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운/김병철 기자]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초대형 반도체 프로젝트가 용인에서 숨 가쁘게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시장이 하루 단위로 재편되는 지금, 사업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는 더 이상 계획의 규모가 아니라 실행의 속도라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대만, 중국, 일본이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반도체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단순한 지역 개발사업이 아니라 국가 산업 전략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지난 3월 31일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이 강남대학교 국제대학원 글로벌리더 최고경영자과정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약 1시간 40분의 특강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번 특강은 용인에서 진행 중인 초대형 반도체 프로젝트의 추진 상황과 미래 비전에 대한 설명 요청에 따라 마련됐으며, 강연의 핵심은 결국 하나로 모아졌다. 반도체 산업은 속도가 생명이라는 점이다.
이 시장은 강연에서 세계 각국이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현실을 짚으며,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 지원이 신속하고도 확실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3년이 늦어지면 반도체 산업은 완전히 무너진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는 발언은 현재 상황의 절박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용인에서 추진되는 사업 규모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계획한 투자 규모만 도합 100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일 도시를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른바 ‘천조개벽’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배경에는 그만큼 산업적 파급력과 국가적 상징성이 크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초대형 프로젝트가 인프라 공급 문제 앞에서 속도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과 안정적인 초순수 용수 공급 없이는 단 하루도 정상 가동이 어렵다. 다시 말해 전력과 용수는 단순한 기반시설이 아니라 산업단지의 존립을 좌우하는 핵심 축이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의 실행 속도는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용수 공급 문제는 더욱 민감하다. 현재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에는 여주보에서 약 36.8㎞ 길이의 관로를 통해 하루 26만5000톤의 용수가 공급될 계획이다. 그러나 최근 4대강 보 해체 및 상시 개방 관련 연구용역 발주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업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만약 여주보가 해체되거나 상시 개방으로 운영 방식이 변경될 경우, 용수 공급 체계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장이 강연에서 이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용수 공급의 불확실성은 단순히 지역 현안이 아니라 국가 전략산업의 기반을 흔드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전력 공급 문제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와 일반산업단지에 필요한 공급 계획은 수립됐지만, 정작 실행 단계에서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2단계 전력 공급 계획과 관련한 행정 절차가 지연되고, 송전망 구축을 둘러싼 갈등 조정 역시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사업 추진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대목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책임의 문제다. 송전과 용수는 지방정부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국가 전략산업에 필요한 핵심 인프라 공급과 갈등 조정은 결국 중앙정부의 몫이다. 이해관계 충돌을 조정하고 정책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자 존재 이유라는 이상일 시장의 지적은 단순한 정치적 발언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더욱이 용인 국가산단은 이미 국가 차원의 전략성을 인정받은 사업이다. 2023년 정부가 발표한 14개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가운데 실제 정부 승인이 이뤄진 곳은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가 유일하다. 통상 4년 6개월가량 걸리는 승인 절차가 1년 9개월 만에 마무리된 것은 정부 역시 이 사업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정책 발표 당시에는 속도를 강조하고, 정작 인프라 공급과 갈등 조정 단계에서 머뭇거린다면 시장과 기업, 투자자들이 느끼는 것은 불확실성뿐이다. 이는 곧 국가 신인도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세계 시장이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국내 핵심 프로젝트가 행정 지연으로 발목을 잡힌다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 약화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결국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는 지금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산업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하루의 지연이 경쟁국의 기회가 되는 현실에서 정부가 더 이상 모호한 태도로 시간을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기자수첩 한마디 "용인이 뛰고 있다면, 이제 정부가 답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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