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해적은 국가관에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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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해적은 국가관에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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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 본받고자 하는 목표에 따라 행복의 높낮이가 달라진다

^^^▲ 독일의 경제학자, 철학자 마르크스^^^
국가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영토에 거주하는 다수인으로 구성한 사회집단으로서, 이에 대한 통치권을 갖는다. 하지만 국가가 정말로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은 끊임없이 지금까지 제기 되어왔다.

국가의 목적은 질서와 안전의 확립. 유지수단으로 법규범과 적용. 지리적 경계를 가진 영토가 있어야 하고, 사법권의 대상이 되며, 주권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조직과 구별된다. 국가는 법이라는 수단에 의거하여 분쟁을 해결하려는 개인들의 합의로 이루어진다.

또한 권력에 대해서도 데메트리우스Demetrius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앞에서 “좋은 군주가 도적이 될 수 없고, 그 반대로 해적이 좋은 군주가 될 수 없다. 설령 왕王이라고 불릴만한 해적이 있다 해도, 그들이 백성에게 자행한 잔혹함과 도적질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러한 말처럼 국가의 진정한 행복이 개인의 행복과 일치하지 않고, 국가 전체 또는 개인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이, 바로 국가의 목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부와 권력은 몽환포영夢幻泡影이지만, 혹자들이 국가의 본질, 목적, 권력, 통치 등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city nation를 정치. 경제. 종교. 문화에 대한 공동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사회형태로 보았고, 자급자족을 주요특성으로 하며, 인간이 도덕성을 함양해 가는 터전이라고 보았다.

그 후 16세기에 들어와서 근대적 국가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N.Machiavelli와 프랑스의 장보댕J.Bodin은 국가란 ‘안정을 이룩하는 결집된 권력’으로 파악했다.

루소는 국가의 권위란 군주의 통치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피치자의 일반의지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주권은 국민 자체이며, 법이란 다름 아닌 전체 국민의 의지로 보았다. 인간이란 본래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윤리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에 홉스T.Hobbes는 인간의 자연 상태란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것이다. 공동생활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파괴의 악순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개인은 국가의 지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로크J.Loke 역시 국가는 어떤 보호의 필요에서 생겨나며, 인간이 갖는 천부적 권리로 보았다. 국가는 사회계약의 산물로서 개인의 생명. 자유. 재산 등 자연권을 상호침해하지 않을 것에 동의하고, 그 대가로 각자의 자유영역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헤겔은 자유영역을 국가 전체로 보고, 자유란 개인의 권리라기보다는 인간이성의 결과로 보았다. 개인은 국가에 편입됨으로써 비로소 가족과 경제생활의 포괄적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것으로, 국가란 도덕적 행위의 정점이 된다고 보았다.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은 이성적 의지와 일치되고, 사회의 각 부분들은 전체의 번영 속에서 성장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국가란 지배계급이 무산 민중을 억압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법이 아닌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부富의 공정한 분배를 바탕으로 한 계급 없는 사회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20세기에 와서는 정부란 불필요하고, 어떠한 식으로든지 강제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유해하기까지 하다는 무정부주의에서 벗어나야 함은 물론이고, 국가는 국민들의 생존에 책임이 있음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복지국가를 지향하였다.

그 후 과열된 민족주의가 세계대전을 초래하고 나서, 켈젠Hans Kelsen 등은 국제주의 이론을 주창主唱하며, 국가를 단순히 총체적인 법질서로 정의했다. 국가의 존재와 경험만으로는 개인 이상의 권한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제의 내용들에서 보듯이 국가가 진정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견해들이 있다. 한마디로 이런 것이라고 개념 짓기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국가와 더불어 살고 있고, 국가가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며, 서로 유기적인 상호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가란 이런 것이라고 어떠한 의미를 두어도, 그 실체는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지속되어진다. 훌륭한 국가들은 지향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목적을 분명히 한다. 국가는 이 목적에 근접하는 만큼 행복을 누리게 된다. 어떠한 사상적, 논리적, 정치적 이론에 불구하고 그러하다.

인간의 행복에도 여러 레벨이 있듯이, 국가도 각기 본받고자 하는 목표에 따라, 행복의 높낮이가 달라진다. 따라서 정치지도자들이 국가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면, 국민들을 제대로 통치하기가 어렵다.

지금 우리는 매우 어려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들이 국가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대처하며 선정善政하는 일이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게 된다. 하지만 혹자들이 당리당략에 따라 패거리문화를 만들고, 선정에 힘쓰지 않는 것을 보면서 한숨을 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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