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계몽은 모르는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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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계몽은 모르는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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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샘의 신좌익 사상 비판 (4)

^^^▲ Theodor W. Adorno^^^
몇해 전 여름이었을까? 아침 일찍부터 필자를 찾아온 아이는 말했다.

“선생님,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고민했는데 S대학에 갈거에요...열심히 할 거에요. 제가 그 대학에 가도록 도와주세요.“ “전에 말씀드린 문학도:(시(詩))쓰는 일을 그만 둘거에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교수님 말대로라면 시골농촌에 내려가서 삽자루들고 그렌져 탈 것 같아요.!.”

“선생님은 영어도 가르키고 법학공부도 하면서 취미로 시(詩)를 쓰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유명한 시인들의 시보다 선생님 시가 진실하고 힘이 있었어요.”

나는 이 조그마한 사실의 이야기를 좀 이 지면을 통해 밝히기가 심히 부끄럽고 얼굴이 홍당무같다.

하지만 그 녀석은 이후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고 원하는데로 문학도가 아니라 경제학도로 바뀌어 그렇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녀석은 원래 시(詩)를 좋아해 조그마한 고등학생인데도 불구하고 국내최고의 유명시인(그는 한국 좌파시인의 대부다.)이 강의하는 어느 서울의 대학 강의실에서 시(詩)작법과 문제의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쓴 계몽의 변증법”에 대해 도강으로 들었던 모양이다.

무척 영민하고 똑똑한 녀석이었다. 이후 가끔 시(詩)를 쓰는 필자를 만나 필자의 집 앞 숲속에서 편한 여러 이야기와 자신이 약한 과목 영어를 내게서 수업 받았었다.

자신의 진로문제를 무척 고민하던 아이, 비록 필자도 취미로 쓰는 시(詩)이고 문학과 시자체는 참으로 인간의 정신함양에 좋은 것을 강조했지만 솔직히 좌익정권하에 벌어졌던 대한민국의 문단과 문화계의 작태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과 좌파의 부패 메커니즘, 소위 자칭 프로들의 무(無)실력을 아이에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법학을 하던 문학을 하던 경제학을 하던 그 어떤 다른 전공을 하던 내가 네가 아니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시와 잡 글, 내 공부는 유명해 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란다.

많은 시(詩)쓰는 사람들과 문학, 예술을 하는 젊은이들이 유명해지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더구나. 그래가지고서는 절대 유명해지지도 않는단다. "유명해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훌륭해지려고 노력하지 않겠니?" 내 시와 글은 아직 부끄럽지만 독자가 한 명이라해도 나는 그 사람을 위해서, 훌륭해지려고 노력하고 쓰는 것이란다. 나는 지금 문단에 데뷔할 생각도 없고, 취미로 쓰는 시이니 데뷔하지 않아도 아쉬울 것도 없지 않니? "

"그렇지만 선생님은 취미로 시를 쓰면서 어떻게 앙드레 부르통이나 랭보, 보들레르, 말라메르, 프루스트를 다 아시나요? 그게 취미 인가요? “

“내가 그 사람들이 아니잖니!, 네 전공이 무엇이 될지 내가 모르지만 일단 훌륭해지려고 노력해 보자꾸나. 무슨 전공이든 컴퓨터와 영어, 외국어를 모르고 실력이 없으면 훌륭해 질수가 없으니 열심히 해 보자. 다만 이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네가 원하는 어느 전공을 하더라도 너는 훌륭한 기초와 너만의 소중한 경험을 가지는 것이다. 선생님도 옛날에는 닥치는데로 읽고 뭐 자질구레하고 복잡하게 시를 쓰기도 했는데 지금 느끼기에 그것은 너무 부끄러운 짓이었다. 요즈음은 숲에서 편하게 쉬운 말로 쓰지만 내 경험과 생각을 많이 넣고 쓴단다.“

“아, 그래서 선생님 시(詩)는 힘이 있었구나. 꼭 괴퇴 같은 괴물시이지만 어떤 것은 무척 아름다왔어요.” “네가 괴퇴를 아니? 야, 대단하네. 그래 바로 그거야 패션 즉, 정열이라구. 좋아하는 것에 대한 정렬,사랑, 진정한 바보. 바로 그것이란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이가 한 바로 그 말 “시골농촌에 내려가서 삽자루들고 그렌져 타고 싶지 않아요!.”

