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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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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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매장 숫자로 따지면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라 있다
코딱지만 한 나라가 거대한 대륙과 인구를 가진 미국, 중국 다음이라니, 언빌리버블!
2018년 9월 7일 이탈리아 밀라노 도심에서 열린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개점일에 사람들이 입구 앞에 모여 있는 모습이다.
2018년 9월 7일 이탈리아 밀라노 도심에서 열린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개점일에 사람들이 입구 앞에 모여 있는 모습이다./로이터

커피 왕국 스타벅스

현재 대한민국의 국력은 세계 6~7위권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제력으로만 따지면 세계 10위권, 군사력으로만 따지면 세계 5위에 매겨져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정상권에 가장 근접한 것이 있다. 스타벅스 매장 숫자로 따지면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라 있다. 코딱지만 한 나라가 거대한 대륙과 인구를 가진 미국, 중국 다음이라니, 언빌리버블!

스타벅스는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출발한 조그만 커피 도매업체였다. 공동 창업자인 제리 볼드윈, 제브 시글, 고든 보커는 대학에서 처음 만나 사이였다. 이들은 가게 이름을 지으면서 사업 파트너가 “st”로 시작하는 이름이 강렬하다는 제안에 따라 st로 시작하는 이름을 찾다가 ‘스타벅’을 떠올렸다. 스타벅은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일등항해사의 이름이었다.

얼마 후 스타벅스에 마케팅을 담당하는 하워드 슐츠가 입사했다. 하워드 슐츠는 새로운 에스프레소 커피 사업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퇴사하여 에스프레소 카페를 창업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스타벅스가 매물로 나오자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를 인수했다. 이때 스타벅스 매장은 3곳이었다. 2024년 기준 현재 스타벅스의 전 세계 매장은 4만 개를 넘는다. 한국에는 2,009개가 있다.

예전에 이탈리아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없었다. 그런데 커피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가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첫 커피전문점이 들어선 것이 1645년이었는데 스타벅스 1호점이 밀라노에 들어선 것은 2018년, 엊그제였다. 현재 이탈리아 스타벅스 매장은 30여 개 미만이다. 이는 세계 순위로 따지자면 6.25를 겪었던 1950년대 대한민국 경제 순위와 비슷한 상황이다.

커피의 종류

세계 여러 나라의 커피 맛만큼이나 커피 이름도 다양하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롱고, 카페라떼, 카푸치노 등등 추출 방식과 혼합 방식에 따라 이름이 각각 따로 붙기에 열거하기도 힘들다. 가장 기본적인 커피가 에스프레소다. 에스프레소는 볶은 원두를 갈아서 커피 액을 추출한 것으로, 커피 원액으로 보면 된다. 에스프레소는 양이 적기 때문에 조그만 잔에 마시는데, 그래서 아주 쓰다.

에스프레소는 쓰기 때문에 물을 더 넣어 연하게 만들어 마셨는데,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가 되고,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넣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줄여서 아아, 바로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된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가 되지만, 에스프레소를 내릴 때 길게 내려 물이 많이 내려가게 되면 롱고가 된다. 일반인이 보기엔 비슷한 것 같은데, 전문가에 의하면 약간 맛이 다르다고 한다.

카페라떼와 카푸치노는 일종의 밀크커피로 비슷한 것인데, 다르다면 카푸치노에는 풍성한 거품이 얹어지는 것에 비해, 카페라떼에는 거품이 약한 대신에 커피 맨 위에 형성된 크레마 위에 하얀 우유로 하트나 나뭇잎을 그려주는 것이 특징이다. 카페라떼와 카푸치노가 헷갈린다면 거품을 ‘푸’짐하게 얹어주는 것이 카‘푸’치노라는 것을 떠 올리면 쉽게 구분이 된다.

카페라떼에 쵸코 시럽을 넣고 위에 휘핑크림을 올리는 카페모카가 있고, 달달한 것을 좋아한다면 카라멜 마끼아또가 있다. 여름에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를 부어서 먹는 커피는 아포가토이고, 커피 가루를 물에 담가 장시간 우려내어 마시는 것은 콜드브루이다. 카페에 가면 커피 메뉴는 10~15가지가량 되는데, 여기에 또 원산지 국적 별로 따져버리면 커피 메뉴는 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진다.

커피의 탄생

커피의 고향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 남서부 ‘카파’라는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커피 열매를 뭉쳐서 먹었다는데 여기에서 커피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일설에는 9세기경 염소를 키우는 목동 ‘칼디’가 가끔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먹고 흥분 상태에 빠진 것을 발견했는데, 커피의 발견이었다. 이 당시는 볶아서 우려내는 것이 아니라, 열매와 잎 등을 끓여서 각성제로 복용하는 일종의 ‘물약’ 형태로 복용하는 것이었다.

