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대영제국의 본향 런던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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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영제국의 본향 런던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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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시[8]

^^^▲ 영국 대영박물관^^^

정확 우선의 신사들

런던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무덤 속처럼 전통의 먼지 속에 파뭍혀 있는 탑과 성당과 다리와 거리 어디로 가나 수백 년 전 역사책 속을 거니는 것 같은 런던-.

그러나 또 다른 하나의 런던거리를 보려거든 이스트 엔드 The east end 로 가보라. 유서 깊은 <더.시티 The city>를 빠져나가 동쪽으로 발을 옮기면 거기 활력에 넘치는 서민들의 시장이 있다. 과일을 팔고 식료품, 꽃과 골동품과 의류를 파는 잡화상과 노천시장, 여기서만은 신사도 없고, 숙녀도 없다.

떠들썩한 시장의 그 소음은 런던의 새로운 심장이 뛰는 소리, 서민들의 부르는 합창, 과거가 아니라 오늘, 바로 오늘의 런던을 사는 생활인들의 웅변이 있다. 이스트.엔드- 동쪽의 끝이라는 이름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옛날의 동대문 밖이라고나 할까.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던 런던의 변두리이다. 그러나 이름은 그래도 지금은 도심지, 런던은 그만큼 큰 것이다. 그만큼 새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이긴 나라이면서도 부흥할 기회를 놓친 영국, 해가 저무는 적이 없었던 대영제국의 영광도, 산업혁명의 깃발을 들어 올렸던 경제왕국의 찬양도 어느덧 뒷전을 걷고 있다. 가정을 중히 여기는 마이홈주의, 프라이버시의 존중, 계급제도의 일부 존속, 전직의 유동성, 의식주와 생활태도, 더 나아가서는 사교며 레저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관찰하면, 매우 흥미로운 상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사람에 비해 성질이 느긋하다. 발끈발끈하는 단기短氣는 보이지 않는다. 런던의 백화점이나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도 이런 걸 볼 수 있다. 딴 손님과 물견을 흥정하고 있는 점원에게 말을 건네면 으레 가벼운 면박(?)을 당한다. "저는 지금 이 손님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점원의 말속엔 "순서의 에치켓"을 지켜달라는 뜻이 깃들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점원은 한꺼번에 여러 손님을 대할 것이다. 그들 영국인의 생각은 손님을 한 사람 한 사람 차근히, 그러면서도 천천히 대하면서 손님에게 자유로운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그들은 불충분한 서비스를 큰 수치로 여기고 있다. 동양의 관광객들이 호텔의 체크인이나 수화물을 찾을 때 망설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레스토랑에서도 서비스가 느린 것, 서비스하는 쪽의 잘못이나 비 능률이 아니고, 모두 정확히 행동하기 때문이다. 마치 시간표대로, 빨리 식사를 하고싶은 손님은 그만큼 빨리 와서 주문해야 된다는 당연한 이론, 또 자리에 앉자마자 식사가 나온다는 건,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매우 괴로운 일로 여기고 있다.

우선 목을 축여가며 메뉴를 본 다음 하나하나 주문한다. 식사 뒤엔 디저트, 커피, 치즈 그리고 잎담배, 브랜디로 이어지니까 성급한 사람들에겐 오히려 성가시게 마련이다. 많은 동양사람들은 한동안 런던에 머물러 살아도 동양적인 생활의 템포는 그렇게 간단히 변하기 어렵다. 동양사람들은 성급한 승부를 원한다. 성급한 습성은 동양사람들의 거의 공통된 습성이다. 비교적 성질이 느긋한 중국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간단한 점심약속도 한두 차례 편지왕래가 있은 뒤에 정해지는 게 보통이다. 앉은 자리에서 명함을 교환하고 "처음 뵙겠습니다"정도로 척척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거래선에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이쪽 사정을 모조리 설명해도 상대 쪽에선 엉뚱하게 나온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당신이 지금 전화로 설명한 것을 서면으로 보내 주실 수 없으실까요?"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영국인의 느긋한 기질은 개인의 행복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여유 있는 마음과 자기의 페이스대로 착실하게 일하는 '정확우선의 정신'에 바탕한 것이다. 졸속과 시행착오를 막기 위해 늘 단정을 보류하고 예비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영국사람들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넬슨'제독을 낳은 왕년의 세계적 해군 국, 오래된 입헌군주제, 앞면엔 아시아. 유럽대륙이 있고, 거기다 중국, 구주공동체와의 교섭이 외교의 기조라는 점, 또 신문수효가 많고, 그 보급률도 높은 것이 영국이다.

정원가꾸기도 하나의 레저

정확우선의 정신은 샐러리맨 생활의 매일 매일에도 반영되고 있다. 이를테면 런던의 큰 신문사나 큰 회사에는 근무예정표가 2 개월쯤 앞서서 마련되어 있다. 여름휴가의 날짜배정 경쟁같은 것은 앞당겨 크리스마스 때부터 서두르고 있다. 회사측은 여름휴가의 희망을 전 사원으로부터 제출케 하는데, 제나름의 휴가날짜를 받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여름휴가의 날짜를 정하면 다음은 여행의 안내서를 수집해서 가장 경제적인 해외여행의 플랜을 짠다. 해외여행도 우리나라처럼 명승고적을 찾아다니는 일은 드물다. 물가가 싼 스페인. 포르투갈의 해안이라든지,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구의 간소한 호텔에서 2 주일동안 줄곧 일광욕을 즐기는 게 보통이다.

