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돌아보기] 방귀 문화(FART-CULTURE)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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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돌아보기] 방귀 문화(FART-CULTURE)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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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는 예절, 즉 공적(公的)인 질서와 사적(私的)인 생리현상이 충돌하는 지점에 존재하는 물질로, 사치스럽게 표현하자면 사회적 ’긴장과 완화‘를 동시에 유발하는 ’인류학적이고도 사회학적인 소재(素材)‘라 할 수 있겠다.

지저분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는 방귀(Fart)를 뀌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물학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방귀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것과 지독한 냄새로 사람들이 코를 막게 하는 방귀가 있다. 냄새 안 나는 방귀도 방귀요, 냄새 지독한 것도 방귀다.

설령 냄새나는 방귀를 폭탄처럼 큰 소리 내며 발사해도 무해(無害)한 것이며 웃기는 일이라고 너그럽게 넘어가는 가정의 출신이냐, 소리가 크든 작든, 냄새가 나든 그렇지 않든 ‘방귀는 무례한 것“이며, 역겨운 인간의 본성 상실이라는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며 방귀와 방귀를 뀐 사람을 천대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과 어떤 가정은 방귀를 뀌어도 자연스럽고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와 소리를 내고 냄새까지 나는 방귀는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예의에 벗어난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싫어하기도 한다. 방귀는 사생결단을 낼 정도는 물론 아니지만, 때로는 ‘방귀 문화’(Fart Culture)에 대한 치열한 논란이 일기도 한다. 특히 자칫 방귀로 인해 애인 사이가 틀어지기도 하고, 부부싸움으로 번져 끝내는 이혼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방귀는 “사회적 규범, 인간관계, 문화적 금기, 그리고 권력 구조를 비추는 거울로서 사회학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여러분은 방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가정에서 자랐나요(Fart-Pride), 아니면 방귀를 부끄러워 하는 가정에서 컸나요(Fart-Shame)? 가족들 앞에서 방귀 뀌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나요, 무례하고도 어색하며 역겹게 느껴지나요 ?

방귀, 그 생리적인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그런 반응들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미국 뉴욕대 랭곤 헬스(NYU Langone Health) 소속 심리학 임상 부교수인 태아 갤러거(Thea Gallagher) 박사는 “때로는 한 문화권(one culture)인데도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지는 것, 예를 들어 음식을 후루룩 소리 내며 먹는 것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면서, “개인적인 선호도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떤 사람들은 더 강한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음식을 씹는 소리만 들어도 강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과 개인적인 감수성(personal sensitivities)을 넘어, 어린 시절 집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지던 “방귀 규칙”(fart rules)은 화장실 예절 이상의 많은 부분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이며, 정신 건강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러한 규칙은 당황스러움을 다루는 방식, 취약성을 표현하는 방식, 잠재적인 연인과의 관계, 심지어 가장 인간적이고 불완전한 순간에 느끼는 안정감까지 반영할 수 있다고 갤러거 박사는 설명한다.

* 자랑스럽게 여기는 방귀 가정 (FART-PRIDE)

어릴 적부터 가족들 앞에서 방귀를 뀌지 않고 자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방귀 소리가 얼마나 크든, 냄새가 얼마나 지독하든, 혹은 타이밍이 얼마나 안 좋든 상관없이, 방귀는 그저 방귀일 뿐이다.

방귀가 마려운 순간, 부끄러움 없이, 어쩌면 약간의 자부심까지 느끼며 거침없이 “뿡~~~” 한다. 누가 뀌었는지 손가락질하며 장난치는 모습도 있었을 테고, 갑작스럽지만 강렬한 방귀 소리에 “으악~~~!” 하고 소리치는 모습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들은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귀는 ‘기침이나 재채기’(a cough or sneeze)처럼 아무렇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치료사들은 일반적으로 불쾌하게 여겨지는 행동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숨기기보다는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수용 능력(receiving capability), 혹은 톨레랑스(Tolerance)’가 있다는 뜻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미국 성교육가, 성상담가, 성치료사협회 (AASECT=American Association of Sexuality Educators, Counselors and Therapists) 공인 성 치료사이자 임상 심리학자인 섀넌 차베스 쿠레시(Shannon Chavez Qureshi) 박사는 콘데 나스트(Condé Nast) 산하의 여성 건강 및 웰니스 전문 매체인 ‘SELF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사람들은 친밀한 관계를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인정받고 취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공간으로 여길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한다.

