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9일. 제 575돌 한글날이다. 옛날에 있던 한글날이 이러저런 이유로 사라졌다. 한 공무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다시 한글날의 영광이 되찾아졌다. 다수의 언론들은 한글날이 되면 잃어버린 한글날을 찾아 준 문화체육관광부의 고(故)김혜선 과장을 추모하곤 한다.
강원 춘천 출신 김혜선 당시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은 안타깝게도 암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2015년 당시 혈기 왕성하게 일 할 42세라는 나이에 암으로 숨진 김혜선 과장에 대해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단체 인사들이 김 과장 추모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세상을 등진 후 추모행사를 가진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도, 장관도, 무슨 무슨 재벌 총수도, 유명한 학자도, 이름난 예술가도 아닌 평범한 공무원 과장을 추모 행사를 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후문이지만 김 과장은 일벌레로 통했다고 한다. 그는 한글과 한글문화를 지키는 일에 헌신적으로 일했다는 전언이다. 지난 2012년 국어정책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녔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있는 것을 없애기는 대체로 쉬운 일이지만, 없는 것을 다시 있게 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1991년 일을 해야지 쉬는 공휴일이 많아서 되겠느냐는 이유로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돼 버렸다. 사라진 공휴일 한글날을 되찾는데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다시 공휴일 한글날을 되찾게 된 것은 실무자였단 김혜선 과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
김 과장의 한글 사랑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만큼의 한글사랑과 비교한다면 무리일까? 무리가 될지라도 비교는 하고 싶을 정도이다. ‘언어도 인권’이라는 소신을 김 과장을 가졌다고 한다. 언어는 한 인간의 거울, 얼굴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려운 말을 사용하면서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양 거들먹거리는 못난 사람들은 김 과장의 노력을 폄훼할지도 모른다. 정확하고 쉬운 말을 사용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과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김 과장을 일했다. 외국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세종학당 확대와 한글박물관 개관에 김 과장의 땀이 오롯이 스며들어 있다는 평가이다.
사람들은 ‘편한 것’을 추구한다. 그러면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새로운 것이나 좀 힘이 드는 일에는 협조를 잘 안 하는 경향이 있다. 김 과장은 수시로 한글단체의 인사들과 만나 의견 수렴에 열중했고, 한글 정책 반대 의견을 가진 경제부처의 공무원을 만나 설득을 하는 등 그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사람은 휴식이 필요하다.
일벌레라는 말은 긍정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자칫 생명을 앗아가는 부정적인 말이기도 하다. 김 과장은 이 같이 불철주야 한글을 위한 일에 매진하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해 암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고 더 많은 일을 뒤로 한 채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야만 했다.
살아생전 김 과장은 한글날의 의미와 그 가치를 알게 해주는 책자인 “누구나 알아야 할 한글 이야기” 제작과 보급에 앞장섰다. 김 과장의 이 같은 일을 잘 아는 한글단체들은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그를 위한 추모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 과장은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강원도청에서 일을 했다. 이후 2005년 능력을 인정받아 문화관광체육부에 파견, 중앙부처에서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활약을 했다. 그의 사후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추천으로 지난 2016년에 “대한민국공무원상”을 수상했다. 지방 공무원이 중앙부처에서 맹활약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김 과장은 탁월한 업무 능력을 발휘해 아쉽지만 사후에 ‘대한민국공무원상’을 받은 것이다.
요즘 한국 사회는 매우 시끄럽다. 한글을 사용하기보다는 육두문자에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적절히 섞어 말하는 이른바 무식한 지식인들이 판을 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지지 않는다. 화천대유가 어떻고,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써넣고 TV토론에 나서서 이러 저렇게 상대 헐뜯기에 바쁜 대선 정국이다.
대선 예비 후보자들의 입에서 한글의 아름다움, 한글날, 한국을 위한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한글을 말하는 사람들의 표만 의식했지 한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화천대유, 즉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통한 엄청난 규모의 불로소득을 챙기다 들킨 사건이다. 불법, 탈법, 편법을 일삼는 토건세력, 이를 보호해주고 이득을 가져가는 법조계 일부 유명한 사람들, 이들과 함께 여론을 형성해준다며 즐긴 일부 법조기자와 경제부문 기자들, 권력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정치권 인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간단히 퇴직금이라며 50억 원을 꿀꺽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지금 우리는 보고 있다.
토지와 주택, 아파트, 공장 등을 다루며 일확천금을 노리고, 또 이를 자신들의 호주머니에 챙겨 넣는 ‘이권세력’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이들은 서로를 도와주며 ‘챙긴 전리품’을 즐겨 먹는다.
그러나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을 아름답게 가꾸고, 한글을 보급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한글을 먹고 살지 못한다. 그저 열심히 일하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기도 하고 심하면 김 과장처럼 암에 걸려 세상을 하직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돈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며 살아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김 과장처럼 묵묵히 한글을,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존경받은 한국 사회는 정녕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가장 기계화에 적합한 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글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빛을 발휘할 도구이자 정신이다. 방탄소년단(BTS)의 한글 가사의 노래가 텃세가 보통인 아닌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상황에 까지 왔다. BTS는 2021년 9월 유엔에서 세계의 청년 대표자격으로 그것도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이야기를 했다. 한글의 위대성이 다시 한 번 빛나는 순간이었다.
고(故) 김혜선 과장을 다시 한 번 추모하면서, 한글이 세계를 대표하는 언어가 되기를 한껏 기대해본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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