맞다. 시골농촌에서도 삽자루들고 찌프를 타면 탔지 그렌져를 왜 탈 것인가? 나는 이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쓴 “계몽의 변증법”을 다시 생각하면 아이의 그 비수같은 말만 생각이 난다.

^^^▲ Max Horkheimer^^^
A :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어떤 사람인가?

*아드르노 : 아드르노는 호르크하이머와 긴밀한 협업을 통해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형성했고 소위(근대이성의 한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1903년 9월 11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1924년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훗설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평생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1927년 이후 베를린에 자주 체류하면서 벤아민, 브레히트, 블로흐, 바일 등과 친교를 맺었다. 나치의 탄압으로 미국으로 피신 하기도 했다.

*호르크하이머 : 호르크하이머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로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공부한 후 1925년 칸트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얻었다.

1930년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철학교수가 되어 대학부속 사회문제연구소장을 지냈으며 E 프롬, 하버트 마르쿠제 등과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이루었다.

나치스 정권 수립후에는 스위스로 이주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했고, 2차대전후 독일로 되돌아왔다.

두 사람이 한 작업의 주된 대상은 기존의 철학에서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비개념적인 것, 비 동일 자, 특수한 것 들이었다. 객체중심으로만 사고를 해서 주체와 객체 사이의 위계질서를 깨뜨리는 것이 작업의 목표였다. (인간의 이성을 ‘새로운 하나님’으로 만들지 말라) 라는 것이 두 사람이 말한 주제이다.

이때 이성은 중세시대의 신(God)중심의 사고를 깨뜨려 버린 실존주의자들이나 니체가 말한 근대이성, 즉 인간중심의 이성을 말하는데 나찌스를 경험 한 이들은 이 인간의 이성도 새로운 하나님으로 등장하여 인간을 새롭게 억압하니 인간의 이성으로 새로운 하나님 짓거리, 쇼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얼핏보면 누구라도 이 말에 굉장한 공감을 할 것이고 예리한 말 같으나 필자가 보기에 문제는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도 마르크스를 공부했고 여전히 변증법적 사고의 한계를 벋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2차대전의 전쟁기간 중 그들은 인간의 무기력 앞에 주목했고 인간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이성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시 고민할 필요를 느꼈다. 20세기 초반은 밝음과 어둠이 선명하게 교차한 시대였다. 20세기는 과학기술과 생산력의 눈부신 발전을 경험한 시대였으며 동시에 대파국의 시대였다.

독일의 히틀러는 “죽음의 공장”을 가동하여 대량학살을 자행했으며 스탈린 시대의 구쏘련은 비대한 공산관료제로 말미암아 파국으로 치달았고 미국의 “문화산업” 시스템은 자율적인 예술과 비판적인 대중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렸다. 20세기는 지식과 폭력이 얼마든지 결탁할 수 있음을 증명한 시대라고 두 사람은 지적했다.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1930년대말까지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 라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명제를 지지했다. 그러나 전체주의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가리지 않고 전면적으로 진행되면서 그 명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야만과 문명, 신화와 계몽의 이분법을 분쇄하는 새로운 역사인식을 수립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지난 십년간 한국사회의 지식인들 중에서, 또는 구 열린 우리당(사실상 닫힌 뚜껑당)의 논평중에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말자”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인가?(마치 자신들만이 깨우쳤고 선진인것처럼....)

근대사회에서 계몽, 진보, 이성, 합리는 어느 체계를 막론하고 무비판적인 근본전제이자 목표였다. 그러나 이 전제와 목표는 인류에게 정신적,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사회적, 자연적 파국도 초래했다.

