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를 통해 유년시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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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etre et avoir / to be and to have'

^^^▲ 마지막 수업 (Etre et avoir, 2002)^^^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방학이 되어도 학원 때문에 맘대로 놀지도 못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방학은 정말이지 심심하다 못해 지루했고 그래서 학교에 가고 싶기까지 했다. 오히려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노는 게 더 즐겁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영화가 한 편 있다. 필리베르 감독이 조르쥬 로페즈(Georges Lopez) 선생님을 만나 유년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영화 <마지막 수업>을 만들었다. 또 이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알게 되었고 이것이 곧 주제라고 말한다. 그 주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베르뉴와 샛골 그리고 조르쥬 로페즈와 코 밑에 점 난 선생님

영화는 아이들이 승합차를 타고 학교에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승합차를 타고 학교에 오는 오베뉴그 마을 아이들 속에 1시간 30분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던 샛골 아이들 모습이 겹쳐졌다. 특히 영화 속 마리는 어린 시절 내 동생의 모습과 너무 비슷했다. 동생과 나는 봄이면 버들피리 만들어 불고 여름에는 가래나무 아래 앉아서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하고 가을이면 밤 줍고 겨울에는 미끄럼 타며 걸어다녔다.

프랑스 중부의 오지 오베르뉴 마을. 이곳엔 전교생이 한 학급만으로 이루어진 학교가 있다. 아직 1부터 10까지도 셀 줄 모르는 4살 반 마리부터 중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의 아이까지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선생님과 공부를 한다. 선생님은 글자를 그리는 꼬맹이, 수업시간에 불쑥 지금이 아침인지 점심인지를 묻는 엉뚱한 녀석을 한데 모아 놓고 수업을 한다.

우리 반 친구들은 23명 한 학년 당 한 학급이었는데 우리 학년이 제일 많았다. 다른 학년은 10명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3학년인 우리 반에 13살 먹은 언니도 함께 공부했다. 그 언니는 학교에 자주 못나왔고 아주 가끔은 <내 마음의 풍금>에 홍연이처럼 동생을 업고 학교에 오기도 했다. 그 언니는 우리에게 선생님이자 엄마이고 친구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그 언니에게로 달려갔으니까.

비 오는 날, 하교 길,선생님은 교실에서 아이들을 승합차까지 두 명씩 우산을 씌워 데려다준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기들 맘대로 뛰어간다. 비를 맞지 않게 하려고 아이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던 선생님은 결국 우산을 두 개씩이나 들고도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

비 오는 날 동생이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면서 날 찾아왔다. 집에는 가야 하는데 비는 오고, 신발은 없고, 동생은 울고. 어쩔 줄 몰랐다. 그 때 코 밑에 점이 있는 선생님께서 마리처럼 생긴 동생을 번쩍 들어 안고 가까이 사는 친구 집에서 신발이랑 우산을 빌려 주셨다. 그땐 비도 참 많이 맞고 다녔다. 속옷이 흠뻑 젖도록 비를 맞고 감기를 앓고 나서 만나는 햇빛은 그 어지럼증의 깊이만큼 반가웠다.

또, 그림에 색칠 다 하고 놀아야 하는데 조조가 다른 아이들을 따라 나가다 선생님께 붙잡혀온다. 선생님이랑 마주선다. 한참을 올려다보고 한참을 내려다보고,이 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너무 따뜻하다.

80년대 초 도화지 한 장에 20원이었다. 스케치북을 샀다하면 한꺼번에 다 그려 버리거나 잃어 버려서 한 장씩 사서 썼다. 그런데 그 돈으로 알사탕을 사 먹어서 짝꿍의 스케치북을 찢게 했다. 내 짝은 말도 별로 없고 조용한 남자 아이였다. 그때 우리는 빨강, 파랑, 초록, 노란색에 금줄을 돌린 피노키오 연필과 왕자표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다.

소도 잘 치고 트렉터 운전도 잘하지만 공부는 뒤쳐지는 줄리앙,그는 이제 중학교를 가야하는데 아직도 구구단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구구단 숙제를 하는데 온 가족이 달라 붙어서 가르쳐준다. 줄리앙은 7단부터 헤매지만 나는 3단을 외우고 4단을 못 외워 6대를 맞아야 했다. 울면서 말했다. '5단은 외울 수 있어요' 선생님은 웃으며 '그래, 한 번 해봐라' 그래서 5단을 외우고 5대를 맞았다. 지금도 구구단은 참 어렵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과 인사한다. '어디 안아보자' 조조를 꼭 끌어안는다. '엄마가 학교 가라'고해서 학교에 온다던 질문 많던 조조는 선생님 품속으로 멀뚱이 들어간다. 아이들은 이게 마지막 수업인지 일상적으로 맞는 방학인지 모르는 듯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오던 날. 서울에 가면 기차도 버스도 많이 탈 수 있고 이은하도 혜은이도 칼라 텔레비젼으로 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아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겐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이웃들과 헤어지는 서운함보다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 대한 동경이 더 컸던 것 같다. 곧바로 한 학년이 16반까지 있고 한 반에 60명이 넘는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그 곳 친구들을 그리워하긴 했지만.

^^^▲ 마지막 수업 (Etre et avoir, 2002)^^^
이 영화는 이렇게 선생님과 아이들이 가르침을 주고받으면서 교실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상들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고 있다.

큰 소리 하나 없이 다른 연령, 다른 성격의 아이들을 통솔하고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서로 싸우고 토라진 아이들을 화해시키고, 자기 할일을 끝마치지 않고 나가 놀려는 조조를 차근차근 묻고 답하며 왜 그래야 하는지를 이해시키는 장면은 참 따뜻하다. 그리고 특수학교로 옮겨야만 하는 나탈리에겐 선생님이 너를 다른 학교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음을 설득시킨다.

우리가 < 마지막 수업>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감동 받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 기억 속의 유년을 환기시켜주고 잠시나마 근심 걱정 없던 순수의 시대로 돌아가나를 가다듬게 하는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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