에티오피아의 동쪽에는 홍해가 있고, 홍해 입구에는 예멘의 도시 알모카가 있었다. 16세기 전후 무역이 왕성한 도시였는데,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나갈 때 알모카는 중간 기착지였다. 이때 에티오피아 흑인들이 알모카에 커피를 가지고 들어왔다. 초창기 알모카에서도 커피는 몸살에도 먹는 물약이었고, 차차 볶아서 마시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이슬람의 발흥을 따라 커피는 알모카에서 이슬람 세계로 퍼져 나갔다. 알모카는 지금의 모카이고, 모카커피 이름은 이 도시에서 따왔다.

커피의 최초 용도는 잠을 쫓는 각성제 역할이었다. 커피의 이런 역할을 주목했던 사람들은 이슬람의 소수파 수피교도들이었다. 수피교는 길고 둥근 치마를 입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춤 수피댄스를 추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춤을 추면서 무아지경에 빠져 신을 만나야 했다. 그 중간 매개자가 커피였다. 커피는 잠을 쫓고 신을 만나는 도구였고, 커피는 차차 이슬람 사원에서 새벽 기도를 할 때 잠을 쫓아주는 거룩한 음료가 되었다. 그리고 1511년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세계 최초의 커피점이 탄생했다.

커피의 전설 중 가장 유명한 전설이 있다. 이슬람의 무하마드가 고행 중 병에 걸렸는데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와 커피 열매를 주고 갔는데, 커피를 복용한 무하마드는 원기를 회복하고 40명의 기사를 구했다는 전설이다. 이슬람교에서 술은 사탄의 음료인 반면에 커피는 천사의 음료이다. 예수는 마지막 만찬에서 포도주를 내 피라 하였다. 기독교가 포도주의 세계라면 이슬람은 커피의 세계였다.

16세기 중반에 커피를 좋아하던 예멘 주지사가 오스만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로 커피를 가져왔다. 이스탄불의 술탄 궁전에 커피가 유행했고, 이는 곧 궁전 밖의 대중들에게도 퍼져 나갔다. 노상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고급 문화의 카페가 최초로 탄생한 곳은 오스만제국의 이스탄불이었다.

커피의 유럽 진출

16세기 말엽부터 17세기 초반까지 커피는 베네치아의 무역 항로를 따라 이탈리아와 유럽 일대로 퍼져 나갔다. 중세 시대 술에 취해 있던 유럽인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며 술에서 깨어나 르네상스를 성취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슬람권에서 기독교권으로 커피가 옮겨간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1683년 오스만제국은 오스트리아의 빈을 공격했다. 제2차 빈 공방전이었다. 오스만제국은 빈을 포위했지만 결국 패전했다. 오스만군이 퇴각한 자리에는 정체 모를 수많은 마대가 널려 있었다.

마대에 들어있는 것은 커피콩이었다. 이 콩의 진가를 아는 사람이 빈에 있었다. 프란츠 콜쉬츠키, 그는 빈이 포위당했을 때 포위망을 뚫고 폴란드에 구원병을 요청했고 성공했다. 연합군이 온다는 소식에 오스트리아는 항복을 보류했고, 전투에서 승리했다. 일설에 의하면 콜쉬츠키는 이 공로에 대한 부상으로 커피콩을 요구했다. 그리고 빈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이 시기 즈음에 오스만제국에서는 술탄이 두 차례에 걸쳐 커피 금지령을 내렸다. 커피하우스에서 담소 주제는 대부분 정치였고, 정치의 대부분은 술탄을 비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카페의 본고장이었던 이스탄불에서는 커피가 금지되었고, 대량의 커피콩을 확보한 빈에서는 커피 유행이 일었다. 그러나 오스만 군대가 남기고 간 커피는 매우 썼다. 그래서 커피에 우유나 꿀을 넣어 부드럽게 만들어 마셨다. 이것이 오늘날 ‘비엔나커피’의 시초였다. ]

빈의 영어 발음은 비엔나. 비엔나커피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다. 비엔나에서는 비엔나커피를 ‘아인슈페너’라고 부른다. 문재인이 원자력을 금지했던 것처럼, 오스만제국 무라트 4세와 메흐메트 4세의 황당한 커피 금지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카페 문화가 이스탄불에서 유럽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스탄불의 커피하우스는 현재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신대륙의 커피

17세기가 끝나갈 즈음 커피는 유럽을 점령했다. 이 세기에 커피는 유럽의 식민지가 된 신세계로 건너갔고 세계로 퍼져 나갔다. 1616년에는 네덜란드가 모카에서 훔쳐낸 커피나무 10그루를 자바에 심었다. 그리고 커피가 신대륙으로 유입된 일화는 여러 가지 버전이 존재하지만, 1720년의 프랑스 귀족 가브리엘 드 클리외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문익점 이야기처럼 유명하다.

