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李朝-りちよう)란 말은 일제(日帝)가 1910년 굴욕적인 한일합방(韓日合邦)을 강행하며 일본이 조선왕조의 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왕의 성(姓)인 이씨(李氏)를 따서 만들어낸 왕조를 인정하지 않고 사유(私有) 집단으로 몰아붙여 깎아내린 낮춤말이다.
그러나 간혹 단군이 세운 고조선(古朝鮮)과 구별하기위하여 이조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고조선(古朝鮮)을 단군조선(檀君朝鮮),·기자조선(箕子朝鮮),·위만조선(衛滿朝鮮)으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하지만 학문적인 정확한 용어는 아니다.
1392년부터 1910년까지 한반도 전역을 통치하였던 조선(朝鮮)은 .일반적으로 조선 왕조(朝鮮王朝)라 칭하였으며, 어보(御寶), 국서(國書) 등에도 대조선국(大朝鮮國)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었다. 그러나 일제가 고종황제의 통치시대에 들어서며 이를 깎아내려 이조라 한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아울러 민비(閔妃)란 말은 구한말 고종의 왕비로 대한 제국의 최초의 황후였던 명성황후(明成皇后) 민씨를 말하는 것인데 이 역시 일제가 격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지어 낸 말로 이조와 맥락을 같이하는 낮춤말이다.
명성황후는 일본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기에 뛰어난 결단력을 갖고 고종 이상의 정치력을 행사하여 ‘구한말의 여걸’ 이라 불리었으나, 일본에 의해 무참히 시해되어 근대 민족수난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1895년 45세의 나이로 일본 낭인(浪人)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민 왕비는 일본에 의해 폐서인이 되었으나 곧 고종에 의해 복위되었다. 1897년 10월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후 민 왕비에게 명성(明成)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명성태황후(明成太皇后)로 봉하였다.
곧이어 정치적 혼란 속에서 그동안 치루지 못하였던 국장을 민 황후가 시해당한 지 2년 만인 1897년 11월에 거행하였다. 처음에는 홍릉에 안장되었다가 경기도 남양주로 옮겼다.
명성황후는 정치적으로 혼란기에 접어들었던 구한말 ‘열강의 위협 속에서 기울어져 가던 조선을 이끈 탁월한 정치가’, ‘당시의 친일파와 격이 다른 외교적 안목을 지닌 정치가’, ‘조선의 어느 왕비보다 영특하고 누구 못지않은 정치력과 결단력을 소유하고, 청국. 일본. 러시아의 각축장에서 열강들을 서로 이용 견제할 줄 아는 국제적 정치력을 지닌 여걸이었다.’
개화의 빗장을 연 여걸’, ‘정치주도권을 둘러싼 시아버지 대원군과 남편 고종사이에서 고종의 방파제 역할을 하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통해 고종을 보좌하여 왕권 강화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으나 결과적으로 고종의 강력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정치적 희생물이 된 비운의 왕비였다.
이러한 왕비가 일본에게는 눈의 가시였을 것 이니 격을 깎아내림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마자 그렇게 불러서야 되겠는가? 그것은 내용을 모르는데서 온 무지의 소치일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고쳐 부르면 된다. 이조를 조선왕조로. 민비를 명성황후로 말이다. 무지가 무슨 죄인가? 그러나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분명 죄이다. 일본은 이토록 악랄했다. 다 같은 외국어이면서도 일본어에만은 거부감이 앞서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