따라서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인류가 인간적인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여기에 그들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인류역사의 진행은 발전과 퇴행의 계기를 동시에 포함한다. 그들은 이러한 역사의 역설적인 과정을 날카롭게 신좌파적인 변증법적 사고로 통찰했을 뿐이다.

그들은 항상 이렇게 말을 한다.
“인간 이성의 비합리성을 직시하면서 이성이 항상 지배와 연결되어 있음을, 그리고 지배가 자연뿐 아니라 인간 자신과 사회에까지 확대되어 있음을.”

그들의 이 말속에는 날카로움은 있지만 아름다움이 없다. 마치 자신들이 똑똑하다는 것은 은연중에 교묘히 풍기지만 인간 자신으로써의 극복대안이 항상 없는 것이고 명확하지 않는 비도그마가 있다.

필자는 생각한다. 도그마의 오류를 깨었으면 대책없는 비도그마가 아니라 새롭고 더 낳고 현실적인 자생적 도그마도 필요한 것 아닌가? 그래야 그들의 변증법적 사고에도 맞지 않는가? 변증법적인 사고로 날카롭게 문제를 지적하고 깨뜨리고도 자신들의 비도그마적 무대책에는 늘 할 말이 없는 군상, 그것이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제이고 오늘날 우리에게 "생각의 낡음"이 아닐까? 한다.

결국 자신들은 마르크시스트는 아니라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들 사상도 맑스에서 출발했고 “자기해방 사상”의 자기 잘난 멋만 아는 부류들만 양산해 내는 군상들일 뿐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들을 비판없이 추종만 하면 무슨 “중도하자, 실용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해서 교묘히 자기 잘난 척을 하고 대책이 없는 중도하자는 이야기 말이다. 이것은 마르크시스트가 자신들은 아니라해도 중도라는 전형적인 가면아래 자기를 숨길수 있는 마스크일 뿐이고 기회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사상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에는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를 좋아한다면서 왜 이리도 “중도하자”는 부류가 많고 중도의 종류도 많으며 정치적으로 기회주의자들이 득실득실 하는가? 유시민을 잘 생각해 보시라.

^^^▲ 계몽의 변증법^^^
B: 이들이 쓴 (계몽의 변증법: Dialektik der Aufkla"rung)이란 어떤 책인가?

계몽의 섬뜩한 광기가 생산해냈던 아우슈비츠의 비명은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우리도 일제시대의 만주 731부대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광기가 가능한가?"에 대해 좀 진지한 고민을 한 철학자들이 바로 호르크하이머와 아드르노이다.

두 사람은 이러한 광기의 원인을 이성의 신화, 또는 계몽이 만들어냈다고 이야기 한다. 계몽의 개념 자체에 내포된 “저 퇴보의 싹”은 현대사회의 곳곳에 뿌려져 세상을 야만의 시대로 만들어 가고 있다.

神중심의 암흑사회를 인간중심의 사회로 만든 계몽의 야심찬 기획은 때로는 문화라는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의 가면을 뒤집어 쓴 채 나타나기도 하고 합리성과 효율성의 이름으로 인간의 신체와 의식을 검열하는 파시즘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2차대전의 와중에 홀로코스트의 비극에 몸서리치며 자신들의 사유를 전개해나간 호르크하이머와 아드르노의 저작 (계몽의 변증법)이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사회에도 반팽이 지식인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다음의 문구로 스스로를 선전하고 있다.

(*지배의 사슬에서 계몽을 분리하기.....),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효시......) 라고 말이다.

이 책의 첫 번째 논문은 합리성과 사회현실의 뒤엉킴, 그리고 이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자연과 자연지배의 뒤엉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작성되었다. 여기서 행해진 계몽에 대한 비판은 맹목적인 지배에 연루된 상태에서 계몽을 풀어내줄 계몽의 긍정적 개념을 마련해 준다.

