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그 노래 왜 안틀어요?”
“무슨 노래?”
“아이. 그거. 또 하루 흩어져 간다... 하는 것 있잖아요!”
큰 아이는 특이하게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그렇게 좋아한다.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니까 아이가 매일같이 듣다가 세뇌가 되어서 그런 거예요”라는 게 아내의 주장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자주 듣는 것만으로 노래를 좋아하게 될까? “필요조건은 되겠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않을 것이다”란 게 내 생각이다.
노래를 자주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꼭 찝어서’ 그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자주 듣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피가 통해서 그렇다”란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 나는 그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마흔 고개를 넘기면서, 이젠 한 풀이 꺾여 그 정도가 조금 덜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내 차엔 그의 테이프가 항상 놓여있다. 어쩌다 노래방에 라도 가서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러야 할 때, 내가 즐겨 부르는 레파토리 중 하나이다.
잘은 모르지만 김광석은 서른을 지나고 마흔이 되기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마흔 즈음에’란 노래를 만들진 못했나 보다. 그가 좀더 오래 살아서 마흔을 넘겼었더라면 아마도 그와 비슷한 노래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내가 마흔을 넘길 때 ‘서른 즈음에’란 노래만 줄곧 들으며 버티는 것보다는 덜 힘이 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참 따뜻하고 편안하다. 그런 슬픈 노래를 그렇게 따뜻한 느낌의 노래로 만드는 그는 대단한 재주를 가졌다.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 더욱 서운하다. 하지만 그런 노래를 만들었던 그 자신의 마음은 힘이 많이 들었었나 보다. 그래서 그토록 절절한 노래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래서 빠른 세월에 세상을 떠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마흔이란 나이가 그에게 찾아오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는 내가 그토록 힘들게 넘었던, 마흔 고개를 넘기지 않아도 되었다. 그 고개를 한창 넘어갈 때, 그때는 그리도 힘이 들더니, 마흔하고 몇 살이 더 지나니 이젠 조금 마음이 안정이 되어간다. 아직은 젊은 데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렇게 힘든 것인가 보다.
‘서른 즈음에’의 가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하루하루 사라져 가는 날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 나온다. 그는 아마도 서른 고개를 넘길 때도 무척이나 힘이 들었을 것 같다. 아무리 천재적인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이 직접 아픔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런 감성의 노래를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
열병을 치르듯 마흔을 지나고 나서 지난날 들을 되돌아보니, 조그만 동산위에서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든다. 힘들게 지나왔지만 잘 참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 길은 힘이 들긴 하지만 끝가지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길인 것 같다. 물론 또 다른 고개와 언덕이 나타나겠지만...
“김광석에게도 세상은 힘든 벌판이었겠지만 그가 조금만 더 참고 견뎌낼 수 있었더라면, 지금 세상은 조금 더 훈훈할 텐데...” 라며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 사람의 삶은 때론 힘이 들고, 벗어날 길이 없을 것 같은 독한 아픔이 느껴지더라도 그 긴 터널을 지날 때까지 일단은 참고 견뎌보아야 하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인생이다.
“또 하루 사라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나에게 속삭이는 내 아이의 이야기에 기를 기울이면서, 내가 마음속으로 아들에게 해주는 충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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