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은 왜 멋있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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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은 왜 멋있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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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독 옷 욕심을 부리는 이유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면서 흑백사진을 찍기가 쉬워졌다. 예전엔 흑백사진을 찍으려면 특수한 필름에 암실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했었는데, 이젠 단지 셔트를 누르기 전에 흑백모드로 전환해 놓기만 하면 된다. 나는 흑백사진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도 흑백사진을 찍어볼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왠지 싫다. 내가 좋아하는 흑백사진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어릴 적의 사진. 당시에 찍은 사진이 몇 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의 나는 삐쩍 마르고 약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단지 몇 장의 사진에서 무언가를 꿈꾸는 듯한, 수줍으면서도 맑은 눈동자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흑백사진은 그래서 단순히 내 과거를 추억하는 기념물이 아니다.

책방에서 호기심에서 넘겨보는 책의 표지 여기저기에서, 혹은 전시회에서 작고한 작가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그런 사진들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한결같이 멋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사진 또한 무척 많다. 당시엔 내 어린시절보다 사진이 더 귀했을 텐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진을 남겼을까? 장차 이런 전시회가 열릴 것을 알고 젊어서부터 대비를 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정작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젊은 시절 사진이 아니라, 세월의 무게가 한 눈에 드러나는 그들의 만년의 모습들이다. 빛바랜 사진들 속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멋있는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두툼한 코트차림에 목도리를 두른 모습, 지팡이를 짚으며 낙엽이 떨어지는 거리를 걷는 모습, 머리카락을 날리며 하늘을 응시하는 모습, 그리고 동그란 플라스틱 안경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모습.

그리고 그들은 무언중에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놈아. 문학이란 걸, 예술이란 걸. 인생이란 걸. 그토록 쉽게 이루려 하였었더냐?” “너는 네가 지금 보는 것들이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들의 그런 질타가 두려워서 점점 전시회에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처음엔 구석구석 거의 모든 전시회를 빼놓지 다니던 내가, 차츰 세상과 삶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알아가게 되면서 나타난 변화였다.

그 대신 나는 가끔 옷을 사는 버릇이 생겼다. 평소 옷에는 거의 관심이 없이 늘 비슷한 옷만 입고 다니는 내가, 뜻밖에도 옷에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요즘은 복고풍의 옷들이 가끔 나온다. 그 중에 그들의 사진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두툼한 모직 자켓이나, 레닌모 같은 것이 눈에 띄면 나는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꼭 입어보고 써 보아야 한다.

나는 특히 레닌 모가 마음에 든다. 그러나 아내는 한사코 말린다.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봐도 잘 어울리지가 않는다. 돌려쓰고 눌러쓰고 삐딱하게 써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럼 이건 어때?” 하며 두툼한 복고풍 스웨터나 자켓을 가리킨다. 꼭 전시회에 나오는 사진속의 옷처럼 생긴 것들이다. “사기만 하고 절대로 입지도 않을 것이면서...” 아내는 그것도 안 된다고 말린다. 그게 겨울철에 가끔 백화점에 갈 때마다 되풀이 되는 풍경들이다.

아내는 사은품 행사에서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고 든든한 짐꾼으로 날 데리고 갔는데, 정작 나는 엉뚱한 곳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도 아내는 마음이 좋은 편이다. 자신의 옷은 잘 사지 않으면서도 어쩌다 한번씩 나의 간절함을 읽었는지, 내가 원하는 것을 사도록 허락을 한다. 하지만 대개 내가 마음에 두는 그런 옷들은 비싸기 마련이다. 계산을 하는 순간 엄청난 돈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다. 옷을 사놓고는 입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양복을 잘 입지 않는다. 그렇다고 양복이 잘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냥 왠지 싫을 뿐이다. 항상 잠바차림으로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내 모습은 동료들 사이에 꽤 유명하다. 얼마 전 무스탕 잠바를 하나 마련한 뒤로는 겨울에도 항상 잠바를 입고 다닌다. 호텔에서 중요한 회의가 열려도 나는 혼자서 노타이에 잠바차람으로 참석한다. 남들은 기사까지 동반하고 나타나는 격식 있는 자리가, 나에겐 그저 귀찮은 의전행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는 수 없이 양복을 입어야 할 때가 가끔씩은 있다. 한번씩 아내에게 물어본다. 저번에 산 특이한 넥타이를 한번 매고 가볼까? 사진에서 본 것과 거의 같은 모습의 넥타이를 꺼내어 물어본다. 아내는 고개를 흔든다. 그럼 내가 아끼는 이 양복은? 아내는 이번에도 또 고개를 흔든다. “그런 옷은 사람 만날 때가 아니라, 혼자 산책할 때 입어요.” 아내는 그렇게 말한다. 결국 그 옷들은 한번도 옷장 밖으로 나와 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 옷들이 나에게 삶에 대한 진지성을 더해주지는 않는다. 그들이 입은 옷을 입고, 그들이 언젠가 걸었던 거리를 걷는다고 내가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시대를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치열한 삶의 결과가 지금 우리의 가슴에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향해서 열심히 달려갈 때, 언젠가 혹 나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어떤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그런 옷들을 가끔씩 사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위로이다. 남들이 보기엔 지극히 평탄해 보이는 내 삶이지만, 내 삶엔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외로움이 있다. 어쩌다보니 세상살이 꾸리는 일에도 끼어들게 되고, 그러기 위해 뭉쳐진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유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만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또 다른 내면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가끔 그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외로이 서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왠지 외롭고 불쌍한 모습이다. 아직 진정 가치로운 것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쓸쓸하게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내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나 지신에게 가끔 위로의 뜻으로 그런 사치스러운 선물들을 주는 것이다. “그래 그것으로 그 시절의 향취를 맛보아라. 그리고 또 하나의 가을을 이겨내어라. 이번 가을에는 어떤 방황으로 또 무엇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어디론가 열심히 달려가고 많은 곳에 부딪히고 더 많은 삶의 모습을 겪어보아라. 내 쓸쓸한 분신이여.”

옷장 문을 닫는 순간. 다시 현실이 내 앞에 다가오고 나는 또 무언가를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내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찬바람을 맞고 서 있는 벗이 있기에, 내 마음은 이토록 따뜻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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