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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당 이명박 전 시장 | ||
조선시대에서도 호적은 있었다. 당시의 호적은 양반이라는 신분을 과시하고. 과거 때 신분을 증명하는 데 사용된 중요한 문서였다.
호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양반들의 재산인 노비문서의 역할도 했다.
노비(奴婢)에서 노(奴)는 남자 종을, 비(婢)는 여자 종을 의미했다. 종들은 아버지를 모르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노비 문서의 성명을 예로 들면 이뿐이는 伊伊로, 개똥이는 介로, 칠돌이는 七乭 등으로 표시했고,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돌쇠, 떡쇠, 마당쇠 등 쇠(釗)자가 많았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양반, 상놈, 노비로 갈라진 신분제도는 일본 총독부에 의해 처음으로 파기됐다. 미국에서는 피비린내나는 남북전쟁을 통해 1863.1.1. 노예해방선언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일본 총독부가 상놈과 노비를 모두 명령 하나에 의해 해방시킨 것이다.
그리고 일본식민시절인 1923년 조선총독부가 조선호적령을 제정하면서 한국의 호적이 비로소 법에 의해 국가행정 차원에서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필자가 어렵게 구한 이명박家의 호적은 바로 1923년부터 시행된 일제관청에 의해 유지돼왔던 일본어 호적이다. 이명박 家의 본은 경주 이씨로 되어 있고, 이명박의 조부는 이종한(李鐘漢), 증조부는 이수발(李秀彂)이다.
이종한의 3형제의 이름은 이무특(李無特), 이경특(李景特) 이덕쇠(李德釗)로 되어 있으며 이 세 사람의 이름은 전혀 경주이씨 가문의 돌림자가 아니다. 조부인 이수발도 돌림자가 아니고, 이종한의 3형제 모두가 다 경주이씨의 돌림자가 아니다. 경주이씨 가문의 돌림자를 보면 ‘상(相)’자 위에 ‘우(雨)’자, ‘雨자 위에 鍾자, 鍾자 위에 圭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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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덕쇠라는 이름이 사라진 이명박 전 시장의 아버지 이충우씨의 호적이 호적에는 이덕쇠라는 이름이 한번도 나타지 않았다. 분명히 이덕쇠가 이충우로 개명했다는 근거를 기록해야 하는데 누가 보아도 이충우씨가 개명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 뉴스타운 | ||
이명박의 아버지 덕쇠(德釗)는 그가 33세 되던 해에 경주이씨의 돌림자인 雨를 사용하여 충우(忠雨)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후 그의 아들들의 이름을 경주이씨 돌림자인 상(相)자로, 딸들의 이름은 귀(貴)를 돌림자로 사용했다. 이 중에서 돌림자를 이탈한 남매는 ‘명박’(明博)과 ‘말분’(末紛)이다.
이명박과 이말분이 호적에 돌림자로 등록되지 못한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명박은 자작 영웅전 ‘신화는 없다’에서 ‘말분’을 ‘귀분’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기자들이 이명박에게 왜 당신만 돌림자를 쓰지 않았느냐고 묻자, 어머니의 꿈에 크고 맑은 달이 어머니 몸속으로 들어와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답변했다.
이명박은 그래서 돌림자를 이탈하였다고 치고, 말분은 어째서 돌림자를 이탈하였느냐고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그리고 호적상에 기록된 엄연한 ‘말분’을 이명박은 그의 자서전에서 ‘귀분’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의도된 거짓으로 보인다.
필자가 이명박 가의 호적을 샅샅이 분석한 것은 이명박이 그의 자서전을 왜곡하여 그의 부친이 유교풍을 이어받은 양반타입이라고 왜곡-미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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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의 할아버지 이종한씨 일제시대 호적이 호적을 보면 일본 이름으로 성씨를 李씨에서 (月山) 개명한 것이 보인다. ⓒ 뉴스타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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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의 할아버지 호적에 나타난 이귀선 씨의 일제시대 호적이명박 전 시장의 큰누나이며, 집안 장녀도 일본 출생이라고 기록 되어 있다. ⓒ 뉴스타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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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의 두 형(이상득, 이상은)의 일제시대 호적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이상은씨도 출생지 기록이 일본출생이며, 아버지 이름이 이덕쇠로 되어 있다. ⓒ 뉴스타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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