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대결은 강성부국을 가로막는 암 덩어리다”
“이념대결은 강성부국을 가로막는 암 덩어리다”
  • 장수명 상임고문
  • 승인 2015.12.0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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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정권 10년 동안 빨갱이 천국 됐다” 애국 국민들 우려

▲ ⓒ뉴스타운

政治(정치)를 잘해야 나라가 흥한다. 이는 眞理(진리)다. 조선조 500년은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피폐하게 됐고, 결국 日本에 4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려 理念對決(이념대결)로 또 다시 6.25같은 전쟁을 겪어야 했다.

그래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세계경제대국 13위에 올라 있으며, 세계 7번째 ‘20-50클럽’ 가입 국이 됐다.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을 넘어 선 위상 높은 나라가 됐다.

그러나 화려한 외면보다 그 내부는 여전히 격동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아직도 민주투쟁 중으로 비춰지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 아닌가.

좌파정권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나라는 온통 빨갱이 천국이 되다시피 했다. 웃기는 소리 같지만 빨갱이 아닌 자를 찾기가 어려울 지경까지 와있다. 정치, 법조, 학계는 몰론 우리사회 곳곳에서 종북좌파들이 암약하고 있으니 나라는 항상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MB 정권의 정치력 부재로 경제인들은 큰 타격과 손해를 입었다. 과거 전두환 정권이 언론을 탄압하자 반대급부로 한겨례신문이 생겨났다. 그런데 지금은 좌파 언론이 70%라는 말을 실감케 하듯 정권과 정책을 무조건 비평하고 반대하는 언론들이 부지기수다.

이들 좌파언론들이 여론을 호도하고 박근혜 정부와 정면승부를 걸 듯 툭하면 걸고 넘어진다. 애국 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은 몇 안돼 보인다.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세력이 확산되면 나라의 미래는 뻔하다. 소요와 폭동이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기 마련이다.

제주 4.3폭동이 그랬고, 5.18 광주사태가 그랬다. 좌파세력들은 폭동과 사태를 뒤집어엎어 모두를 민주화 운동으로 만들어 버렸고, 천문학적인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붓고 있다.

지금 애국언론과 애국시민들이 역사바로세우기에 나섰으니 언젠가는 정확한 진실이 밝혀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종북좌파 또 찬북세력들은 거대기업은 무조건 쳐 부셔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당연히 기업 환경은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 기업인들도 이런 상황을 참고로 알고 있어야 하며 도두가 합심해 이들의 음모를 막아내야 한다. 스스로가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정치권은 예전의 당파싸움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눈만 뜨고 세력끼리 아옹다옹이고, 집안 내 다른 세력들끼리도 서로 상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지난 역사는 이랬다. 한훤당 김굉필은 조광조의 스승이다. 조광조가 입각할 당시상황은 성종 때부터 계속 되어온 당파싸움으로 노론이 득세했던 시대다. 조광조는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시행, 훈구파를 정계에서 추방시키는 바람에 훈구파의 원한을 사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훈구파에 의해 왕위를 노린다는 모함을 받게 되어 벼슬에서 쫓겨나 3족이 멸문 당하고 자신도 유배지에서 죽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김굉필은 조광조의 스승이기 때문에 유배는 되었으나 다음 임금 때 복권되어 영의정으로 추서되고 현풍에 사당을 제수 하였다. 그는 백성 속에서 사는 지혜를 일깨워 주었으며 그의 정신은 훗날 남명 조식이 뜻을 이은 성리학이 됐다.

성리학을 반대하는 주자학파로는 퇴계 이황, 정철, 송시열 등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士(사)는 선비로써 정계에 진출하지만 은퇴 후에는 낙향하여 후배를 키웠다. 반면 낙향하지 않고 한양에 머물면 大夫(대부)라고 지칭해 주었다.

사대부는 진퇴가 자유롭고 은거하면 제자 교육의 의무가 주어졌다. 주자학은 자기주장만 하고 남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자 외는 이단으로 여겼다. 그 유학자들의 고집에 의해 나라가 멍들고 글로벌 시대 진입이 늦어 일본에 침략을 당해 40년간 노예생활에 버금가는 고통의 날을 보내게 된 것이 아닌가?

남명 조식은 한양 태생으로 벼슬은 않고 낙향해 학문에만 전념했다. 진주 지리산 등지에 서당을 세우고 후학에 전념, 민초들과의 삶을 중시 했다. 이와는 반대로 이 퇴계는 안동출신으로 3차례에 걸친 과거시험으로 벼슬을 한 큰 부자였다. 하인만 200명 이상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백성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선조는 평양, 의주로 피신했는데 30명만 선조를 보좌하고 다 도망가고 말았다. 일본은 20일 만에 한양에 진입했는데 당시 일본은 오다 노부나가 사후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등장해 100여 년 간 계속된 일본의 내란을 수습하고 통일국가 수립에 성공했다.

끊임없는 정쟁과 자신에 대한 불평세력의 관심을 밖으로 쏠리게 하고, 오랜 전쟁으로 인한 곡식부족 해결 및 휘하 장군들의 불만무마와 쌀 보급 확보를 위하여 조선을 침략한 것이 일본이다.

당시 조선 군인은 3,000명 뿐 이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경남지사 아들 곽재우(손서)가 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해 관군이 버리고 간 무기로 무장 훈련했다. 그러나 이 퇴계가 살던 지역 주민들은 다 도망해 버렸다.

남명 조식은 민초와 한마음이 되어 곽재우의 부름에 많은 의병을 모아 주었다. 곽재우는 이러한 의병을 통해 후방교란을 하는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으나 그 역시도 일본을 초토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후에 유성룡, 사명당(의병활약), 이순신 장군이 혁혁한 전과로 부각되자 이 역시 이간질을 하는 세력이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의 전과에 질투를 느낀 원균의 이간질에 의해 전쟁 중에 있던 이순신 장군은 투옥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나라가 망해도 자기 당파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후에 다시 부름을 받아 백의종군하여 남은 거북선 12척으로 일본 배 200척을 대파(명랑대첩) 했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서 성공을 해도 똑 같이 당파싸움으로 인해 쫓길 것이 확실시 되므로 죽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가 않다면 후방에 있어야할 장군이 전쟁터의 선두에서서 노출된 진두지휘를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는 후방보다 전쟁터를 선택했고 결국 전쟁터에서 일본군의 조총에 맞아 순직했다. 영웅의 최후 모습은 큰 빛을 발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정치인들의 실수가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라야 어찌됐건 서로 반대편 사람들을 헐뜯고 내치려는 행동 그 때와 지금이 뭐가 다른가 말이다.

또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당리당락에만 매 달리면 이순신 같은 명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 같은 인물은 몇 백 년 만에 한 명 나온다고 할 정도로 역사는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세계경제대국 13위, 세계 7번째 ‘20-50클럽’ 가입 국,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달러의 대한민국은 영원하지 않다. 글로벌 시대 대한민국의 정치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라는 패망 월남을 답습할 수 있다.

정치가의 실수로 나라가 망한다는 교훈을 준 남명 조식 선생과, 이순신 장군의 역사적 사례가 지금 이 시간 우리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해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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