드 클리외는 영국에서 태어난 프랑스 해군 장교 출신으로, 과들루프 총독을 지냈다. 그는 1720년 프랑스 왕립 식물원의 온실에 있는 커피나무 두 그루를 루이 15세에게 얻었다. 이 커피나무는 자바섬에 심어진 커피나무의 후손이었다. 드 클리외는 서인도 제도의 마르티니크섬으로 커피나무를 옮기기 위해 항구 도시에서 바닷바람에 적응 훈련을 했고, 커피나무는 유리 온실에 담겨 배에 실었다.

당시 커피는 지금의 반도체와 비슷해서, 드 클리외의 커피나무를 파괴하려는 네덜란드의 스파이가 배에 동승하고 있었다. 그래서 커피나무는 특수상자에 넣고 항상 문은 잠가야 했다. 그리고 햇볕을 쐬어줘야 했고, 식수가 모자라 갈증에 시달렸지만, 드 클리외는 커피나무와 식수를 나누어 마셔야 했다. 열대 폭풍을 만나 배가 가라앉았지만, 다행히 한 그루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한 그루의 커피나무는 5년 뒤에 2천 그루가 되었고, 50년 안에 1,800만 그루가 되었고, 현재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커피 생산이 늘어나면서 아프리카 흑인 노예도 많이 늘어나야 했으니, 아프리카 흑인들은 자기들이 발견한 커피 때문에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역사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에도 커피가 있다

미국에 아메리카노가 있다면 유럽은 에스프레소를 선호한다. 특히 이탈리아는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이다. 에스프레소는 자리에 앉지 않고 바에 선 채로 식기 전에 빠르게 마신다. 이탈리아에서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예비 사위가 찾아왔을 때 예비 장모는 에스프레소를 낸다. 이때 예비 사위가 뜨겁고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한방에 원샷할 수 있다면 그 결혼 승낙은 따 놓은 당상이 된다.

에스프레소에 대한 이탈리아의 자부심은 물에 타서 마시는 아메리카노에 대해 아예 커피 취급을 안 해준다. 그래서 이탈리아에는 스타벅스가 들어설 여지가 좁다. 외국인들은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에 한국에서 ‘아아’를 마시는 것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뉴욕에서는 아메리카노, 로마에서는 에스프레소, 빈에서는 비엔나커피, 커피는 지역과 민족에 따라 여러 가지 얼굴로 나타나지만,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커피가 있다.

미국에 아메리카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믹스커피’가 있다. 믹스커피는 우리와는 떨어질 수 없는 커피였다. 점심을 먹은 식당이나 거래처 어디를 방문해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손쉽게 한 잔 마실 수 있고, 심지어 믹스커피는 어디를 가더라도 무료다. 게다가 커피, 설탕, 프리마의 3요소가 황금비율로 배합되어 있어, 맛있기까지 하다. 어찌 이런 커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스타벅스 로고의 주인공은 신화에 등장하는 ‘사이렌’이다. 두 개로 갈라진 지느러미가 긴 머리를 한 사이렌의 양옆으로 치켜진 모습이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믹스커피에도 ‘여신’이 등장한다. 동서식품의 맥심 화이트골드에는 전 피겨 선수 김연아,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는 영화배우 김태희가, 맥심 모카골드에는 영화배우 박보영, 등 이만하면 우리도 여신 사이렌이 부럽지 않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60년 3월 6일 프랑스 천주교 신부 베르뇌가 홍콩에 있는 신부에게 커피를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이 최초의 커피 기록이다. 이 커피는 1861년 4월 초에 인편으로 베르뇌 주교에게 전달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커피전문점이 10만 개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가히 대한민국은 커피의 왕국이다.

일설에는 믹스커피를 마시면 건강에 해롭다고 한다. 모든 음식은 과해도 건강에 해롭고 부족해도 건강에 해롭다. 커피는 건강해지자고 먹는 보약이 아니다. 그저 한 잔을 즐기면 될 뿐, 커피 이야기를 쓰다 보니 역사 이야기로 흐른 것 같다. 밧데리가 떨어져서 그런 모양이다. 믹스커피 한 잔 마시고 분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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