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운/김병철 기자] 수백조 원 규모의 국가 산업 프로젝트가 한 도시에서 동시에 추진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지금 용인특례시에서는 그런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와 기존에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가 대표적이다. 두 사업은 규모만 놓고 보더라도 한국 산업정책의 방향을 바꿀 정도의 초대형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다만 산업 투자 속도에 비해 교통 인프라, 특히 철도망 구축은 여전히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도시 기반 구조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용인특례시는 이미 인구 110만 명을 넘은 대도시다. 수도권 남부의 핵심 도시로 성장했지만 철도 교통망 구조를 보면 지역 간 격차가 분명하다. 수지와 기흥 지역은 신분당선과 수인분당선이 지나며 서울 접근성이 비교적 좋은 편이다. 반면 처인구 지역은 상황이 다르다. 최근 산업 개발과 인구 유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철도망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원삼면과 남사·이동 일대는 상당 부분이 도로 중심 교통 구조에 의존하고 있다.
이 지역에 들어서는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다. 처인구 원삼면 일대 약 415만㎡ 규모 부지에 조성되는 이 산업단지는 SK하이닉스가 중심이 되는 반도체 생산단지로 추진되고 있다. 투자 규모는 약 120조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반도체 생산라인이 구축되면 협력업체와 관련 기업까지 포함해 상당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 반도체 생산기지로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추진하는 또 하나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다. 이동·남사 일대 약 710만㎡ 규모로 계획된 이 국가산단은 삼성전자가 중심 기업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투자 규모는 약 3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 사업을 국가 전략 산업 프로젝트로 규정하고 있으며 향후 반도체 연구개발과 생산 거점을 동시에 구축하는 산업벨트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두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면 용인특례시는 단숨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생산벨트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게 된다. 문제는 산업단지 규모가 커질수록 교통 인프라의 중요성도 함께 커진다는 점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생산시설뿐 아니라 연구개발 인력 이동이 많은 산업이다. 생산시설과 연구소, 협력업체, 장비기업이 복합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단지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산업 경쟁력 자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용인특례시는 최근 여러 철도 노선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노선이 경기남부동서횡단선, 이른바 ‘반도체선’이다. 이 노선은 이천시 부발읍에서 시작해 용인특례시 처인구 원삼면과 이동·남사읍을 거쳐 화성시 전곡항까지 이어지는 총 연장 89.4㎞ 철도 신설 사업이다. 노선이 지나가는 지역을 보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천 SK하이닉스 반도체 단지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용인 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을 하나의 축으로 연결하는 구조다. 즉 단순한 지역 교통 노선이 아니라 반도체 산업벨트를 연결하는 산업 인프라 철도 성격을 갖고 있다.
또 다른 핵심 사업은 경강선 연장이다. 경강선은 현재 판교에서 여주까지 이어지는 철도 노선이다. 용인특례시는 경기광주역에서 분기해 용인 남사까지 약 38㎞ 구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노선은 이동·남사 일대에 조성되는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통과하는 구조로 계획돼 있다. 산업단지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처인구 지역의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는 노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더해 용인·수원·성남·화성 등 4개 도시가 공동 추진하는 경기남부광역철도도 중요한 노선으로 거론된다. 이 노선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역에서 시작해 성남 판교, 용인 수지 신봉·성복동, 수원 광교를 거쳐 화성 봉담까지 연결되는 총 연장 50.7㎞ 철도 신설 사업이다. 4개 도시가 공동으로 실시한 용역에서는 비용 대비 편익(B/C) 값이 1.2로 분석돼 경제성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선이 구축되면 약 138만 명 시민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노선 대부분이 아직 국가 철도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철도 사업은 대부분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국가사업이다.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돼야 하고 이후 예비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설계와 착공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는 보통 수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분당선 연장 사업도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분당선 연장은 기존 분당선 도시철도를 기흥역에서 동탄2신도시와 오산까지 연결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된 사업이지만 최근 기획재정부 재정평가위원회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되지 않았다. 국가 계획에는 포함됐지만 실제 사업 추진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셈이다.
용인특례시는 기흥구 보라동 일대 인구 밀집과 교통 정체 문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연구개발단지 투자 확대, 반도체 장비기업 투자 등을 근거로 분당선 연장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국가 재정사업 구조에서는 경제성 평가와 정책 우선순위가 함께 고려되기 때문에 사업 추진이 쉽게 결정되지는 않는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용인특례시는 최근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반영을 요구하는 시민 서명운동까지 시작했다. 경기남부광역철도, 경기남부동서횡단선, 경강선 연장 등 주요 노선을 국가 계획에 반영해 달라는 요구다. 지방정부가 행정 협의뿐 아니라 시민 참여 방식까지 동원하는 것은 지역 수요를 보다 강하게 전달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적인 질문도 남는다. 반도체 산업 투자 규모가 크다고 해서 모든 철도 노선이 동시에 추진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 철도망 계획에는 전국 수많은 노선이 경쟁하고 있으며 재정 역시 한정돼 있다. 결국 산업 정책과 교통 정책 사이에서 어떤 노선이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용인특례시는 지금 산업 측면에서는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라는 거대한 기회가 도시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 인프라, 특히 철도 교통망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산업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라 국가 전략 산업이다. 동시에 대규모 인력 이동과 물류 이동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산업단지 접근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기업 활동과 도시 성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금 용인특례시에서 논의되는 철도망은 단순한 교통 사업을 넘어 산업 도시의 미래 구조와 연결된 문제다. 수백조 원 규모 산업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도시에서 철도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에 가깝다. 산업의 속도와 도시 교통 인프라의 속도가 언제쯤 같은 궤도 위에 올라설 수 있을지, 지금 용인특례시의 철도 논쟁은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자수첩 한마디 "용인특례시의 반도체 비전은 이미 충분히 크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비전을 철도망으로 연결해 도시의 미래로 완성하는 일이다. 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만큼, 그 산업을 움직일 길을 앞당기는 행정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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