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공비들의 만행
제14장 공비들의 만행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4.10.2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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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4월 3일 인민유격대의 공격과 5·10 선거 방해작전

G2보고서에는 당시 제주읍 관내에서 발생한 우익인사 학살사건들이 담겨 있다.

1) 1948년 4월 27일 오후 4시경, 화북3구 선거관리위원장이 무장폭도 30여명의 습격을 받아 선거 관계서류를 약탈당하고, 납치되어 피살되었다.

2) 1948년 5월 1일 새벽 1시, 제주읍 도평리에서 도평리 선거관리위원장이 자기 집에서 피살되었고 같은 날 대한청년단원 1명이 납치되어 인근 야산에서 피살되었다.

3) 1948년 5월 5일 새벽 2시 화북1구 선거관리위원장 집에 죽창으로 무장한 5명 정도의 공비가 습격하여 방밖으로 뛰쳐나가는 선거관리위원장을 죽창으로 찔러 살해했다.

4) 1948년 5월 5일 내도동 선거관리위원장이 자신의 집에서 죽창공비의 습격을 받고 돌담을 뛰어 넘으려고 하다 워낙 높은 담벽이라 피신하지 못하고 피살당했다.

5) 1948년 5월 8일 아라1구 선거관리위원장 집에 죽창공비가 침입하였으나 선거관리위원장이 피신중이라 그의 처를 살해했다.

6) 1948년 5월 8일 오동마을 선거관리위원장 집을 죽창공비가 습격했으나 선거관리위원장이 출타중이라 노모와 처, 두 살박이 젖먹이를 포함해 자녀 2명 등 4명을 살해했다.

정석균(2007.8, 국방군사연구소, 제주 4·3 사건의 진상)은 공비들의 만행 사례를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1) 4월 18일, 무장폭도들은 조천면 신촌리에서 60이 넘은 경찰관의 부모를 목 잘라 죽인 후 수족을 절단했고, 애월면 애월읍에서는 임신중인 반공청년의 형수를 참혹하게 피살했으며, 임신 6개월이 된 경찰관 부인의 배를 갈라 학살했다.

2) 4월 22일, 모슬포에서는 칠순이 넘은 경찰관 부친을 참살한 후 수족을 절단했고, 만삭인 경찰관의 여동생을 생매장했다.

3) 5월 19일, 제주읍 도두리에서는 30여명의 폭도들이 이미 희생된 대동청년단원의 부인 김선희를 같은 마을의 고씨 집으로 끌고 가 윤간 했다. 같은 장소에서 김승옥의 노모, 누이 옥분을 비롯, 16세의 소녀 김수년, 50세의 이 모 부인, 20세의 허 모 처녀, 36세의 김 모 부인, 3세 및 5세의 어린이 등 11명을 감금시켜 무수히 폭행한 후 이들을 산림지대인 ‘눈오름’으로 끌고 가 윤간하고, 중국 및 일본도 등으로 난자한 후 생매장하였다. 이 같은 사실은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김선희 여인의 증언이었다.

고재우(1998.7. ‘ 제주 4·3 폭동의 진상은 이렇다’, 36쪽)에 의하면 공산폭도들은 만행을 5월 10일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후로도 5·10 선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주민들을 학살했다.

1) 1948년 5월 15일, 밤 11시경, 닛본도와 청창으로 무장한 유격대 10여명이 조천면 조천리 고수택을 반동분자라며 습격하여 고순택(48) 그의 모친 김순랑(76), 처 부계생(48), 장남 고태식(24), 장녀 고태선(20), 차남 고태옥(19), 차녀 고태연(16) 등 7일 가족을 밧줄로 결박하고, 돼지를 약탈하여 이 모두를 조천리경 속칭 식산이라는 소나무 밭으로 끌고 가 닛본도와 철창으로 쳐 죽인 후 그 닛본도와 그 철창으로 돼지를 쳐 죽여 구워먹었다.

2) 그 다음 날인 5월 16일 밤 12시 경에는 무장 폭도들이 한림읍 한림리 양용운(43)이 선거위원이라는 이유로 그와 그의 처 오 완(42), 장남 양성보(17), 2남 양춘보(15), 3남 양득보(12) 등 5인을 납치하여 한림리 상대경 속칭 처나오름으로 끌고 가 몽둥이와 돌로 쳐 죽였고, 그의 초가집 3채를 불태웠다.

