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민주국가도 법치국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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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민주국가도 법치국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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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다니엘 엘즈버그와 마크 펠트

 
   
  ^^^▲ 신영철 대법관^^^  
 

신영철 대법관의 부당하고 불법적인 재판간여에 대해서 신 씨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일부 판사들이 신 씨가 보낸 이메일을 유출한 것이 불순하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부당한 지시라고 하더라도 법원장이 보낸 ‘대외비 이메일’을 언론에 흘리는 것은 잘못일뿐더러 ‘음모의 냄새’를 풍긴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대응할 가치도 없는 궤변이다. 불법적인 내용을 담은 이메일이나 문서를 제멋대로 ‘대외비’라고 분류해서 자신의 ‘지휘 라인’에 하달할 수 있다면 한국은 이미 민주국가도 아니고 법치국가도 아닌 셈이다. (판사가 법원장의 지휘 라인 아래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지만 - -.)

‘이메일 유출’은 안되고 ‘직접 제보’는 괜찮나?

원세훈 국정원장이 노무현-박연차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 고위관계자에 직원을 보내 노 씨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종용했다는 사실이 조선일보의 특종으로 밝혀졌다. 법원장이던 신영철 씨와는 달리 원세훈 국정원장은 그런 부탁은 직접 대면으로 해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검찰관계자가 그것을 조선일보에 제보해서 낭패를 당했다.

모든 문제를 ‘좌파와 우파의 대립’ 이요 ‘음모’와 약(逆)음모’로 보는 요즘 세상의 잣대로 보면, 검찰 고위관계자의 ‘제보’가 ‘좌파의 음모’ 인지 ‘우파의 음모’ 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메일 유출’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검찰 고위관계자의 ‘제보’도 비난해야 하는데, 그들은 조용하기만 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야당이 국정원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서야 하는데, 민주당은 조용하기만 하다. 민주당 자체가 노 씨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주장하고 나섰으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사실 민주당은 노 씨 사건에 대해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고 법에 의한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를 부탁하는데 그쳤어야 했다. 이래서 이명박 정권과 민주당의 인기가 동반추락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역사를 바꾼 제보자

국민에게 숨겨진 진실을 알려서 역사의 흐름의 바꾼 제보자를 들자면 1971년에 미국 국방부의 ‘베트남 전쟁 문서’(The Pentagon Papers)를 폭로한 다니엘 엘즈버그 박사와 1972년에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하던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에게 제보했던 마크 펠트를 들 수 있다.

- 다니엘 엘즈버그

1971년 6월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국민 여론을 오도(誤導)해서 베트남 전쟁을 확대시켰음을 보여준 국방부의 일급비밀문서를 시리즈로 보도했다.

닉슨 행정부는 이 보도가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보고, 게재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미국 대법원은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는 근거로 정부의 소송을 기각했다.

뉴욕타임스의 이 보도로 미국의 베트남 전쟁은 정당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뉴욕타임스에 이 엄청난 문서를 제공한 사람은 국방부의 일급비밀에 접근할 수 있었던 랜드 연구소의 다니엘 엘즈버그 박사였다.

원래는 국방부의 매파(派)였던 엘즈버그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없음을 정책결정자들이 잘 알고 있었음에도 정치적 이유로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진실을 폭로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엘즈버그 덕분에 미국민들은 숨겨졌던 전쟁의 진실을 알게 됐지만 그는 방첩법(The Espionage Act) 위반으로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백악관의 지시로 엘즈버그의 정신과 진료기록을 불법으로 열람하고, 엘즈버그의 전화를 도청했음이 드러나자 사건을 담당한 제임스 번 판사는 피고인의 권리가 침해됐다는 이유로 공소를 기각(dismiss)했다.

엘즈버그의 전기를 쓴 작가는 엘즈버그가 일종의 나르시즘 성향을 갖고 있었고, 자신이 기대만큼 국방부와 랜드 연구소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도 그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생각을 180% 바꾸게 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 마크 펠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자신들에게 워터게이트의 진실을 흘려 준 익명의 제보자를 ‘뜨거운 목구멍’(Deep Throat) 이라고 불렀다. ‘뜨거운 목구멍’은 ‘워싱턴에서 가장 잘 지켜진 비밀’ 이라고 불렸다. 바로 그 비밀이 2005년 5월에 풀렸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에 연방수사국(FBI)의 부국장이던 마크 펠트(W. Mark Felt)가 자신이 ‘뜨거운 목구멍’ 임을 밝혔고,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이 이를 확인했다. 그 때 92세이던 펠트는 3년이 지난 2008년 12월에 사망했다.

FBI의 부국장으로 볼 수 있었던 워터게이트 관련 비밀정보를 펠트는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에 흘려서 닉슨이 사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FBI의 부국장으로서 그런 일을 한데 대해서는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FBI 국장이던 에드가 후버가 사망하고 부국장이 사임하자 FBI내의 최고 서열이었던 펠트는 자신이 국장이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닉슨이 외부인사인 패트릭 그레이를 국장으로 임명하자 환멸과 복수심에서 워터게이트를 두고 벌어지는 백악관과 법무부의 동향을 제보했다는 비판이 있다.

FBI를 떠난 펠트는 그가 FBI 요원으로 있었을 때 행한 인권침해로 기소되었으나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다. 그 후 그는 세상에서 망각되고 있었는데, 생(生)의 마감을 앞두고 커밍 아웃을 한 것이다.

다니엘 엘즈버그와 마크 펠트 같은 제보자에게는 그럴 행동을 할만한 ‘개인적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을 수 있는 ‘사적(私的) 동기’는 이들이 가져온 ‘진실과 정의’에 비한다면 사소한 것이다.

신영철 씨의 ‘이메일’을 유출한 법관 등 제보자를 흠집 내려는 사람들이 교훈으로 받아드려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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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 2009-05-11 12:13:56
제보자 보호법 한나 못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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