첫 번째 부연설명은 특수한 대상들을 중심으로 논의된다. 시민적, 서구적 문명을 대변하는 최초의 증인인 ‘오딧세이’를 중심으로 신화와 계몽의 변증법을 추적한다.

두 번째 부연 설명은 계몽의 무자비한 완성자인 칸트와 사드, 그리고 니체를 다룬다. 이 것이 보여주는 것은 (모든 자연적인 것을 오만한 주체밑에 굴복시키는 것이 궁극에는 맹목적인 객체성과 자연성의 지배 속에서 어떻게 정점에 이르고 있는가이다.)

이 책의 문화산업에 관한 장은 계몽이 어떻게 이데올로기로 퇴보하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영화와 라디오에서 이러한 퇴보의 전형적인 표현을 발견한다.

여기에서 계몽은 무엇보다 생산과 분배에서 효과와 테크닉을 계산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데올로기는 기존질서와 함께 테크닉을 조종하는 권력을 신격화함으로써 본연의 사명을 수행한다.

이러한 모순을 다룸에 있어서 문화산업은 그 자신이 스스로 요청하는 것보다 좀 더 진지하게 취급되었다. 반유대주의의 요소들을 명제별로 다룬 장은 계몽된 문명이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야만상태로 회귀하는가를 보여준다.

“자기파괴로의 실제적인 경향이 합리성 안에는 처음부터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반유대주의의 철학적인 원역사가 구상되었다. 나머지 부분들은 스케치와 구상들을 묶어놓은 것으로 일부는 앞의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고 다른 일부는 향후에 작업할 문제들의 윤곽을 잠정적으로 그려본 것이고 그 대부분은 (변증법적 인류학)과 관계된다.

계몽의 기획은 현대세계에서 계속 중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마르크스주의", "노옴 춈스키의 언어학", "샤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계몽으로부터 내려온 사상 전통속에 자리잡은, 서로 커다란 차이가 있는 지식유파 중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포스트 구조주의 사상"은 계몽이성의 강압적이거나 독재적인 경향을 폭로하려 하면서 계몽이성과 같은 보편적으로 유효한 체계나 능력의 존재를 단호히 부정했다.

현대사상에 있어서 이러한 일반적인 경향의 중요한 효시는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이다. 이 책은 계몽이성이 역사상으로 드러낸 ‘도구적 이성’으로의 쇠락을 설명했다.

그 설명은 기술공학적 지배가 자본주의를 촉진하기 위해 자연과 인간에게 확대되었다는 것을 강조만 한다. 따라서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그러한 변천 때문에 이성이 해방적인 힘을 잃고 지배와 억압의 세력이 되었다고만 주장하는 것이다.

^^^^^^▲ 계몽의 변증법^^^^^^
C. 계몽의 변증을 주장하는 자들, 무엇이 문제인가?

계몽은 대략 17세기 후반 반세기와 18세기를 포함하는 유럽에 팽배했던 사상에 대한 일반적 명칭 가운데 하나이다.

계몽사상가들은 미신과 맹신을 배격했으며 이성을 찬양했다. 이러한 이성을 사람들은 인간이 생활하는 모든 영역을 개선시켜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성적 사고에 의한 정념의 통제, 과학과 기술에 의한 자연의 정복, 보다 책임있고 민주적인 통치형태로 전제정치를 대체하는 민주주의의 발전 등이 모두 계몽의 형태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신(God)중심의 세계관을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바꾸자는 것이었고 문제는 이렇게 바꾸어 놓았더니 나치스, 파시즘 같은 것, 인간의 이성이 인간의 새 하나님으로 등극했다는 것이고 아드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새로운 이성으로도 새 하나님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그 사상적 근원이 변증법이라서 문제인 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실체현상이라는 것들도 과연 변화하기는 변화하는데 두 사람의 말처럼 변증법적으로만 변화 하는가? 절대로 아니다.

