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초경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딸아이를 핑계로 피서계획이란 걸 세워보려 했지만 벌써 알려진 곳곳의 휴양림들은 만원사례가 지날 때였다. 할수 없이 차로 대충의 방문지를 계획하고 아이의 학습에도 도움이 될만한 곳들을 둘러보기로 하고 3-4일간의 일정에 따른 대강의 준비를 하고 길을 떠났다.
그래도 피서 흉내는 내어보자고 아이와 함께 먹을 것, 수영할 것 등의 준비를 하고 막상 길을 떠났지만 가는 곳마다 이어지는 정체는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강원도 입구에 들어서면서 차량정체는 최고조에 달하였고 운전을 하던 남편은 도저히 안되겠다며 좀 쉬어가자고 하여 내린 곳이 홍천 입구 쯤 어디였다.
세워진 차 뒤로 그래도 한 두 평의 좁은 공간이 있기에 그곳에 간이 돗자리를 펴고 우리는 저물어가는 저녁놀 아래 간단한 먹을꺼리를 꺼내놓고 앉았다.
처음에는 그저 한 시간여 쉬다보면 차량정체도 조금 풀리겠지 하는 생각이었기에 그다지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배도 고프고 하기에 준비한 먹을거리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뒤를 보니 그곳 아래엔 깨끗하게 잘 지어진 산장 같은 곳이 있었고 그 산장 아래엔 자그만 계곡이 흐르고 있었는데 밤이어서인지 그렇게 정취가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살살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내려가보니 위에서 보던 것 이상으로 여기저기 텐트도 쳐있었고 계곡도 꽤 넓고 깨끗한 게 아닌가. 우리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딸아이가" 엄마! 저기 봐요 강아지들이 있어요" 하기에 위를 바라보니 산장 휴게소 같은 곳의 빈터엔 낳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강아지 3마리와 어미 강아지인 듯한 하얀 강아지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하던 딸아이, 제 물을 만난 양 희희낙낙이고 그런대로 발 아래 보이는 계곡을 쳐다보며 잠시 쉬어가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정말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떠날 때부터 야영을 할 계획은 아니었기에 준비해온 텐트도 없었고 아무런 장비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그림에 떡인 양 그저 계곡 옆에 텐트를 치고 시원하게 한여름밤을 즐기는 피서객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는데, 남편이 잠시 있어 보라며 내려갔다 오겠다고 하였다. 혹 이 근처의 민박이라도 알아보려고 하나 하는 생각에 그러라고 하고 있는데 잠시 뒤 돌아온 남편의 얼굴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 오늘 여기서 텐트를 치고 하루 자고 가자" 하는 게 아닌가?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하고 물으니 여기 산장에서 일하는 총각이 텐트를 구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뒤 학생같은 청년 하나가 이리로 내려오세요, 하며 위를 내려오라고 손짓을 하기에 따라 내려갔다. "여기 제가 쓰던 텐트가 하나 있으니 우선 이걸로 오늘밤 지내보세요" 하는 것이다.
청년이 올라가고 예전에 30여년 전 산악회를 따라 텐트를 쳐본 기억이 있긴 하지만 한번도 내 손으로 텐트를 쳐본 경험도 없는데다 남편도 내가 알기에 그다지 놀러다닌 경험이 없어 잘 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서 있으니, 남편이 그래도 해보겠다며 여기저기를 잡고 있어보라고 하기에 시키는대로 하였으나 시간이 흘러도 애쓴 만큼 결과는 나오지 않고 힘만 들이고 있는데 위에서 바삐 움직이던 그 청년은 우리를 보고는 내려와서 1시간여를 애쓰며 남편과 함께 텐트를 쳐주고 이곳 바닥이 고르지 못하니 우선 이거라도 깔고 주무시라고 박스 몇 장을 구해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쳐진 텐트에 들어가서 보니 계곡도 시원하고 우선 쉴 곳을 마련했다는 안도감에 한 숨 돌리고 있는데, 한 두 시간 앉아 있다보니 바닥이 고르지 못한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그나마 아무 장비도 없이 이렇게 자리잡고 텐트를 치고 하룻밤 쉬게 된 것만도 감지덕지라며 참고 있는데 저 위에서 "아저씨! 아저씨!" 하며 위를 부르는 것 같기에 올려다보니 아까 그 청년이 열심히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기요, 저 건너편에 있던 학생들이 지금 떠난다고 하니 빨리 그곳으로 옮기세요. 여기보다 훨씬 자리도 넓고 텐트도 넓고 좋아서 주무시기가 나을 거예요"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너무도 고마운 마음에 건너편으로 무조건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건너서 가보니 텐트도 먼저번 것보다 2배는 넓었고 자리도 고른 것이 아주 그만이었다.
낯선 피서지에서 만난 작은 친절이 우리 가족의 하룻밤을 지켜주는 것 같아 너무나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을 편안히 자고 일어나보니 이번에는 비가 억수같이 오고 계곡의 물도 넘치는 것이 쉽게 길을 떠날수 없을 것 같기에 여기서 어떻게 또 하루를 지낼까 하고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 청년이 또 내려오더니 우리에게 내일 떠나시는 게 어떻겠냐며 우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까운 읍의 장을 알려드리겠다며 자세히 길 안내를 해주는 것이었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알려준 대로 여러가지 필요한 것들을 좀 사가지고 오자며 길을 나섰다. 그곳은 상대리라는 곳이었는데 읍의 시장까지는 차로 약 20여분의 거리였다. 우리는 얇은 이불 등 우선 하루라도 편히 지내려면 있어야 할 것들을 대충 사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예정에 없던 그곳에서의 3일간의 피서는 아주 편안하고 아이도 어디 수영장 못지않게 즐겁게 물놀이를 하며 가까운 곳에 놀러온 친구들까지 사귀면서 강아지들을 돌보는 등 생각지 않은 곳에서의 시골이라도 온 듯한 피서를 하게 되었다.
3일째 되던 날, 날도 어느정도 개고 충분히 휴식도 취할만큼 취했다 싶어 이제 계획한 대로 강릉을 거쳐 아이에게 "오죽헌"도 보여주고 하자며 길을 떠나겠다며 그 동안 신세진 청년에게 너무 고마운 생각에 용돈이나 하라며 조금 사례를 하려 했으나, 한사코 받지않겠다고 하며 정 그러시면 내년 여름 피서지가 마땅치 않으시면 여기를 기억해놓으셨다가 다시 찾아달라며 명함 한 장을 내미는 게 아닌가.
길을 떠나며 내내 예상치 않았던 일정의 피서였지만 어느 피서 못지않게 즐겁고 편안했던 여행의 원동력이 되어준 시간들이었다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이었다.
올해는 얼마 동안의 남편의 입원과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아직 피서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장마가 거의 끝나가는 것같아 이제라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작년의 뜻밖의 피서지인 그곳을 다시 찾아볼까 한다.
한 청년의 작은 친절이 우리 가족의 한여름을 시원하게 해주었던 기억은, 살아가면서 돌틈 사이로 솟아오르는 한 줄기의 샘물처럼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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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합니다.
문득 며칠 전에 있었던 어느 역무원의 선한 행동이 생각 납니다.
어쩌면 선한 행동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마음이고 행동이 바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자꾸 앗겨만 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