여행사도 호화로운 안내서를 마련, 앞질러 반년 전부터 선전을 하기 때문에 성급한 우리들로서는 실감이 가지 않는다. 야간 비행기를 이용하는 단체편이고 보면, 세끼의 식사를 포함해서 한 사람에 약 9만원이 시세. 1년을 통해 샐러리맨의 화제는 여름휴가와 해외여행이다. 우편배달부 아저씨도, 오피스.레이디도 지난 여름휴가의 이야기를 즐기는 모습은 보기 드문일이 아니다.

의료비와 노후의 근심이 우선 필요 없는 복지국가이며, 저축보다도 휴가, 일보다 레저를 더 중시한다. 영국인의 레저 중에서 변함없이 늘 인기가 있는 것, 정원 가꾸기는 어르신들의 취미로 보는 경향이 많은데, 영국의 경우는 딴판이다. 젊은 샐러리맨들도 점심시간에 화학비료나 꽃 씨앗을 사 들인다. 목로주점 펍Pub에서 하는 잡담 속에서도 꽃가꾸기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쏟아져 나온다.

런던에서 노동자는 축구, 인텔리는 럭비로 스포츠를 선호해, 즐기는 데도 계층 차가 엿보인다. 하지만, 정원 가꾸기와 화초 가꾸기는 만인에게 통하는 레저의 하나로 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버킹검궁전 정원에 피는 장미도, 이스트,엔드의 노동자 주택 뒤뜰에 피는 장미도, 거의 다름이 없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열광적인 장미 가꾸기의 팬이다. 그녀는 해마다 열리는 이름 있는 장미 쇼에도 몸소 참석한다. 여왕과 시민은 장미 꽃 가꾸기의 공통적인 취미로 밀착된다. 런던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하이드파-크를 비롯, 보이는 광장마다에 아름답게 핀 갖가지 꽃에 눈길을 빼앗길 것이다.

가정에서는 4월에서 10월까지는 집 둘레에 되도록 많은 꽃을 피우도록 겨울동안 그 준비에 겨를이 없다. 런던 사람들은 동물을 사랑하기로도 유명하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레저로 되어 있다. 성장한 자녀들이 딴 살림을 하게 되면 늙은이는 외롭게 남기 마련이다. 이런 노인들에게 있어서 개는 유일무이한 좋은 반려가 된다.

습관적인 검약풍조

의식주 셋 중 가장 검소한 것은 음식물인 것 같이 느껴진다. 런던의 주부들은 그다지 요리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선인先人들이 대영제국을 쌓아올린 건 오로지 소박한 요리의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삼베 끈으로 동여맨 직경 20센티에 두께 10센티의 고기 덩어리(2킬로정도)를 오븐으로 1 시간쯤 구우면 맛있는 로스트비이프가 만들어 진다.

남편은 둥글게 잘라서 접시에 분배하는 일을 맡는다. 요리할 때 나온 육즙을 적당히 얹어 겨자를 발라 먹는다. 징기스칸 요리처럼 유목민족의 야외요리도 파티용으로는 안성맞춤, 여기다 빵, 케이크와 군 감자가 따르면 만점이다. 런던사람들의 식생활에 있어서 뺄 수 없는 것은 티이Tea와 하이티이. 커피는 담화용, 티는 명상용이라고 한다. 런던서 돌아 온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영국 신사들은 늘 넥타이를 매고 조끼차림에다 아래위의 양복을 단정히 입는다고....

하지만 실은 영국의 여름기후가 비교적 서늘하기 때문에 정장을 하게 되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부인들의 미니, 미디, 맥시같은 유행도 스스로 만든다. 남들과 옷으로 겉치레를 하는 경쟁풍조는 거세지 않다. 그러나 주택만은 단연 사치스러운 편이다. 런던 사람들의 집은 그들의 성城이며, 신성불가침이라는 옛이야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런던엔 고옥古屋이 많다. 백년된 고옥은 수두룩하다. 녹지공간을 매우 중히 여기는 런던사람들의 주택 관은 그들의 취향을 잘 말해 주는 것 같다.

유우머가 넘치는 런던사람들

정원을 즐기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지만, 런던사람들도 꼭 같은 인간이므로 외롭게는 못 사는 법. 그래서 치이즈, 와인파티가 성행한다. 저녁식사에 청해도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식사 뒤에 응접실의 개방, 샐리이 술과 포도주를 내 놓는다. 치이즈나 땅콩, 꼬치안주로 족하다. 응접실에는 손님이 그득히 찬다. 주부와 딸은 눈치껏 적당히 서비스하면 된다.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과만 사귄다는 건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여러분야의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하는 걸 사교의 목적으로 그들은 생각한다. 계층의 상하를 막론하고 런던사람들은 일상생활에 유머가 많다. 필경 이런 유머는 다목적 사교의 영향을 받는 탓인 것 같다. 런던 사람들의 유머는 대인관계에서 중요한 윤활유 구실을 하고 있다.

런던의 택시문화는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운전면허증엔 사진이 필요없다. 3 년의 유효기간이 기록된 면허증만으로 족하다. 개인의 인격을 존중, 신뢰하는 제도는 이것 하나에서도 엿볼 수 있다. 런던에서는 면허증 제시를 요구 당하는 기회란 거의 없다. 밟지도 밟히지도 않겠다는 런던 사람들의 생활신조는 여러 면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강요를 싫어하며 그런 것을 수치로 생각하는 것 같다. '책임이 따르는 자유' '자율적인 행동' 이런 것이 런던 사람들의 강점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강점은 일조일석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끈덕지게 생활 속에 자율성을 심어 온 결정으로 보인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처리한다'는 철저한 책임관념은 그들로 하여금 오늘의 보다 자각된 민주시민으로서의 긍지를 자랑으로 삼게 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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