필자가 글을 쓰는 책상의 다알리아는 보기에 아름답지만 영점 몇 초 간격으로 사실상 세포분열하고 있다.

필자와 가끔 통화하는 아름다운 여자 친구는 미인이지만 매일 자신의 얼굴에 기미가 없는지 신경 쓰고 있다. 자고 나면 늘 어제의 그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다.

미세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포가 변화한다. 필자의 몇 달전 몸무게는 좀 비만스러웠지만 새벽마다의 수영과 헬스운동, 숲 산책, 취재 보도로 지금은 15kg이 빠졌다.

이것이 과연 변증법적으로 변화한 것인가? 나는 두 사람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이에게 계몽의 변증을 이야기한 반팽이 작자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나라의 농촌계몽운동은 과연 진정 진실하게 농민이 운동주체였던가? 좌파인 당신은 아직도 농민운동의 운동주체는 농민이어야하고 농민임을 강조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보고 그렇게 말하면 절대 거짓이고 사기라고 본다.

필자가 알기로 대한민국의 모든 농촌계몽운동은 농민들이 주체가 아니었다. 그 주체는 바로 도시에서 공부한 좌파 지식인들이었다.

그 옛날 샤르트르를 말하고 앙드레부르통과 쉬르 리얼리즘을 읽으면서 마로니에공원의 교정에서 막걸리 마시며 마르크스를 읽었고 계집애들을 꾀던 고등 룸펜 양아치들이었다. 낭만도 지나쳐서 그 낭만의 가치가 무슨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날나리 사상으로 둔갑하여 농촌가서 계몽운동을 하기도 한 것 아닌가?

생각을 해 보시라. 농촌에서 노동하기도 바쁜 농부들이 무슨 시(詩)를 알것이며 불어인 파르티쟌이라는 단어를 알 것인가? 무슨 농민시, 혁명시, 도시빈민가의 사회적 반영을 읊었다는 시, 이런 것들의 이면과 진실을 보면 진정한 농민이 지은 시가 어디 있는가? 모두들 당신들 소행이다.

김대중은 솔직히 진정한 문화, 예술정신과 철학에 무식했고 햇볓정책의 도구로 이용했으며 노무현정권 들어서 좌파들이 정권을 잡자마자 무슨 랭보의 원어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 리얼리즘 흉내낸다고 자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진정 마르크스 원본도 읽지 않은 사람들이 “박가의 X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별 저급함을 다풀고 불어도 모르고 영어도 잘하지도 못하는 늙은이가 평양을 갔다와서는 무슨 자기도 노벨 문학상을 타야 하는지 온 지구 동네방네 나라 시인 망신을 다하고, 심지어 국가반역음모에 동조까지 했다. 이것이 좌파라고 하더라도 진정 그대들이 원하는 지식인의 소행인가? 대안이 없고 대책이 없는 군상들아.

우리 우파 문학도 필자가 보기에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맨날 무슨 문학계에는 선생같지도 않은 선생님에게 대한 아부, 권모술수 뿐이고 도무지 공부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맨날 “문학, 예술은 사회적 반영이다.” 라는 다 낡아 빠진 구호를 수십년간 주구장창 되뇌이고 있을 뿐이다. 인문학부가 왜 위기일까요?

솔직히 말해서 외국에 좀 다녀와 본 필자로써는 대한민국만큼 공부하지 않는 인문학부들을 가진 대학들도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 맨날 메이져신문의 신춘문예는 자기제자 뽑았다. 표절이다. 라는 시비가 끊이지 않고 문학, 시 전공학과는 그냥 들어가도 되는 하위점수학과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뭐하는 짓거리인가?

그 부패의 사회적 메커니즘구조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문단이다. 나는 솔직히 시(詩)를 좋아하는 제자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문학을 하려면 유명해지려고 노력하는 문학보다 진정한 문학, 훌륭한 문학을 해라...

