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전투에서 나라 지키던 소년 학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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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전투에서 나라 지키던 소년 학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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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총 한 자루와 주먹밥 1개 들고 싸운 학도병

 
   
  ▲ 유해 발굴 작업중인 한국 군인  
 

반가운 학도병 유해 발굴 작업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한 야선에서 1950년 7월에 학도병으로 전사한 30여명에 대한 유해발굴 작업이 한창이라 한다.

당시 전남 순천에 주둔하던 국군 15연대에 인근 지역의 전남 여수고, 여수공고, 순천고, 순천매산고 1~2학년생 180여 명이 찾아와 자원입대를 했다 한다.

이들 학도병들은 일주일 남짓 총 쏘는 훈련만 받고 전남 구례~경남 진주 전선에 배치됐다 한다.

소총 한 자루와 주먹밥 1개를 들고 3일간의 행군하여 경남 하동까지 갔지만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6사단 병력과 맞서 30여 명이 전사했다 한다. 학도병과 북한 정규군 사이의 첫 전투로 기록된 ‘화개장터 전투’였다고 한다.

1949년 학교마다 설치됐던 학도호국단이 6·25 발발과 함께 학도의용대로 바뀌면서 학도병이 됐다. 학도병들은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에서 3주일가량 훈련을 받은 뒤 소총 한 자루, 담요, 몸에 맞지 않는 군복을 지급받고 전방 부대에 배속됐다.

군번도 없이! 6·25전쟁이 삽시간에 국토를 유린하자 16~18세 꽃다운 청춘들이 나섰다. 학도병들은 개전 사흘째인 6월 27일 한강 방어전투를 시작으로 25만명이 전·후방에서 싸웠고, 그 중 5만 명이 직접 전투에 참가해 7,000명이 전사했다 한다.

감식단장 박신한 대령은 “모두 교복에 M1 소총 한 자루, 실탄 8발짜리 탄창 10개씩을 두르고 있었지만 제대로 총 한번 못 쏴본 것 같다”고 했다. 학도병들은 3년을 현역처럼 복무하고도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한국전쟁사에서 소외돼 왔다.

정부는 학도병을 국가유공자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고집했다. 18세 미만 소년병 징집을 금하는 국제법을 의식한 탓이었다. 학도병들은 2002년에야 ‘소년지원병’이라는 이름과 함께 참전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앞으로 전쟁 나도 이런 학도병 나설까?

이들 소년 학도병들은 꽃다운 나이에 국가를 위해 죽을 생각을 하면서 나섰다. 지금 만일 전쟁이 난다면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치겠다고 나서는 청년들이 얼마나 될까?

미군만 참전하지 않았어도 이미 통일이 됐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 강정구, 6.25를 남침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곤란하다며 북한이라면 무조건 퍼주려 노력하는 이재정, 군대 가기 싫다며 손가락을 자른 이광재, 병역비리 냄새가 풀풀 나는데도 병역비리 없다고 우기는 이명박 . .

애국도 없고 도덕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 화개전투에서 승화한 어린 학도병들의 희생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강정구, 이재정, 이광재, 이명박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화개전투 학도병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들이 바로 이 네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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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4-25 17:35:49
어떤수단으로든 군복무피할목적이면 국방의무실천에는 올바르진못해, 가슴에 마사토발라 X 촬영에 환자가된것도 비 애국적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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