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시골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황금시대를 개척한 나카소네 총리는 지금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가 태어난 1910년대는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박정희 대통령,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이 탄생한 시기 이기도 하다. 나카소네 총리의 책을 읽으면서 한국 지도자들의 반지성을 먼저 떠오른다. 그의 책은 이책을 포함하여 3권이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이다. 수년전 읽은 영문글에서 동서양의 지적 격차가 결국 선각자들의 저술을 회피한데 있다는 지적이 떠 오른다.
60년 보수 정치인으로 고령의 정치인의 지적(시각)은 일본 정치를 넘어 한국의 현실도 투영된다. 자신이 관료로서 정계에 입문하였으나 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의 일본의 선택을 들면서 관료정치의 문제, 즉 국가전략이 실종한다는 사실을 적시 한다. 최근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의 저서 소프트 파워가 새삼 연상된다. 또한 지도자에게는 선견성, 구상력, 실행력, 담력 등이 필요함을 제시한다. 그가 오랜 정치 현장에서 느낀 점을 9가지로 요약하여 리더십의 요소로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관심사는 책의 제목에 제시된 보수에 대한 정의였다. 그에 따르면 보수는 불역(不易)과 유행(流行), 즉 원칙을 지키며 혁신을 통해 변신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는 영국의 유명한 보수주의 이론가 에드먼드 버크의 설명을 덧붙인다. 이러한 상이한 요소를 결합하는 논리적 구조는 실상 서양의 사고방식에선 일반적이다. 일찍이 영국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이 말한 '이종의 결합', 조지프 슘페터가 말하는 '혁신(신결합 혹은 창조적 파괴)', 찰머스 존슨의 '이원적 사고방식(binary modes of thought : BMT)'이 좋은 예이다.
이 책이 한국인에게 더 다가오는 것은 전후의 성공과 이후의 침체라는 양국의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나카소네 총리는 이 책의 직접적 저술 이유가 자민당의 몰락과 부침에 대한 소회인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일본은 전후 놀라운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으로 1980년대 Giant 나아가 21세기 패권시대를 이끌 국가였다. 하지만 이후 일본은 외교적 혼선과 포퓰리즘의 악재속에 소위 "잃어버린 20년"을 겪게 되었다. 나카소네 총리의 풍부한 경험 속에 생각하는 정치인의 날카로운 직관은 일본의 침체는 보수의 가치를 잃은 데서 찾고 있다. 즉, 새로운 세기의 비전(국가전략)과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통렬한 분석이다.
'보수의 유언'이 우리에게 더 다가오는 것은 동일한 시기 한국의 경우도 '한국병'이란 국가 지도력의 실종에 "잃어버린 세대"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이유도 민주화와 보수에 대한 의식이 없이 새로운 환경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같이 6공 정권들은 성장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은 결여되고, 포퓰리즘적 새로운 정치를 개혁의 이름으로 행한 것이다. 한국의 집권여당은 일본(자민당)과 달리 역사, 전통, 문화를 중시하지 않았다. 문민정부에선 역사와 전통, 문화를 경시하고, 최근 서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탈이념적 개혁을 정치 구조의 중심에 두는 우를 범했다.
결국 집권말기 IMF로 요약되는 국가경영의 좌절은 진보정당(국민의 정부)에의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이후 10년간 진보정권은 사회주의적 친북적 정책과정은 국가정체성의 해체, 서민의 절망감을 이용한 이념(계층)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수 양당체제 속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일본과 달리 남북대치 상황에서 진보정당에의 정권교체를 겪은 한국의 험로는 상대적인 동시에 절대적이다. 또한 나카소네 총리와 같이 사색과 고민을 많이 하는 지성정치인을 배출한 일본을 마냥 부러워 해야하는 슬픔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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