전 제주경찰서장 김영중은 “내가 보는 제주 4·3 사건”에서 공비들의 만행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1) 4·3의 주동자였던 고승옥, 백창원, 송원병은 “인민군이 목포에까지 왔으니 제주도로 상륙한 다음에 움직여야 한다”는 말 한 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동무들에 의해 사살됐다. 허영삼, 김성규 등이 위 3명을 인민재판에 회부해 살해한 것이다.

2) 인민유격대는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에 사는 정남국이 경찰을 돕는 민보단이었다는 이유로 1948년 11월 28일, 그 일가 11명을 모조리 학살했다. 임신 6개월 된 그의 처 김영선(31)을 비롯하여 장남 태언(10), 장녀 태희(8), 차남 태인(6), 누이동생 정양(17), 계양(25), 계양의 장녀 고성춘(3), 차녀 고양춘(2), 3녀 고계춘(1), 그리고 집에서 심부름하는 외갓집 오복길(15) 등 태아까지 11명을 납치 살해하여 구덩이에 파묻었다.

3) 인민유격대는 조천면 조천리에 거주하던 이장원이 돈, 쌀, 찌까다비(신발)를 보내라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며 가족 8명을 집단 학살했다. 여기에서 13세의 여아 이월색 혼자서 살아 남았다. 살해 당한 사람들은 아버지 이정원, 어머니 남금례, 숙부 이수남, 남동생 이만국(9), 이만선(7), 이만복(4), 2세와 3세 된 여동생들이다.

당시 경무부장 조병옥 박사는 4·3의 만행을 이렇게 정리했다.

“4월 3일 폭동이 일어나자 1읍(邑) 12면(面)의 경찰지서가 빠짐없이 습격을 받았고 저지리, 청수리 등의 전 부락이 폭도의 방화로 전부 타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살상방법에 있어 잔인무비하여, 4월 18일 신촌에서는 6순이 넘은 경찰관의 늙은 부모를 목을 잘라 죽인 후 수족을 다 절단하였으며, 임신 6개월 된 대동청년단 지부장의 형수를 참혹히 타살하였고, 4월 21일에는 임신 주인 경찰관의 부인을 배를 갈라 죽였고, 4월 22일 모슬포에서는 경찰관의 노 부친을 산 채로 매장하였고,

5월 19일 제주읍 도두리에서는 대동청년단 간부로서 피살된 김용조의 처 김성희와 3세된 장남을 30여 명의 폭도가 같은 동네 김승옥의 노모 김씨(60)와 누이 옥분(19), 김종삼의 처 이씨(50), 16세 된 부녀 김수년, 36세 된 김순애의 딸, 정방옥의 처와 장남, 20세 된 허연선의 딸, 그의 5세 어린이 등 11명을, 역시 고희숙의 집에 납치, 감금하고 무수히 난타한 후 눈오름이라는 산림지대에 끌고 가서 늙은이, 젊은이 불문하고 50여 명이 강제로 윤간을 하고 그러고도 부족하여 총과 죽창, 일본도 등으로 부녀의 젖, 배, 음부, 볼기 등을 함부로 찔러 미처 절명하기도 전에 땅에 생매장 하였는데, 그 중 김성희만 구사일생으로 살아왔다. 폭도들은 식량을 얻기 위하여 부락민의 식량, 가축을 강탈함은 물론, 심지어 부녀자에게 매음을 강요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등 천인이 공노할 그 비인도적인 만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이다.

해방이전부터 시작된 제주도 공산화운동은 단선-단정의 저지를 통해 적화통일을 이룩하려는 야무진 계획 하에 진행됐으며, 5월 10일을 전후한 전국 그리고 제주도에서의 선거방해공작은 바로 소련과 김일성을 수괴로한 북로당 및 남로당의 선동에 놀아난 제주도 빨갱이들과 그들에 놀아난 무식한 ‘사돈의 8촌’식 씨족사회가 벌인 일대 광란극이었다. 이 과정에서 반듯한 정신을 가진 제주도민들, 유지들 그리고 나라를 지키려는 군인 및 경찰 그리고 그 가족들이 짐승만도 못한 폭도들에 많은 희생을 당했으며, 힘도 없고 생각할 능력도 없는 무고한 주민들이 “너 야산대 빨갱이들에 협조했지?”, “너 토벌대에 정보 제공했지?” 낮에는 토벌군에, 밤에는 공비들에 의해 의심을 받고 마구 짓밟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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