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을 이기는 약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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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을 이기는 약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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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변화시키는 약자의 네트워크

나라가 휘청거리고, 위기감에 빠졌을 때가 있었다. 공룡 같던 기업들이 매일같이 하나씩 믿을 수 없는 굉음을 내고 무너질 때, 사람들의 마음엔 균열이 일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길을 떠나야 했다.

집을 떠나고 길가로 나선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 동안 머물던 마음의 자리를 떠나야 했다. 당시 유행하던 말로 삶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었다. 이제껏 알던 인문적 지식도 소양도, 한순간에 퇴색해 버리고 ‘효율성’ ‘국제적 경쟁력’ ‘글로발 스텐다더’란 구호 속에 모든 것을 버려야만했다.

마치 ‘잘 살아보세’ 혹은 ‘정의사회구현’ 이란 구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었던 때처럼, 아니면 그 어느 순간보다 더욱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의 등을 떠밀고 내 몰아서 끝없이 달려가게 만들었었다. ‘살아남는 길은 하나 밖에 없다.’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그 당시 동아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던 ‘세이노’란 필명의 기고가가 쓴 칼럼을 열심히 읽었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어쩌면 새로운 시대에 필요로 하는 것들을 그토록 쉽고 간결하게 적을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일었었다. 인터넷에서 그의 지난 칼럼까지 찾아서 읽어보았었다.

‘자기개발’ ‘시간관리’ ‘위기관리능력’ 그의 이론은 그때까지 우리의 생각이 깃들어오던, 노동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가치창조에 대해 경건한 목소리로 설교를 하고 있었다. 나를 그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갑자기 눈앞에 다가와 버린 새로운 시대. 새로이 풍미하는 시대적 흐름에서 무언가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했다. 마침내 탄탄하기만 하던 그의 글에서 균열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시기가 왔다. 그러나 도무지 구체적인 것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뛰어난 논리전개와 해박한 지식을 갖춘 ‘김동춘 교수’가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진보가 보수가 되고, 보수가 진보가 되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른다.”고 개탄을 하던 지적혼란의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다.

나는 라틴 아메리카에 관심을 돌렸다. 세계화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았고, 세계화의 모순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곳에서 무언가 시사하는 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곳의 역사와 삶의 질곡의 기록들을 읽어가던 중에서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손에 잡힐 듯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멕시코 남부의 치아파스 주에서 일어난 농민운동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일어난 가장 특이한 방식의 이 운동은 무기를 지녔으되 권력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그들에 대한 수탈을 멈추게 하는 자치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의 가장 오지에 살면서도 가장 먼저 가장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한 실천집단이었다. 그들의 운동이 시작된 날은 바로 북미 자유무역지대(NAFTA)가 발효되는 날이었다.

“말이 곧 우리의 무기입니다.”라고 말하는 그들은 어쩌면 새로운 세계에 가장 어울리는 새로운 방식의 투쟁수단을 개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에 공표되는 그들의 실질적 지도자인 마르코스 부사령관의 말은 전 세계 시민단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무력으로 최대한의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내는 그들의 전략은, 어쩌면 새로운 세계에서 변혁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지도 모른다. 세상을 짓누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인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방법은 바로 다른 모습의 세계화, 즉 아래로부터의 세계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약자들이 만드는 네트워크가 혹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지는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물결의 시작은 바로 이곳 우리들에게서 시작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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