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그 쓸쓸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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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그 쓸쓸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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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을이 찾아올 것이다

할머니는 내 손을 부여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선생님, 조금만 더 살게 해주세요. 죽는다는 건 너무 무서워서 그래요.” 나는 눈물이 글썽한 할머니의 눈을 쳐다보며 말한다. “그럼요. 왜 돌아 가셔요. 아직은 한참을 더 사실 거예요.” 그 할머니는 이제 80을 넘으셨다. 진료실을 돌아서 나서는 할머니의 뒷모습에는 쓸쓸함이 배어 있다.

죽음. 어쩌면 나는 이것에 대해 여지껏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는 많은 죽음을 접해왔었다. 레지던트 때는 밤마다 하얀 시트에 싼 주검을 영안실로 가는 침대에 옮기는 것이 일과가 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내가 접해 온 그 친숙한 죽음은 죽음이라기보다는 사망이었다.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엄숙하고 비장하게, 그리고 정성을 다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장의사가 정성을 다해 주검을 치장하는 것처럼...

수많은 죽음들의 행렬 속에서, 또 죽음과 가까스로 빗겨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나와 맺어진 환자들이 시간과 함께 늙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한 달 만에 본 그 할머니는 전보다 더욱 수척해져 있다. 내가 아무리 손을 꼭 잡아주더라도 할머니가 한 달 뒤에 다시 병원에 오실 때는 지금보다 더 수척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 이상 나의 진료실엔 걸어서 들어오시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죽음의 과정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그와 같은 속도로 늙어갈 것이다. 언젠가는 더 이상 이 진료실에 않아 있지 못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잘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예전 내가 어릴 때는 세상에 죽음이 더 흔했었다. 상여나 관도 지금보다 더 자주 보았던 것 같고, 동네 뒷산을 돌아다니면 주인 없는 무덤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죽음이란 것이 두려워서 병원이나, 장례식장 그리고 교회나 공동묘지에 죽음을 가두어 놓았나보다. 그래서인지 일상생활에서 죽음을 대할 기회가 훨씬 줄어들었다.^

죽음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고민의 대상이 아니라, 드라마속의 액션이고 좀 더 멋있게 연출해야할 와이어 액션이다. 죽음에 대한 비평도 한다. “OOO에 나오는 OOO가 죽는 장면이 정말 압권이었어...”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보험 상품을 들고, 장기저축을 한다.

자신의 묘지를 미리 봐두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고 한다. 그게 진정한 죽음에 대한 대책일까. 그것으로 죽음을 해결했다고 생각하고 죽음이라는 명제로부터 도망쳐가는 삶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인생이 아닐까.

나는 많은 주검과 죽음의 과정을 보아왔다. 세상에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이 없듯이, 가슴 아프지 않은 죽음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끔은 참으로 평안하게 죽음을 맞는 사람도 있다. 그라고 죽음을 맞아가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기꺼이 죽어간다.

때로는 오랫동안 병마와 시달려온 사람들의 죽음을 볼 때가 있다. 그 심한 병세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의지로 버텨간다. 그러나 결국은 그도 내 품에서 죽음을 받아드리고 만다. 그렇다. 아무도 죽음을 비켜갈 수는 없다. 우리는 매일같이 죽음을 향해 조금씩 다가간다.

그렇게 우리는 늙어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가는 과정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걸어가는 과정이다. 아득히 멀리 보이는 것 같은 그 곳을 향하여 쉬지도, 결코 뒷걸음치지도 않으며 한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다.

어디쯤이 끝일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걸음을 걷는 만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끝은 쉬 나타나지 않는다. 인생이란 끝이 나타날 때까지 결코 멈출 수 없는 여정이다. 여행이 길어지고 피로도 점점 깊어져 온다.

어느 듯 어둠이 짙어져 온다. 아이들도 집으로 가고, 지저귀던 새들도 둥지를 찾아간다. 나도 어딘가에 쉴 곳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피로가 쌓이기 전에 어딘가에 내가 쉴 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의 지친 다리를 뻗고 피곤한 허리를 쉴 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아늑한 안식처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좀 쓸쓸할 것이다. 그러나 쉬어야 할 때가 닥쳐오면 나는 약간의 주저함만으로 기꺼이 그곳에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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