사실 시인이라고 하는 존재는 그 사회의 카나리아 역활을 해야만 한다. 정치가 처칠도 정치인이면서 문학인이기도 했고 단테도 그랬고 그 외 수많은 대 법률가, 역사가들, 사상가, 교수, 공학 전문가, 언론인, 경제대가들이 선진유럽, 구미에서는 시인이었고 문학도였다.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다 시인이었다. 공자도 그러하지 않는가? 성경도 시(詩)의 보고다.

문학도들도 공부해야 훌륭한 시, 좋은 시, 굵직한 시들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문단의 시인들은 좀 솔직히 필자가 보기에 아니다 싶다. 직업이 없어 맨날 빌빌 하는 군상들, 맨날 땅파먹고 술퍼먹는 양아치, 쓰레기들 뿐이다.

그러니 필자가 제자에게 한 말이 솔직히 “ 나 문단에 데뷔할 생각 없어.....!” 아니 겠는가? "법학을 공부 하면서도 원래 문학은 그런 것이 아닌데?"를 알고 있는 병이 깊은 사람으로써 말이다.

나는 한국의 당대 지식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호르크하이머나 아드르노를 팔면서,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법학, 기타 사회과학과 사회적 실질 현실태를 모르면서, 무슨 개떡같은 "중도, 실용"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강하게 촉구한다. 그런 너희들은 진정한 예술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다. 정신없는 딸랑이들일 뿐이다.

정치, 군사학의 진실을 모르고서 김대중의 사기햇볓정책에 놀아나 중도를 이야기 하고 무슨 통일독일의 민족감정을 치유하는 것처럼 우리도 문학으로 남, 북의 민족감정을 치유하자는 새빨간 몽상을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진정한 정치, 경제, 사회를 넘는 시와 문학이 왜 나오지 못하는가? 이것은 대한민국 문단의 비극이다. 치졸함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쓰레기, 권력같지도 않은 문단권력의 마약에 취해 김대중, 노무현에게 놀아나는 양아치 표퓰리즘 문학 양산 작태이다. 기본실력도 없으면서 노벨 문학상은 무슨 노벨 문학상이더냐?

이러니 이 양아치들에게 속은 또 문학을 모르는 정가에서 무슨 "중도다,실용이다"하면서, 교묘히 중도와 실용을 말하면서, 한나라당(한심당)에 들어오고 마수를 뻗치고 있는 작태 아닌가?

문학같지도 않은 정치 쓰레기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제자에게 말했다 제발 “유명해 지려고 노력하지 말고 훌륭해 지려고 노력해라”고.

아드르노와 호르크 하이머의 문제와 그들을 자기 주체성없이 추종하며 폼을 잡는 얼치기들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너희들은 "神대신 자리한 인간의 새로운 이성으로도 새 하나님을 만들지 말라는 것"인바, 그렇게 떠드는 쓰래기 너희들은 왜, 어린 아이의 창자를 끊어 순대를 만들어 먹는 악마의 행위를 하고(이는 어느 탈북자에 의해 미 상원에서 폭로 공개 되었다.) 수천만이 굶어죽는대도 아랑곳 하지 않는 김정일의 만행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조용한 것인가? 하는 점이고, 개혁개방을 외치면서도 수만명을 살해하고 산채로 사람의 장기를 적출한 중국공산당의 현재, 만행에 대해서는 세계의 언론들이 다 아는데도 한마디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가?

^^^^^^^^^▲ 계몽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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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애인 2008-03-12 17:48:20
I love you ! 권기자....

당신 최고 !

사랑혀, 행복혀...!

전라도 2008-03-12 22:59:08
왔다 기자님 !
용기있고 확실혀부렀소이.......
잘보고 갑니다.
기자님만보면 뭔가 될것도 같어 부러요
내도 손에 힘이 들어간당게
언제 한번 오셔서 막거리랑 시한수 합시다.

권영면 2008-03-13 21:14:49
자주 선생님의 글을 읽고 싶습니다. 저는 "한밤의 대화" 블로그에 있지요.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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