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그리워집니다. 세상인심이 팍팍하게 느껴질수록 무언가 의지하고 싶고 따뜻한 게 그리워 집니다. 그래서 “좋은 친구 세 사람만 있으면 인생농사는 성공한 것이다”란 말이 점점 수긍이 가기 시작합니다.
저는 요즘 글 쓰는데 재미를 붙였습니다. 글쓰기가 하나의 친구가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하는 고민, 내가 느끼는 느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빼곡이 글 속에 들어 앉아 있으니 글이 제일 친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이 아닌 글이 친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보면, 글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친구가 있지 않을까요?
얼마 전에 저를 무척 사랑해주신 외할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님은 당뇨에 고혈압까지 가지고 계셨습니다. 몇 년 전에는, 명절날 할머님을 찾아온 자녀들이 제각기 정성껏 해온 음식을 드시곤 그만 쓰러지셨습니다. 당뇨와 고혈압 때문에 음식을 잘 절제해 오신 할머님이, 자녀들이 장만해 온 음식을 드시느라 그만 당이 너무 높아져서 ‘당뇨병성 혼수’에 빠지신 것입니다.
각지에서 모여든 자녀들이 할머니의 병실을 지키면서, ‘큰 병원으로 옮겨야 되는 게 아닌가’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는 하루만에 깨어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뒤로 다섯 해나 정정하게 사시다가, 작년에 93세의 연세로 돌아가셨습니다.
노인네들이 흔히 그러 하듯이 할머님은 벌써부터 수의를 장만해 놓고 계셨습니다. 잘은 몰라도 아마 돌아가시기 전 십년도 더 된 오랜 옛날에 장만하신 것 같습니다. 금방 떠나시기라도 하듯이 항상 모든 소지품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계시던 할머님은 “그래도 하루라도 더 살아서 너희 아이가 크는 것을 봐야 할 텐데…”라고 하시며 늘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셨습니다. 그렇게 병을 다스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고통스럽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모시던 선배 중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를 하시길 좋아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이야기 중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관을 다듬는 노인(?)’이라는 글에 관한 이야기가 항상 기억에 남습니다.
그 글의 주인공인 노인은 십년이 넘는 기간동안, 언젠가 자신이 누워서 편히 쉬게 될 관을 만드셨다고 합니다. 손수 자른 나무를 다듬어 판자를 만들고, 손수 못질을 해서 관을 만들고, 칠을 하고, 반질반질하게 다듬으면서 그것을 그의 삶의 보람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 자신이 그토록 정성들여 만든 관에 누워 편히 쉬시게 되셨다고 합니다.
저는 할머니를 뵐 때마다 그 이야기가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할머니에겐 아마도 당뇨와 고혈압이란 병이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매일같이 약을 정성스레 드시면서, 당뇨와 고혈압 때문에 입맛에 맞지 않는 식사를 하시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손수 집안일이나 정원을 가꾸는 일을 하시면서, 할머님은 아마도 자신의 오랜 친구인 병과 긴 대화를 나누셨던 것은 아닐까요.
어려서부터 싸워가면서 몇 십 년을 같이 자란 친구처럼, 할머님에겐 어쩌면 몇 십 년 동안을 달고 살아온 지긋지긋한 바로 그 병이, 미운 정과 고운 정이 다든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그토록 오랜 세월 병을 지니고 살아 오시면서도 찡그리거나 원망하거나 한탄하지 않고 항상 밝은 얼굴을 간직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래요. 입에 쓴 약도 몸에 좋으면 보약이 되듯이, 꼭 내 입에 달고, 내 비위를 맞추는 것들만이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 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에겐 글쓰기 연습이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내가 그 글쓰기를 일종의 친구로 삼아 기쁠 때, 슬플 때,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글을 쓰는 것처럼. 할머님도 그러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곁에 찾아와서는 오랜 세월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는 그 지긋지긋한 병. 할머니는 아마도 그 병들을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혹은 친구로 맞아 들이셨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 병을 지니고 사시면서도 그토록 편안한 모습을 보이셨는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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