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남 진씨가 안 늙는 이유는 대체 뭐유?
스크롤 이동 상태바
가수 남 진씨가 안 늙는 이유는 대체 뭐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TV를 보노라니 가수 남 진 씨가 등장하여 자신의 히트곡인 '둥지'라는 노래를 부르더군요. 그 양반이 나와서 노래를 열창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저의 기억은 어느새 과거로의 타임머신을 타고 30여년 전으로 회귀하게 되면서 슬그머니 미소가 함께 떠올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의 세월 보따리를 풀어 그 속에 들어있는 어떤 편린을 펼쳐봅니다.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였는가 봅니다. 지금이야 유명가수의 공연을 보려면 TV를 보던가, 직접 실물을 보려면 제법 규모가 큰 나이트클럽 등의 술집에 가면 볼 수가 있지만 제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유명한 가수들의 공연은 거개가 극장에서 '리사이틀'이라는 형태로 진행이 됐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어느 여름방학 때 였습니다.

당시 저는 저의 고향인 충남 천안시에서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당시의 인기가 가히 하늘을 찌르던 가수 남 진씨가 천안극장에서 '리사이틀'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지금이야 가수 보아라든가 GOD등의 가수들이 인기절정이라지만 당시 저와 많은 사람들은 가수인 남 진씨와 나훈아씨를 정말로 좋아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변함없이 남 진씨를 좋아하는데 남 진씨의 히트곡이었던 '님과 함께'는 정말이지 지금으로 치자면 가수 김 수희 씨의 '남행열차'처럼 그렇게 당시에는 가히 '국민가요'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충남 천안시의 봉명동을 지나 조금만 가면 '와촌동' 이라는 곳에 가면 지금은 사라진 '충남방적'이라는 아주 커다란 방적공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공장엔 저희 동네의 누나들도 대거 돈을 벌러 다녔던 곳이었지요.

당시엔 다들 먹고 살기가 고달펐던 시절이었던지라 여유가 있는 집에서야 초등(국민)학교를 졸업한 자녀를 중학교에 보냈지만 그렇지 못 한 집에서는 자녀가, 특히 여자의 경우엔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을 하면 식구들 입을 줄일 양으로 그 공장에 취직을 시키는 집이 많았습니다.

그 충남방적 옆에는 커다란 하천(개울)이 있었는데 지금이야 물도 오염되고 오래 전에 복개공사가 이뤄져서 볼 수 없지만 당시엔 물 밑을 유유히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들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물이 맑았었기에 우리 친구들은 여름방학만 되면 그 개울에 가서 물놀이를 하며 노는 게 거의 하루 일과였습니다.

그 날도 친구들과 어울려 그 개울에 가서 수영을 하고 놀다가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충남방적을 지나는데 마침 그 공장의 퇴근시간과 맞물려서 일단의 공장직원들이 대거 우르르 정문을 나와 우리들 앞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제가 살고있는 동네의 바로 윗동네에 사는 동네누나도 한 명이 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나와 그 누나의 친구인 듯한 여자들 서넛이서 수다를 떠는 말이 그만 제 귀에 화살처럼 들어와 박히는 것이었습니다.

"야! 이번 주 토요일 날 가수 남진이가 천안에 온대!"
"어머나! 그게 정말이여? 어디서 '쇼' 하는디(데)?"
"천안극장에서 한댄다, 그날 난 꼭 갈 껴!"
"와아! 정말 재밌겠다, 그럼 나도 가야지!"

그들 누나 그룹들은 즉석에서 그처럼 이심전심이 되어서는 가수 남진씨의 리사이틀을 보러 가겠다고 의지를 굳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누나들의 그 말을 들은 저의 마음 역시도 금새 풍선처럼 마구 하늘을 부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진이 온다구? 그럼 나도 가서 꼭 봐야지!'

지금도 그 명성이 저와 같은 구세대들의 가슴엔 깊이 각인돼 있지만 1970년대의 톱가수 남진씨는 그야말로 쑥 빠지게 잘 생긴 외모와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를 표방한 제스추어 등으로 해서 그 인기가 절정이었으며 영화배우로도 데뷰해서 숱한 여성 관객들의 가슴을 녹였던 정말 멋있는 가수였습니다. 당시에 시집 안 간 여자치고 가수 남진씨를 좋아하지 않은 분은 거의 없었을 정도로 그렇게 남진씨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던 시절이었지요.

