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피보다 더 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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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피보다 더 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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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형 소설가 기고문

붉은 노을이 온 사방에 깔려있었던 같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던 길이었다. 저만치 한 떼의 사람들이 삥 들러 원을 그리며 모여 서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들 한가운데서 두 여자가 맞붙어 격렬한 몸 싸움을 벌리고 있었다.

한 여자는 늙었고 다른 한 여자는 젊어 보였다. 늙은 여자는 가엾게도 몹시 야위고 초췌한 몰골이었고 젊은 여자는 온몸이 탱탱하고, 탱탱한 전신에서 독 스린 힘이 넘쳐흘러 보였다. 두 여자는 서로의 머리끄대기를 붙잡고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이내 젊은 여자가 늙은 여자의 배를 타고 앉아 잔인하게 짓이기기 시작했다.

“저 젊은 여자가 첩이래, 늙은 여자는 본마누라고, 애들이 여섯이나 있는데, 남자가 바람이 났대.”

“저 젊은 여자, 저 신작로 위에 사는 양 색시 아냐?”

“맞아.”

누군가 내 귓가에서 그렇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키들거리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어린 나이였었지만 나는 대번 두 여자의 관계와 현장의 정황을 알아차렸다. 기껏해야 10살 안팍이었을 텐데 그 나이에도 나는 그들 중 누가 정법자이며 누가 탈법자인지를 가려 볼 줄을 알고 있었다.

정당한 자기 몫을 빼앗긴 자가 자기 몫을 불법 탈취한 자에게 항의하다가 도리어 폭행을 당하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그런데 누구 하나 이 가련하고 억울한 피해자의 편에 가담해 주려는 자가 없었다. 모두가 웃으면서 구경만하고 있는 속에서 나 혼자 분해하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일이 두고두고 잊히어지지 않는다.

나의 엄마도 이모도 아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여자가 맞고 있었는데 내가 왜 그토록 불쌍해하며 분해하고 있었던지, - 신비롭고 희한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지금 만일 또 한 번 그런 자리에 있게 된다면 과연 내가 그때처럼 그렇게 분해서 발을 동동 그르게 될지, 의문이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우리들 안에 좋은 것들도 생기지만 마멸되며 파괴되어 가는 것들도 적지 않다. 그 중의 하나가 정의감(正義感)이다.

불의한 현장을 목격해도 유년기나 청소년 시절처럼 그렇게 단숨에 뜨거운 노(怒)가 솟구쳐 오르지를 않는다.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불의를 행해가다 보니 어느 새 우리도 불의와 한 몸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의가 오히려 우리에겐 더욱 친근스럽게 느껴졌다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정신적인 주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며 어느 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惡魔)의 화신이 되어있다는 증거다.

불의(不義)를 보면 당연히 노해야만 하는 것이 정의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 인간의 되어져 있어야할 정상적인 모습이다.

옛날 미국에서 들어온 서부영화에서 보면 의로운 보안관이 나타나 마을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마을 안에 다시 평화와 행복을 찾아주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흔히 등장하곤 했었다. 의로운 보안관이 악당 하나하나를 쏘아 죽일 때마다 관중석에선 이 불의의 종식(終熄)을 기뻐하는 환호의 숨소리가 고조되었고, 특히나 어린아이들은 그들이 지닌 천진성(天眞性)을 솔직하게 들어내 기뻐 날뛰며 손뼉을 치곤하였었다.

그런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면 오랜 가뭄 끝에 단비라도 맞은 듯 그 동안 체증(滯症)처럼 얹혀있던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해갈을 당해 마음속이 후련해져 있곤 하였다. 그 뒤 며칠 동안은 그 생각만 하면 다른 우울한 생각이 싹 걷히고 기분이 밝아지곤 하였었다.

우리들 안엔 식욕과 성욕과 같은 육의 욕망만이 있는 게 아니고, 정의와 사랑을 갈망하는 정신적 욕구도 또한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오래 전의 일인데, 미국에서 리틀인가, 하는 흑인 권투선수가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 김 아무 게 선수와 미들급 세계타이틀전을 벌린 적이 있었다.

