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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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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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꽃향기 가득한 교정이 눈앞에 열린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지나온 삶을 뒤돌아 보며 '되돌리고 싶은'기억들을 몇가지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우개로 지워 버리고 다시 쓸 수 있는 과거사라면 그렇게 고치고 싶은 기억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완벽한 인간이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너무도 삶에 미숙하고 어리석어서 이따금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다시 고쳐 버리고싶은 기억들이 여러가지가 있다.

그만큼 나는 실수가 많은 사람이다. 성경의 잠언에는 '실수가 없으면 완전한 자'라고 했다.나는 돌이켜보면 뜯어 고치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내 나이 마흔살이다.

이제는 지난 과거의 나의 실수나 부끄러웠던 기억들조차도 내 스스로를 용서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되었다.과거의 실수나 돌이키고싶은 것들까지 안고 살기엔 우리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으며 지금의 삶에도 다들 충분히 힘들지 않은가.

또 한편으로는 내 실수도 내가 용납할 수 있고 말할수 있는것은 세월의 힘이기도 할것이다. 고등학교 3학때,늘 반에서 5등 안에 들었던 나는 반에서 1등을 했다. 내 일생에 1등이라고는 해본 것이 없는 나였다.1등을 하면 아주 좋을 것 같았지만, 막상 1등을 하고보니 누구한테 자랑 할수도 없고 외로웠다.

나 일등했다면서 내놓고 자랑할수 없지 않은가.다만 내가 1등 했다는것을 스스로 알아서 챙겨주고 한마디씩 해 주기를 바랐을망정. 늘 반에서 5등안에 돌았고 미끄러졌을땐 10등까지도 미끄러져 본적도 있는데, 1등이라니...그런데 시시한 기분 뿐이었다.누군가와 함께 나눌수 없는 기쁨이라는 것이 그랬다.^

아침 조회 시간에 전교 학생들이 선 자리에서 내 이름 석자가 불리워지는 영광스런 순간도 짧은 한순간 뿐이었다.그럭저럭 시간이 지나갔다.3학년도 다 지나고 드디어 졸업식이 다가왔다.어느 날 오후,담임 선생님이 나를 살짝 불렀다.나는 담임 선생님 앞으로 다가갔다.

졸업식날 우등상을 받는 학생들 가운데 나도 넣을 수 있게 하고 싶은데 그 점수에 딱 1점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다.그동안의 전체 평균 점수에서 나온 점수를 말하는 거였다. 어쨌든 우등상을 탈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노우라고 말했어야만 했다.점수가 모자라면 안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그 순간 나는 상에 눈이 멀었던 것일까.아니면 선생님의 나름대로의 배려에 차마 노우라고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나는 그만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선생님은 내가 어려운 형편에도 항상 착실하게 공부하고 모범적인 학생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늘 수업료도 제일 꼴찌로 냈다. 졸업장마저 졸업식 전날에 겨우 교장인감을 찍어서 졸업식날 제대로 받을 수 있었을 만큼 그렇게 늘 늦게 내곤 하던 학생이었지만,

나름대로 성실한 학생으로 보아왔고 그래서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순전히 내 생각뿐인지도 모르지만.

졸업식 날이었다.강당 안을 크게 울리는 우등상을 받을 학생들 명단이 발표되었다. 그 이름들 가운데 내 이름 석자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자기 이름을 부르는 학생들이 다 일어나고 있었다.나도 일어섰다.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졸업을 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나는 졸업장과 앨범,그리고 우등 상장까지 다 잃어버렸다.이사를 자주 다닌 까닭도 있었겠지만,마음 한 구석에선 왠지 떳떳치 못한 껄끄러움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렇게 쉽게 잊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등상을 타왔지만 흔히 그러듯이 책상앞에 우등상을 붙여 놓거나 액자에 걸거나 하지 않았다.책상 서랍안에 그냥 넣어 뒀다가 굴러 다녔을 것이다.

그때의 부끄러운 기억은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생각이 나면서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어떨때는 그 때를 기억하며 부끄러워서 정말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점수가 좀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제자에게 상을 주고 싶었을지는 모르지만,

거절도 없이 받았는 나를 보고 무어라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어떻게 그 상을 받을 생각을 했을까. 난, 왜 그 정도의 인격밖에 안되었을까...

지금 내 나이 마흔살... 한동안 늦은 후회로 부끄러웠던 나는 이제는 그것 마저도 이해 하고 넘어간다.다시 이 글을 쓰면서 떠올려보는 그 때의 기억에 새삼 얼굴이 붉어지지만 지금은 이렇게 내 실수를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문득,그 시절이 그립다. 봄이면 교정안에 가득 하던 봄꽃들...교정을 들어서면 왼쪽에서 향기를 발하던 라일락꽃 향기,올라 가는 길목에서부터 쭉 길게 꽃길을 만들던 선홍빛 연산홍,

운동장 안을 환한 꽃구름으로 피어오르게 만들던 벚꽃 나무들과 상아관 앞에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곱게 피어나던 하얀 목련 꽃...그 아래서 웃고 떠들던 말총머리 양갈래로 묶은 소녀들...아...그립다.

가을이면,만산홍엽을 만들던 나무들,책을 들고 학교 뒷산에 올라 친구와 문학을 얘기하던 그 때... 노랗게 타오르는 듯하던 은행나무...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과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 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별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문을 바라다 보아야한다.

박인환시인의 '목마와 숙녀'을 함께 외우기도 하며,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시집을 노트가득 빼곡하게 적어서 매일 함께 외우곤 했던 그리운 친구...그 시절이 그립다.그리운 그 얼굴들은 또 어디에서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지...

어리석은 제자를 챙겨주시던 선생님...이제는 부끄러움 그것마저 그리움으로 회상한다.문득,조석으로 오르내리던 학교 교정이 눈앞에 환히 열리는것 같다.그 학교 동산에서 떠들던 가시내들이 보이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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