아무튼 그날 저는 집에 돌아와서 남진씨의 쇼 구경을 할 돈을 얻어낼 셈으로 저녁 늦게 직장에서 귀가하신 아버지를 졸랐습니다.

"아부지, 저기유."

제가 잔뜩 뜸을 들이면서도 불쑥 말을 못 꺼내자 아버지께서는 답답하시다는 듯 이내 목청을 돋우셨습니다.

"뭔디 그려? 얼른 말을 혀"

그래서 저는 어렵게 입을 뗐지요.

"이번주 토요일 날유, 천안극장에서유."

아버지께서는 역시 더 답답하시다는 듯 이젠 역정까지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어이구, 이 답답한 놈 좀 보게나, 그러니께 토요일날 뭘 어떻게 하라는 겨?"

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나머지 말을 다 토해냈습니다.

"그날 가수 남진이가 천안극장에 온대유, 그래서 저두 그날 남진 쇼를 보고 싶어유. 그러니께 제게 돈 좀 주세유! 구경 좀 가게유."

하지만 '혹시나'는 늘 그렇게 '역시나'로 귀결되는 게 세상사의 이치인가 봅니다. 아버지께서는 금방이라도 제 따귀를 한 대 올려 붙이실 기세로 그렇게 저를 혼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야, 이 철딱서니 없는 놈아, 그래 밥 먹고 살기도 어려운 세상에 뭐? 가수 남진이 쇼를 보러 가겠다구? 안돼! 임마."

혹 떼려다가 되려 혹만 붙인 꼴이 된 저는 아버지의 그 지당하신 말씀에 그만 낙심천만하여 이내 고개를 떨구었지만 제 마음만은 여전히 결의(!)에 불탔습니다.

'누가 뭐래두 난 그날 '남진 쇼'를 꼭 볼껴!'

드디어 날짜는 흘러서 건곤일척(?) 운명의 토요일날이 도래했습니다. 꽁보리밥과 시어터진 짠지(김치)로 점심을 대충 때우고는 저와 똑같이 빈한하게 없이 살던 동네친구 한 녀석을 꼬드겨서 천안극장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아니나 다를까.

남진씨의 공연을 보려고 온 사람들로 인해 천안극장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남진씨의 공연하는 모습을 꼭 구경을 하고는 싶은데 돈이 없던 저와 친구는 그 극장 앞을 연신 배회하면서 혹시라도 구경을 오신 동네의 아는 아저씨나 아줌마, 그도 아니면 형이나 누나들이라도 오면 어찌어찌 사정을 해서 함께 묻어서 입장을 하려 했으나 하지만 그러한 우리들의 바램은 한 시간 이상이나 기다려 봤지만 역시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극장의 입장객에게서 입장권을 받고 입장을 시키며 공짜손님들의 입장을 저지하면서 아울러 문을 지키는 사람, 즉 당시엔 '기도'라고 했습니다. 깍두기 머리에 우락부락하기까지 하여 마치 조폭의 일원인 듯한 무서운 '기도 아저씨'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극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음모(!)를 설정하니 금새 저의 다리는 금방이라도 누가 슬쩍만 건드려도 푹 고꾸라질 듯 그렇게 후들후들 떨려왔지만 저는 이를 옹골차게 악물었습니다. 극장으로 입장하는 사람들을 그처럼 호시탐탐 감시하던 기도 아저씨가 남진씨의 1부 공연이 시작되어 더 이상의 입장객들은 다음에 시작하는 2부 공연을 보려고 극장 인근의 다방과 식당 등지로 우르르 흩어지자 잠깐사이에 얼굴을 감추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극장 안에서는 아마도 가수 남진 씨가 무대에 등장을 했는지 여자들의 "와! 남진이다!" "오빠!"라는 괴성과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환호성에 저는 그만 이제는 완전히 이성을 잃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기도 아저씨는 아마도 그동안 줄기차게 참았던 오줌을 누려고 화장실에 갔기에 지금 시간에는 얼굴이 안 보이는 걸 거야!' 제 눈치만 흘끔흘끔 훔쳐보던 함께 갔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야, 지금은 기도 아저씨가 안 보이니께 우리 잽싸게 극장 안으로 뛰쳐 들어가서 문을 열고 치고 들어가자, 설령 걸렸다손 치더라도 깜깜한 그 극장 안에 숨어있는 우릴 제깐 껏들이 어찌 찾겠냐? 안 그래?"