세계타이틀 보유자는 우리나라 김 아무개 선수였고 미국선수가 여기에 도전하기 위하여 한국에 온 것이었다. 당연히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시합이었다. 시합시간이 임박할 무렵엔 거리가 완전히 비어져 황야처럼 되어버렸다. 전 국민이 일제히 하던 일을 모두 놓고 시합을 보기 위해 중계방송 앞에 모여 있었다.

쿵닥쿵닥, 조마조마, 심장이 콩알만 해져서, 꼴깍꼴깍 침을 삼키며 시합을 지켜보고 있는 온 국민의 마음 안엔 오직 하나의 염원밖엔 없었다. 제발, 우리선수야 이겨다오! 전 국민이 일심일체가 되어 그 하나의 소망 안에 뭉쳐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국민들의 열띤 바램은 시작부터 계속 몽둥이질을 당해야만 되었다.

초반부터 우리나라 김 아무개 선수는 수세에 밀리며 상대방 외국선수에게 줄곧 얻어맞기만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경기 중반 무렵엔 다운까지 당했다.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은 너무 계속된 마음의 몽둥이질에 견디다 못해 아픈 한숨을 토해내며 더 이상 경기 관람을 중단하고 자리를 뜨기까지 하였다.

시합종료의 종이 울리자 사람들은 일말의 기대도 없이 모두가 실망과 상처를 안고 자리를 뜨려고 일어났다. 그때였다. 심판이 나와 승자의 팔을 번쩍 들어 주었다. 그런데 심판이 승자의 팔을 들어주는 걸 보니 외국 흑인선수가 아니고 뜻밖에도 다운까지 당했던 우리나라 아무개 선수였다. 순간 관중석에서 튀어나온 것은 드높은 환호의 함성소리가 아니었다.

이 불의한 판정을 향한 격렬한 분노와 항거의 함성이 와아 일어나면서 온갖 빈병, 깡통, 쓰레기들이 이 불의한 심판석을 향해 뭇매처럼 쏟아지는 것이었다. 나는 비록 그들 관중 속에 앉아 그들과 함께 야유의 팔매질을 던지지는 못했지만 그 정의의 힘찬 함성 속에 열렬히 나의 고함소리를 합해주면서 감격과 환희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승리보다 더 큰 것을 본 것이다.

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과 이 민족에 대한 희망을 본 것이다.

정의를 사랑하는 국가나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결코 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가 입증해 주는 일이다.

우리는 물론 우리와 피를 나눈 우리나라 선수가 이기기를 바라지만 불의한 판정에 의한 거짓 승리는 원하지 않는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피보다 더 진한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정의(正義)와 진실(眞實)인 것이다.

정의에 대한 열망이야말로 인간에게만 주어져 있는 고귀한 속성이다. 사랑도 좋은 것이지만 정의는 더 좋은 것이다. 세상에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혼돈과 불행이 어떠할까를 한번 생각해 보라고 나는 번번이 사람들에게 얘기한다.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악인은 계속 악행을 계속하면서도 흥할 것이요, 선한 사람은 계속 죽임을 당하고 짓밟히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살인자들에 대한 형량이 너무 낮다고 피해자의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국민에게 동정을 구하는 모습이 대중매체(mass media)에 종종 나온다. 같이 울어주지 않을 수 없는 정경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가슴 아파하는 그들의 모습도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지만 그런 동정보다도 정의가 채워지지 않음을 목격하는 일이 더 괴롭다.

사람을 죽인 자이므로 여기에 대한 정당한 대응으로서의 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정의가 충족되는 것이다. 악인을 없애지 않으면 선량한 사람들이 살 수가 없다. 이 땅에서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모두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정의로운 보안관처럼 그렇게 우리 사이에 끼어있는 악인들을 없애주었으면 좋겠다.

정의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이 땅을 맡깁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대한민국 만세!

박계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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