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타운/송은경 기자] “2016년 작은 씨앗에서 시작한 시흥형 주민자치가 이제는 20개 동에서 각기 다른 색의 자치꽃으로 만개했다.”
임병택 시흥시장의 말처럼, 시흥시 주민자치는 이제 ‘제도’가 아니라 ‘마을을 바꾸는 힘’으로 자리 잡고 있다. 2일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에서 열린 ‘2025년 시흥시 주민자치 성과공유회’는 그 지난 1년의 기록이자 향후 과제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올해 시흥시 20개동 주민자치회가 발굴한 자치계획은 189건, 이 가운데 실제로 실행된 사업은 146건이다. 주민총회 참여 주민은 2만 5,320명으로 전년 대비 53% 늘었다. ‘주민이 계획하고, 주민이 결정하고, 주민이 집행하는’ 구조가 통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자치회는 각 동에 설치된 주민 의사결정 기구다. 마을 조사를 통해 의제를 발굴하고, 자치계획을 수립한 뒤 주민총회에서 투표로 실행 여부를 결정한다.
시흥시는 2016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자치회로의 전환을 시작해 2023년부터 20개 전 동에 주민자치회를 설치했다. 그 결과, 올해만 해도 20개동에서 189건의 자치계획이 발굴됐고 이 가운데 146건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졌다.
주민총회 참여 규모도 눈에 띄게 커졌다. 1년 사이 주민총회 참여 인원은 53% 증가한 2만 5,320명. ‘동네 일은 동네에서 정한다’는 원칙이 서면서 주민참여의 저변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중앙정부 평가로도 확인됐다. 정왕2동 주민자치회가 추진한 ‘산소 심는 마을’은 지난 11월 20일 행정안전부 주민자치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해 특별교부세 2억 원을 확보했다. 한 동의 실험이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주민자치모델로 인정받은 것이다.
올해 성과공유회는 ‘시흥형 주민자치, 스무 송이 자치꽃으로 만개하다’를 주제로 열렸다. 20개동 주민자치회는 홍보부스를 통해 각 동의 자치계획, 주민총회, 마을사업 성과를 공유했고, 2025년 활동을 담은 영상 '마을마다 자치꽃 ON-AIR, 스무 송이의 기록'도 선보였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받은 건 ‘각 동의 특성을 정확히 읽어낸 의제 설정’이었다. 환경, 교육, 세대 통합, 복지, 지역경제 등 분야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마을이 스스로 필요를 진단하고 해법을 설계했다”는 점이다.
정왕2동은 국가산업단지 인접 지역으로,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민감도가 높게 나타나는 곳이다. 주민자치회는 이 지역 특성을 고려해 학교, 학부모, 마을 활동가 등이 함께하는 ‘마을교육특구’를 구성하고, 특화 사업으로 ‘산소 심는 마을’을 추진했다.
한 해 동안 이 사업을 통해 감축된 탄소량은 88만 2,828kgCO2eq. RE100숍을 운영하며 수거한 재활용품은 374kg에 달했다. 정왕권 7개 학교와 연계해 4,641명의 청소년에게 환경 인식 교육과 환경활동가 교육을 진행했고, 13명의 환경활동가도 새롭게 배출했다. 환경문제를 ‘민원’이나 ‘갈등’이 아니라 ‘마을 교육’과 ‘참여’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거북섬동 주민자치회는 ‘100인의 공론장’이라는 독특한 주민총회 모델을 제시했다. 마을 의제를 두고 주민 100명이 모여 치열한 토론을 거친 뒤, 주민투표로 최종 사업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올해 주민자치위원들은 두 차례에 걸쳐 퍼실리테이터 교육을 받으며 토론 진행 역량을 키웠다. 토론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주민들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기 위한 준비였다. ‘설명 듣고 손만 드는 총회’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설득하는 공론장’으로 주민총회가 진화하고 있다.
유원시설과 프로그램이 부족한 매화동의 고민은 “아이들이 놀 곳, 가족이 함께할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매화동 주민자치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놀이, 체험, 플리마켓으로 구성된 ‘매화패밀리랜드’를 열었다.
새로운 놀이와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가족·이웃 간 유대감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420여 명의 주민이 참여했다. 주민자치회가 직접 기획한 ‘마을 놀이공원’이 지역의 문화 공백을 메우는 셈이다.
