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군경에 의한 토벌작전
제18장 군경에 의한 토벌작전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4.11.03 02: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5부 제주도 인민유격대의 발악과 군경의 토벌작전

1948년 4월 3일의 엄청난 돌발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제주도 빨치산들을 견제하는 유일한 세력은 경찰뿐이었다. 1946년 11월 26일 모슬포 일본 비행장 터에서 창설된 9연대는 말이 연대이지 병력은 불과 2개 대대, 그것도 오합지졸이었고, 지휘부는 이미 문상길 소위가 이끄는 하사관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김달삼은 9연대에 남로당원 4명(고승옥, 문덕오, 정두만, 류경대)을 프락치로 입대시켰다. 이 프락치 4명 중 정두만은 탈출하여 일본으로 도피했고, 류경대는 우익으로 돌아섰고, 고승옥이 핵심역할을 했다. 김달삼은 고승옥을 시켜 9연대를 4·3 공격에 참가시켜 가장 규모가 큰 감찰청(지금의 경찰청)과 1구서(1區署) 습격에 동원하기로 했다.

이때 김달삼이 파악한 9연대 상황은 “연대 병력 800명 중 400명은 확실히 인민유격대 편이고, 200명은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으며, 반동은 주로 장교급으로서 하사관을 합하여 18명이니 이것만 숙청하면 문제 없다”는 것이었다. 이덕구를 수행한 무장대 상황병의 주머니로부터 압수한 일지에 나타난 위 표현은 9연대가 얼마나 오합지졸이었고, 적화 되었는지를 웅변해 준다. 그런데 의외에도 9연대는 4월 3일 동원되지 않았다. 4월 3일 직전, 김달삼이 9연대에 심어놓은 프락치인 고승옥 하사관이 문상길 소위에게 무장투쟁이 앞으로 있을 것이니 경비대도 호응 투쟁하기를 권유했지만 문 소위는 중앙의 지시가 없으니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실제로 김남식이 밝힌 남로당의 시스템을 보면 장교는 남로당 중앙당의 지시만 받게 돼 있었다. 문상길의 이 판단 즉 남로당 중앙당의 판단은 빨치산 입장에서 보면 매우 잘한 일이다. 만일 4월 3일 유격대 작전에 9연대가 합류했다면 제주도는 그야말로 초전에 쑥밭이 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전국이 경악했을 것이고, 9연대는 즉시 해체되었을 것이며, 9연대에 있던 남로당 세포들이 즉시 제거됐을 것이고, 9연대가 장기간에 걸쳐 김달삼의 보충대 및 병기창고 역할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로당 중앙당의 판단이 김달삼 보다 한 수 위였던 것이다.

4월 3일 폭동이 발생하자 각도 경찰국에서 1개 중대씩 8개 중대 1,700명의 경찰을 모아 제주도로 급파하여 김태일 경무관과 최치환 총경으로 하여금 이미 파견돼 있던 100명의 육지 경찰병력을 총지휘하도록 했다. 제주도에는 공비, 경찰, 국경이라는 3개의 무장단체가 있었지만 전투능력과 경험은 무장공비, 경찰, 국경 순이었다.

4월 20일, 국방경비대 총사령부는 부산에 주둔하는 5연대 제2대대를 제주도로 보내 제주도 군정장관 맨스필드 중령의 통제하에 두었다. 바로 이 제2대대장 오일균 소령이 남로당이었다. 오일균 소령은 아직 훈련상태가 미숙하다느니, 경찰과 서북청년단원들이 민심을 악화시키고 있다느니 하면서 주민들로부터 공비출현 보고가 들어와도 이를 묵살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국방경비대가 공산당과 한패인 것으로 인식하고 공산당이 대세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9연대에는 김달삼과 내통해 있는 남로당 조직책이 3명 있었다. 부산으로부터 파견된 5연대 제2대대장 오일균(육사2기 군번 10072), 9연대 토박이 중대장인 문상길 중위(육사3기, 군번 10427) 그리고 9연대 정보관 이윤락 중위였다. 문상길과 오일균과 김달삼은 모의하여 5월 20일, 9연대 사병 41 명을 탈영시켰다. 이들 탈영병들은 경비대 트럭에 무기를 가득 싣고 한라산으로 가는 길에 대정지서를 습격하여 경찰관 5명을 살해하고 2명에 중상을 입힌 후 이어서 서귀포지서에 들려 임무수행 중이라 속여 또다른 트럭 1대를 빌려 타고 입산했다.

9연대장인 김익렬은 이미 남로당에 넘어가 버렸다. 겉으로는 작전을 하는 척 했지만 9연대 병력이 움직이는 곳에는 이미 인민군 무장대가 도망을 하고 없었다. 사전에 작전정보가 다 누설된 것이다. 그리고 김익렬과 김달삼 사이에 비밀회담이 있었다는 사실이 누설된 데다 조병옥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다가 김익렬은 5월 5일부로 파면되었고, 5월 6일부로 박진경 중령이 부임했다. 박진경 중령은 일본군 학병 출신으로 한라산의 지형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5월 6일 9연대장으로 부임한 박진경 중령은 수원에서 갓 창설한 11연대가 제주도로 이동하면서 5월 15일부로 11연대 연대장이 되었고, 그가 겨우 10일 동안 지휘했던 9연대는 임무택 대위가 떠 맡았다. 9연대는 말이 연대이지 겨우 1개 대대 정도에 불과한데다 병력이 제주도 원주민으로 채워져 있어 명실공히 빨갱이 부대였다. 9연대를 맡은 임무택 대위는 제11연대 작전주임 역할을 수행했다(나종삼). 9연대는 진작 해체됐어야 할 골칫덩이였다.

관련기사

핫이슈포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