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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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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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나 자신이 변한 것은 아닐까

내가 처음 사무실을 열 때 예쁜 비누받침을 하나 샀다. 나는 내 사무실을 갖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그래서 사무실을 열 때 무언가 기념할 만한 것을 하나 장만하고 싶었다. 장식품도 있었고, 집기들도 있었다.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날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나만을 위한 무엇을 하나 꼭 장만해서 사무실을 열게 된 것을 스스로 축하하고 싶었다. 그래서 산 것이 바로 비누받침이었다.그리 비싼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쏙 들었고, 나란히 진열된 다른 것들보다 조금 더 값이 높은 것이었다.

물건을 고를 때 항상 가격 앞에 망설이는 내가 그때만은 선 듯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건 나 자신에 대한 보상이야.”라고. 사실 조그만 사무실을 하나 열기까지의 내 삶이 그리 쉬웠던 것만은 않았었다. 그리고 그 받침에 어울리는 예쁜 색깔의 비누도 하나 샀다.

나는 손을 자주 씻는 편이다. 직업적으로도 손을 자주 씻을 필요가 있지만, 나는 찝찝한 것을 좀처럼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깔끔을 떠는 것은 아니다. 난 비교적 수더분한 편이다. 하지만 무언가가 찝찝해서 일에 집중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손을 씻게 된다. 그리고 깔끔한 기분으로 다시 일로 돌아가서 열중한다.

그렇기에 자주 손을 씻으면서도 비누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손에 뭐가 묻어서가 아니라 그저 깔끔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해, 두해가 지나도 비누는 좀처럼 줄어들지가 않는다.

물이 조금만 닿아도 부슬부슬 녹아내리는 요즘 비누와는 달리, 그 비누는 좀처럼 줄어들 줄을 모른다. 그래서 칠년이 지난 지금도 비누의 크기는 그 때와 거의 크기의 변화가 없다. 오히려 비누받침에 장식으로 두른 금테에 조금씩 녹이 슨다.^

몇 년이 지나고 사무실을 옮겼다. 그 때 많은 것들을 버리기도 하고 새로 사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인테리어 소품으로서의 구실을 상실한 그 비누받침과 비누는 버리지 않고 새 사무실로 가지고 왔다. 워낙 오랜 시간을 곁에 두고 지내다 보니 그 사이에 정이 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버리기가 아쉬워서 함께 가져왔다. 새로 옮긴 사무실은 세면대를 직원들이 함께 사용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과 같이 세면대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자 몇 년 동안 동일한 크기를 유지하던 그 비누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이 이제는 확연하게 느껴진다.

조금은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아까운 것은 아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사용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오랫동안 변함없던 것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는 아쉬움마저 없을 수는 없다. 비록 그것이 하찮은 비누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사람은 그렇게 조그만 것들에 정을 붙이고 살아가는 것이다.

비누뿐이 아니다. 많은 세월을 나와 함께 지내온 것들이 그런 식으로 하나씩 둘씩 사라져간다. 그러고 보니 지난 칠년이라는 세월동안 많은 것들이 나를 떠나갔었다. 조금씩 불거져 나오는 배 때문에 그 동안 바지들을 전부 바꿔야만 했다.

지갑도 한번인가 바꾸었고, 오래 신었던 구두들도 한두 개를 버렸다. 늘어나는 허리에 맞춰서 벨트도 바꾸었다. 심지어는 집도 옮겼고, 차도 바꿨다. 사무실의 집기들도 바뀐 것이 많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은 것을 바꾸고 버리고 해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는 모니터와 컴퓨터, 그리고 키보드도 바뀌었다. 그 컴퓨터를 쳐다보는 내 안경도 바뀌었다. 내 옆의 책장에 꼽혀있는 책들도 그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 책이 바뀐다는 것은 관심사가 바뀐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히려 변하지 않은 것이 더 적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정말 10년이 채 못 되는 시간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가 ‘그렇게 변하는 세상을 원망하고 있는, 나 자신은 변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래 그러고 보니 나 자신도 참 많이 바뀌었다. 내 옆에 있는 책들이 바뀌었다는 것이 바로 내 관심사의 변화를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그것 외에는 바뀐 것이 없는 것일까? 배가 나오고 독서의 관심사가 바뀌고 사무실을 옮긴 것 외에 보다 근본적인 어떤 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것인가?

혹시 사무실을 열고 세상을 대하려고 했던 원래의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닐까.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목적 자체가 변해버린 것은 아닌가. 조금씩 변해가는 내 사무실의 모습들처럼, 조금씩 내 삶이 지향하는 방향자체가 변해버린 것은 혹 아닌가.

겉으로는 별 변화가 없이 늘 같은 이야기들을 되풀이 하며 살아가지만, 실상은 그 이야기를 대하는 내 삶의 진지성 자체가 변해버린 것은 혹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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