배곧2동 주민자치회는 9월과 11월 두 차례 ‘싸개마켓’을 열었다. 배곧 아브뉴프랑 광장에서 기업과 단체가 후원한 물품을 주민이 구매하고, 그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구조다.
이 마켓을 통해 모인 2,000만 원 상당의 후원물품과 1,800만 원의 수익금은 시흥시 1%복지재단과 시흥시 인재양성재단에 기탁됐다. 기업, 주민, 상인이 함께 만드는 자원 순환 구조를 주민자치회가 설계한 사례다.
고령 인구가 많은 신천동은 어르신 특화 자치사업에 초점을 맞췄다. 교통사고율이 높다는 점을 반영해 추진한 ‘찾아가는 어르신 안전체험교육’에는 경로당 8개소, 160여 명의 어르신이 참여했다.
또 ‘시니어 모델 양성사업’은 20회차 수업을 수료한 26명의 어르신이 성과보고회에서 런웨이를 선보이며, 노년의 자신감과 활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주민자치가 ‘행사’가 아니라 ‘삶의 질’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시흥형 주민자치의 또 다른 특징은 주민자치회와 주민참여예산제도의 통합 운영이다. 그동안 주민참여예산은 단년도·소규모 사업에 머물며 “제안은 했지만 영향력은 크지 않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시흥시는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 주민참여예산을 일반제안사업, 자치계획형 사업으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자치계획형 사업은 각 동 주민자치회가 자치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총회 주민투표를 거쳐 사업을 직접 추진하는 방식이다. 즉, 주민참여예산이 ‘주민이 제안하고 행정이 처리하는 사업’에서 ‘주민이 설계하고 집행하는 마을계획’으로 확장된 셈이다.
올해 주민참여예산제 자치계획형 사업 11건 중 8건이 주민자치회 사업과 연계 추진됐다. 예산제도와 자치계획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제도가 있더라도 이를 운용할 역량이 없다면 주민자치는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 시흥시는 이 지점을 겨냥해 ‘현장 밀착형 지원체계’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각 동에는 주민자치회를 밀착 지원하는 전담 공무원이 배치돼 있다. 또한 동별 상황에 맞는 자치계획 수립과 효율적인 사업 수행을 위해 매년 ‘찾아가는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3월부터 5월까지 시흥시 20개동 주민자치위원 524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단순한 제도 설명을 넘어 마을 조사 방법, 의제 발굴, 회의 운영, 갈등 조정 등 실제 활동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각 동 주민자치회는 매년 초 자치계획 수립 이전에 마을 조사와 분석,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다. ‘동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어떤 변화를 원하는지→그걸 위해 예산과 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주민이 함께 결정하는 구조다. 이 과정 자체가 주민에게 ‘효능감’을 제공하는 자치의 핵심 경험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분명하다. 사업 수는 늘었고, 참여 주민은 확대됐다. 환경·교육·복지·축제 등 주민자치의 영역도 과거보다 훨씬 넓어졌다. 행정은 제도와 교육으로 지원하고, 주민은 의제 발굴과 실행의 중심에 서고 있다.
하지만 과제도 남는다. 지속가능성: 사업이 ‘1년짜리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중장기 자치계획과 인력·예산의 안정적 구조가 필요하다. 세대·계층 간 균형: 청소년, 취약계층, 1인 가구 등 다양한 주민이 자치의 의사결정 구조 안으로 더 깊이 들어올 수 있는 장치도 요구된다. 대표성·투명성 강화: 주민자치회가 ‘활동하는 소수’의 모임으로 비치지 않도록 주민총회, 공론장, 공개 발표 등 절차의 투명성이 계속 보완돼야 한다.
임병택 시장은 이날 ‘주민자치 어워드’를 통해 20개동 520명의 주민자치위원에게 표창을 수여하며 “520명의 주민자치위원들의 땀과 고민, 실행이 시흥의 내일을 바꾸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시흥시는 내년에도 ‘자치계획 발굴–수립–주민총회 의결–실행’으로 이어지는 시흥형 주민자치 모델을 더 고도화할 계획이다. 제도 개선, 맞춤형 교육, 마을 의제 발굴 지원을 통해 “주민이 직접 만드는 마을 변화에 행정이 든든한 파트너로 함께하겠다”는 구상이다.
스무 송이 자치꽃은 이미 피어났다. 남은 과제는 이 꽃이 더 많은 주민의 손을 거쳐 매년 다시 피어나도록, 마을 민주주의의 토양을 더 단단히 다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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