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함도'와 경성의 '딴스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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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와 경성의 '딴스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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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가슴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사실을 냉정한 머리로 쳐다보는 것

▲ ⓒ뉴스타운

매스컴의 각광을 받으며 개봉한 영화 '군함도'가 네티즌들의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군함도는 기본적으로 반일영화다. '반일'은 좌파정권에서 종북을 덮기 위한 전략으로 내세우는 좌익의 이념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스탠스가 어정쩡하다보니 좌우 양쪽에서 냉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군함도는 일제시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을 당했다는 탄광이 있는 일본 하시마섬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위안부 강제연행이나 강제징용이라는 용어는 사실보다는 선동을 위해 창조된 정치적 용어다. 여기에는 '강제'도 있었지만 '자발'도 있었다. 강제가 없었다는 일본 우익이나 자발이 없었다는 한국 좌익이나 거짓말과 선동은 거기서 거기다.

영화 군함도는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개봉 중으로, 중국 관영채널에서는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서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군함도 영화 제작에는 대규모 중국 자본과 민족문제연구소가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 언론과 한국의 좌익언론들이 영화 '빨아주기'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영화 장면 중에는 탄광의 근로자들이 모여 촛불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문재인은 걸핏하면 자기 집권을 촛불혁명이라 했다. 그렇다, 이 영화는 문재인 정권을 향해 딸랑딸랑 울리는 유승완 감독의 쌍방울인 것이다. 영화 군함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국과 남한 좌익을 위해 만들어진 선동영화다.

그런데 한국의 좌익들도 군함도에 대해 비난을 아끼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입맛에 안 맞기 때문이다. 좀 더 짜릿하게 만들어야 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군함도 탄광에서는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강제 노동을 시키고, 잔인하게 죽이고, 비참하게 탄광에 매몰되는 조선인들이 그려져야 하는데, 웬걸 영화는 그러지 못했다.

영화에는 조선인을 통제하거나 억압하는 일본군도 없었고, 조선인들은 유곽에서 여자와 술도 마시고, 심지어 오밤중에 모여 촛불집회도 연다. 게다가 일본인보다 더한 악당으로 그려지는 사람은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동족을 속이는 조선인이다. 영화 군함도는 반일에 세뇌 되어버린 좌익들의 눈높이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영화였다.

아마도 남한 좌익들은 일본 군함도를 미국의 알카트라즈 감옥이나, 구소련의 시베리아에 있었던 수용소 군도 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군함도는 일제시대 당시 최초로 지어졌던 최신식 아파트와 학교, 술집, 꽤나 흥청거렸던 유흥가가 있었던 탄광촌이었을 뿐이다. 당연히 집단 탈출을 시도할 이유도 없었다.

군함도를 왜곡시킨 주범은 좌익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언론들이다. 언론들은 군함도를 무슨 생지옥으로 묘사하고 덩달아 일본을 괴물처럼 매도하며 이념의 딸랑이 노릇을 했다. 언론들의 선동에는 탄광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했다는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등의 낙서 사진도 있었다. 그러나 이 사진이 조작으로 밝혀진 것도 이미 십 수 년 전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일제시대는 거의 80% 이상이 문맹이었다. 탄광 노동자들 중에 저런 한글을 쓸 정도의 학력 소유자는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제시대에 촛불집회라니, 일제시대에 양초는 귀중품 취급을 받아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용품이 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정치적 이념에 아부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것은 남한 좌익의 못된 버릇이다. 좌익들의 주장대로라면 일제시대의 조선 천지는 공포의 도가니였다. 이런 선동에 넘어간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백주대낮에 어염집에 들이닥쳐 위안부로 팔아넘기기 위해 아녀자를 납치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고, 일본인들은 마구잡이로 조선인들의 재산을 수탈해 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그런 장면은 정확하게 조선 땅에서는 없었다. 조선 땅에도 군함도에서처럼 술집도 있었고 영화관도 있었고,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명동을 활보하는 '모던 뽀이'도 있었다. 다섯 곳의 백화점은 호황을 누렸고, 30여 개 이상의 영화 잡지가 발행되었다. 단성사와 우미관 등에서는 나운규가 만든 영화가 상영되고, 거리에는 윤심덕이 부르는 '사의 찬미'가 흐르고 있었다.

소설가 심훈은 농촌 계몽운동을 배경으로 청춘남녀의 사랑을 그린 소설 '상록수'를 쓰고 있었고, 김소월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라는 '진달래꽃'을 쓰고 있었고, 1937년에는 한 레코드 회사 소속 여성 8명이 조선총독부에 "경성에 딴스홀을 허(許)하라"는 탄원서를 내고 있었다.

일제시대는 암흑기도 아니었고 공포기도 아니었다. 일제시대에도 조선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 가슴에도 희망과 생명의 푸릇한 가지들이 자라고 있었다. 역사는 가슴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사실을 냉정한 머리로 쳐다보는 것이다. 그러니 걸핏하면 친일파를 입에 담는 사람들이여, 이제라도 세뇌에서 깨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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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light 2017-08-04 11:03:1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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