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그동안 너무 고생을 시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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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그동안 너무 고생을 시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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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붓글씨를 쓰다

^^^▲ 글을 쓰는 김형의 모습
ⓒ 김광진^^^
김 형은 어려서 서예를 배웠다고 한다. 김 형 자신은 절대 서예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붓글씨’라고 겸손하게 이야기 한다. 근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만만치는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붓글씨가 몇 년 만에 도전에서 입상을 했단다. 잘은 모르지만 그리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한번 김 형이 붓글씨를 쓰는 것을 보았다. 낮술을 한잔 걸치고 약간 거나한 상태에서 아내의 생일을 맞아 ‘한. 글.’을 쓴 것이다. 제법 폼을 잡고 먹을 갈더니 일필휘지로 써나가는데 조금 술이 오른 상태인데도 꽤 잘 쓴다. 그리고 그 글을 벽에 붙여놓고 다시 술을 마신다. 그 글씨가 꽤 마음에 드는가 보다.

‘여보. 그 동안 고생을 시켜 미안하오...’ 이런 내용의 글인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글이 줄줄 나오는 것을 보니 평소에 그런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평소 실실거리며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하는 김 형도 김 형네 부인 앞에서는 많이 무뚝뚝한 편인데, 마음속에는 그런 생각들이 가득 들어있었나 보다.

^^^▲ 김형의 글
ⓒ 김광진^^^
붓글씨를 보며 김 형에게 묻는다. “김 형 나중에 늙으면 뭐 할 거요? 조폭도 아닌데, 술일을 평생 동안 할 수는 없잖소?”라고 하니 “글쎄 나중에 정 할게 없으면 붓글씨 학원이나 할까요?” 라고 한다. 자신이 쓴 글씨를 보니 조금 자신이 생기는가 보다. 한 10년 만에 처음 써보는 글씨라는데, 지금도 꽤 쓰는 것을 보니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평소 나는 김 형에게 그런 질문을 제법 자주 한 편이다. 김 형이 지금 하는 일의 수입이 별로 신통하지도 않지만, 김 형이 자신이 술에 관계된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탓이다. “아이들이 도환이 에게 너희아빠 뭐하냐고 물을 때, 우리 아빠 술 팔어.”라고 대답하게 될 것이 제일 괴로워요.” 김 형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도 말이 턱 막혀버린다.

평소에 내가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느냐.” “어차피 모든 사람이 술을 안 먹고 살수는 없는 세상인데 누군가가 술을 공급해야 다른 사람이 먹을 게 아니냐.” “술을 먹어라고 꼬시는 술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도매업일 뿐인데 그게 무슨 마음에 걸리는 일이냐.” 등등의 말로 설득을 하지만 아이 이야기를 꺼내면 나도 할말이 없다.

설들에 지치면 나도 약간 퉁명스럽게 “그럼 뭐 할꺼요?” 하고 물어본다. “글쎄...” 라며 말꼬리를 흘린다. 서예원을 하는 것도 방법은 되겠지만 크게 마음을 두지는 않는 눈치다. 뭔가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인데,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남자가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가 그리 쉽지가 않은 탓이다.

그가 장래에 무엇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살는지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뭐라뭐라 위로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그의 삶에 구체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내가 아끼는 김 형의 장래에 대해서는 별로 그렇게 걱정하지 않는다. 김 형이 성숙해가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김 형의 소문난 절약정신, 조그만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자족정신, 그리고 가족을 끔찍이 위하는 그 사랑이 김 형이 무엇을 해서라도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김 형을 만난 때마다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좀 흔치는 않지만 그저 그냥 직업으로 생각하고 편하게 지낼 수도 있는 것을 그렇게까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그리고 가슴 아프다. 진실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도 그만큼 진실하지 못한 것을 깨닫는 것은 기쁨과 함께 아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끔 조용할 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내가 하는 일은 진정으로 떳떳한 일인가. 그리고 나는 김 형에 비해 내 삶에 대해 얼마나 진실하가.’ 그리고 또 생각을 한다. ‘나는 김 형네 비해 얼마나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 또 얼마나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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