그러한 편안함은 미묘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크게 웃거나 (콧김을 뿜으며) 웃는 것, 아침 입냄새가 나도 껴안는 것(꺼려지는 마음이 약간 들기는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누가 보든 신경 쓰지 않고 엉망으로 춤추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차베스 박사는 “그렇다고 해서 경계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며, “다시 말해, 경계를 표현할 때 부끄러움을 덜 느끼고, 진솔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부끄럽게 여기는 방귀 가정 혹은 공간(FART-SHAME)

방귀 뀌는 게 법으로 금지된 것도 아니고, 방귀를 뀌었다고 해서 누군가가 화를 내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미풍양속(美風良俗)에서도 방귀는 너그럽게 용서되는 가스(Gas)이다. 하지만 엄마 얼굴에 대고 트림을 하지 않듯이, 방귀는 최소화하거나, 자제하거나, 적어도 배려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아주 어린 아이가 자랑스럽게 엄마 아빠의 얼굴에 엉덩이를 대고 ’뿡~~~‘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웃음으로 넘긴다. 오히려 귀엽다고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방귀를 부끄러워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그저 예의상,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불쾌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갤러거 박사는 “어떤 사람들은 특정한 예의범절을 지키도록 교육받는다. 그리고 이런 어색한 순간들을 웃어넘기거나 즐기는 대신, 아마도 혼자 있을 때까지 참거나, 가까운 화장실로 몰래 가거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방귀가 새어 나왔을 때는 미안하다며 진심 어린 사과도 할 것이다. 생리적인 현상은 사람의 마음과는 다르게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차베스 박사에 따르면, 이러한 습관적인 ’자기 감시‘(self-monitoring)는 단순한 예절 이상의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이면에는 타인에게 자신의 불완전하거나 즉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긴장감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완벽주의(perfectionism), 판단에 대한 두려움(fear of judgment), 또는 특히 연애 관계에서 매력적이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보이려는 과도한 관심(increased concern)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차베스 박사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적 욕망을 느끼기 위해 어느 정도 신비감(a layer of mystery)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러한 편안함이 생기면 ’로맨스가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른바 방귀 문화(fart-culture)로 인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데, 이는 놀랍도록 흔한 마찰의 원인이며, 심지어 실제 사례에서는 결별로 이어지기도 한다.

SELF는 한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방귀는 웃긴 거야”라는 분위기의 가족에서 자라난 그녀는 남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방귀를 뀌지 않기 위해 즉흥적으로 대처해야 했던 ’문화적 충격‘(culture shock)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았다. “방귀를 뀌려고 밖으로 뛰쳐나간 적도 있어요. 집에서는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 문제로 남자 친구와 자주 다투게 됐어요.”

방귀를 부끄러워하는 가정에서 자란 또 다른 여성은 “전 남자 친구와의 차이점 때문에 매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분명 헤어진 데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었지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계속 방귀를 뀌고 그걸 비웃기만 한다면 어떻게 끌리겠어요?”라고 말했다.

물론, 자라나는 환경이 사람을 형성하지만,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갤러거 박사는 “처음에는 아주 강한 의견을 가지고 시작하더라도, 누군가를 알아가고 편안해지면 그 의견이 약해질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경계선은 존재하며, 그것은 괜찮다.”고 말한다.

두 전문가 모두 이러한 경우, ’방귀 문화‘에 대한 의견 차이를 다른 관계의 선호도와 마찬가지로 “존중, 호기심, 그리고 솔직한 소통”(respect, curiosity, and honest communication)으로 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방귀는 불가피한 현상임을 인정하면서도 합리적인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예를 들어, 특히 다정하고 친밀한 순간에는 의도적으로 방귀를 뀌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신체 기능에 대한 비난이나 혐오감을 느낄 때 얼마나 상처받는지 이야기하는 것”이다. 솔직한 소통과 수용 능력 혹은 톨레랑스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즉 ’방귀를 튼다‘는 것은 친밀감의 척도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짙다.

분명한 것은 “작은 방귀 소리 하나가 우리가 자신의 몸, 경계, 그리고 서로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방귀는 예절, 즉 공적(公的)인 질서와 사적(私的)인 생리현상이 충돌하는 지점에 존재하는 물질로, 사치스럽게 표현하자면 사회적 ’긴장과 완화‘를 동시에 유발하는 ’인류학적이고도 사회학적인 소재(素材)‘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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