리지 않고 진행 했으며 충남도청 이전지에 부친소유 땅 보상비도 국고에 반환 했습니다. 지도자의 모범을 보이셨는데 말도 안되는 삼천만원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강한자 한테는 강하고 약자한테는 한없이 따뜻한 사람 이완구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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