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의 책임 –공공의 신뢰 신의를 무너뜨리는 언어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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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의 책임 –공공의 신뢰 신의를 무너뜨리는 언어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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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말은 정책 그 이상을 대변한다. 지금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말의 윤리’다.
2018년 11월 시화MTV 거북섬 해양레저 복합단지 개발사업 소개/시흥시 블로그(좌) 현재 거북섬 상가 공실들(우)
2018년 11월 시화MTV 거북섬 해양레저 복합단지 개발사업 소개/시흥시 블로그(좌) 현재 거북섬 상가 공실들(우)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유권자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각인된 장면 중 하나는 지도자들의 "말 한마디"가 정국을 뒤흔드는 순간들이다. 국회 연단에서의 일성, 유세장에서의 즉흥적 발언, 방송 인터뷰에서의 짧은 코멘트까지. 이들은 모두 단지 개인의 생각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신뢰를 구성하는 공적 언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는 '말의 경박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특정 진영을 불문하고, 정치인의 말은 너무 쉽게 무게를 잃는다. 겉으로는 자신감 있는 ‘비전 제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충분한 검토와 숙고 없이 쏟아낸 말들이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최근 한 정치인의 유세 중 발언이 논란이 된 ‘거북섬 개발’ 사례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경기도 시흥의 거북섬 프로젝트는 처음엔 미래형 복합도시로 주목받았지만, 분양 피해자 다수가 발생하고 일부는 유령도시화되면서 현실은 이상과 크게 어긋난 상태다. 그렇다면 이를 ‘성공적 사례’로 자랑하는 것은 단순한 인식 부족인가, 아니면 정치적 메시지의 무리한 포장일까?

정치인의 말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라 공공 신뢰를 구성하는 책임의 언어다. 만약 실패한 정책 사례를 사실관계 확인 없이 홍보 수단으로 활용했다면, 이는 국민의 고통 위에 또 다른 불신을 쌓는 셈이다. 특히 해당 지역에서 실질적인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있을 경우, 그 발언은 ‘언어의 폭력’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더욱이 이런 발언이 단지 한 차례의 해프닝이 아니라, 일관되게 반복되는 문제라면 더욱 심각하다. 지난 몇 년간 다수 정치인의 발언이 ‘사실 확인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경우’로 논란이 된 적이 많다. 어떤 이는 커피 원가를 언급하며 경제 감각 부족 논란을 일으켰고, 어떤 이는 국제 정세나 산업 구조에 대한 단순화된 인식을 내세우며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을 단지 특정 인물이나 진영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치인의 말’을 소비하는 국민이자 유권자로서, 그 말이 ‘사실에 근거했는지’,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래의 정책 방향에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를 더 꼼꼼히 따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투표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말과 책임의 균형 위에 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공적 인물의 언어는 곧 그 인물이 대표하는 정치세력 전체의 품격을 대변한다는 점이다. 정치인 개인이 가볍게 던진 말이 결국 그 정당 전체의 신뢰도를 추락시키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것이 바로 ‘언어의 자폭’이 발생하는 순간이다.

이처럼 언어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다리가 되기도 한다. 레토릭으로 포장된 허위 메시지는 일시적인 환호를 이끌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다. 반대로, 때로는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말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특히 오늘날처럼 국민 개개인이 고도의 정보력을 지닌 시대에는 정치인의 언어가 그저 ‘비전’만 담아서도, ‘감정’만 자극해서도 안 된다. 사실에 기초하고, 책임 있게 설계된 언어만이 설득력을 가진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며, 행동의 전조이며, 결국 신뢰의 기반이다.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인, 지식인, 그리고 우리 모두는 ‘공적 언어’에 대한 책임의식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말로 상처 주는 경쟁이 아니라, 말로 회복시키는 민주주의다. 지도자의 한 마디가 사람을 움직이고 나라를 이끄는 것이 진정 가능하려면, 그 말 속에 진실과 존중, 책임이 담겨야 한다.

특권이 아닌 책임으로

이 시대는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책임'을 요구한다. 종교계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국가지원금을 받고, 문화재 보호라는 이유로 각종 예산의 수혜를 입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감수해야 한다. 팔공산 모노레일 설치 문제는 단순한 건설 논쟁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공공이익'과 '특수이익' 사이에서 어떤 원칙을 세울 것인가에 대한 시험대다.

누구든, 무엇이든, 공공의 이익 앞에서는 겸허해야 한다. 절도, 산도, 모두 우리 모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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