저의 호언장담에 친구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길레 저와 그 친구는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는 드디어 거사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천안극장의 커다란 유리문을 잽싸게 열고 들어가서 뒤와 옆도 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며 두 어 걸음 뛰노라니 마침내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문이 보였습니다.

친구는 제 뒤를 용맹무쌍하게 뛰따랐고 저는 그 문을 향해 바짝 다가가서 힘을 잔뜩 주며 밀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문은 미는 것이 아니라 당겨야 열리는 문이었기에 저와 그 친구는 "아뿔싸~!" 라는 생각에 다시 문을 앞으로 당겼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떤 묵직한 느낌의 손아귀가 저의 목덜미를 힘껏 움켜쥐는 것이었습니다.

"야, 이 쥐새끼같은 놈들아, 니들은 오늘 죽었다!"

저는 순간적으로 오줌이 찔끔 지리도록 그렇게 극도로 무서운 공포감에 휩싸여야 했습니다.

'으윽... 이제 난 죽는구나!'

제가 화장실에 간 줄로만 알았던 기도 아저씨는 하지만 극장의 입구에서는 잘 안 보이는 매표구 옆의 간이의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있노라니 우리 둘이 새앙쥐처럼 잽싸게 극장 안으로 잠입하여 문을 열려고 고군분투함을 보자니 그만 벌떡 일어나서는 우리 둘을 잡았던 것이었습니다.

"어이구~ 아저씨, 잘못했슈. 한 번만 봐 줘유. 다신 안 그럴게유"

저와 친구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지만 그 험악하고 무서웠던 아저씨는 우리 둘을 화장실 입구로 끌고가서는 "니들은 오늘 뒈지게 맞아야 한다"면서 마치 복날에 개를 패듯 그렇게 마구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어이구, 잘못 했슈!"

몇 번이나 빌고 또 빌었지만 지린내가 진동하는 화장실 앞에서의 지겨운 그 아저씨의 무자비한 폭력은 금방은 멈추질 않았는데 그 폭력은 다행히도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손님이 다가옴므로 해서 겨우 멈춰질 수 있었습니다.

"니들 오늘 운이 좋은 줄 알아, 임마. 얼른 집에 가"

하지만 그 아저씨에게 신나게 얻어터져서 입술에 상처까지 난 우리들로서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그냥 극장 밖으로 나가기는 솔직히 너무도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습니다.

"아저씨한테 신나게 맞았으니께 말인디유."
"뭔 말인데?"
"아저씨한테 맞은 값 대신으로 남진 쇼를 보면 안 되남유?"

그러자 그 아저씨는 사람좋은 표정을 지으면서 껄껄 웃는 것이었습니다.

"푸하하하, 남진 쇼가 그렇게도 보고싶냐?"
"그럼유~! 증말 보고 싶어유!"

우리들의 울먹울먹한 하소연의 이구동성에 그만 그 아저씨는 마음이 가을갈대처럼 흔들렸던가 봅니다.

"그래! 내가 오늘 인심 한 번 크게 썼다. 얼른 저 문으로 들어가라~"

그 아저씨의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허리를 90도 각도로 꺾으며 연신 인사를 드리고는 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화려한 무대 위에서는 마침 가수 남 진 씨가 그 유명한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슷한 의상을 걸쳐입고 등장하여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라며 자신의 히트곡을 열창하고 있었습니다. 그처럼 비싼 값을 치루고 남진 씨의 공연을 그것도 공짜(!)로 구경을 한 탓이었을까요.

흠씬 두들겨 맞아 구경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그날 밤에 잠을 잘 때는 여기저기가 욱신거리며 아팠지만 그래도 기분만은 최고였습니다. 그날 아버지께서는 저의 부어 터진 얼굴과 지저분한 옷 매무새를 보시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셨지만 저는 다시금 혼 날 생각에 그만 시치미를 떼야만 했습니다.

"아뉴, 친구랑 그냥 싸웠슈" 아버님은 불행히도 벌써 17년 전에 작고하시어 지금은 제 곁에 안 계시지만 지금 역시도 과거와 다름없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가수 남진씨를 보노라면 그처럼 30여년 전의 세월이 추억의 주마등처럼 제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근데 남진씨가 안 늙는 노하우는 대체 뭐유? 그 것 나도 좀 알면 알 될까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