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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기만 한다"는 꾸중을 이유로 부모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인면수심의 30대 아들^^^ | ||
맹자는 어린 아이가 우물로 기어가려고할 때 구해주려는 마음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서,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루소는『에밀』이라는 작품 속에서 ‘인간이 태어날 때는 선하게 태어나지만 사회적 환경에 지배를 받음으로써 악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모든 교육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그는 ‘악과 오류는 어린이의 본성이 아니라, 외적 영향에 의해서 일어나므로, 가정교육은 이러한 악영향을 막고, 어린이가 자연본성에 따르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아동교육론은 성선설에 입각한다. 인간의 선함을 외부에서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발휘되도록 함으로써, 아동의 선함을 사회로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지만 사회적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이 악해진다는 점을 들어서, 아동의 교육은 자연주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인간을 식물에 비유하면서 성인이 아동을 나쁘게 만들지 않는다면, 착하고, 친절하며, 민주적인 방향으로, 자연히 성장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루소는 인간을 죄악시하려는 경향에 대하여 부정하고, 결코 아동을 혹독한 교육으로만 다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착한 성품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인간이 악해지는 이유를 환경 때문으로 보았다.
순자는 경험에 따라, 현실적 인간은 이기적이고, 약하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았다.
홉스 역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성악설에 둔다. 인간은 악하고, 충동적이며, 이기적인 존재이지만, 후천적으로 인위적인 교육과 환경에 의해서 선해진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인간본성 그 자체가 악하므로 충동, 욕망, 공격성을 지니게 되고, 인간의 성품은 악하며 선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루소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보아서 자유주의를 강조하면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 한 반면에, 홉스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보고, 리바이어던과 같은 강력한 군주의 통치아래 있을 때에만이 이기심을 억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선천적으로 선하게 태어났느냐, 아니면 후천적인 선으로 전향하는 것이냐에 차이를 둔다.
고자는 어린 아이가 어떻게 교육받느냐에 따라서, 선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들어서, 인간의 본성은 선도 없고, 악도 없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전재한 내용들로 살펴보면 정말로 인간의 본성이 착한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는 하는 것에 대하여, 서로 다른 말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요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선하기보다는 악하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싶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지 않다면 어떻게 부모를 때려서 죽이고, 굶겨서 죽이는가 말이다. 부모를 학대하는 불효는 옛날부터 가장 나쁜 죄악으로 보았다. 그런데 몇 푼의 돈 때문에 자기 조모를 살해하기도 하고,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친족까지 죽이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정말로 선한지를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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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본능에 따르지 않고 의지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수련을 오래하거나 도가 높은 사람들은 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반면 이성통제가 약한 사람들은 본능에 가까운 행동으로 사회에 많은 피해를 입히지요. 바로 범죄자들입니다.
결국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 약할때는 본인의 보호를 위해 착해집니다. 아버지에게서 거세의 위협을 느껴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것과 마찬가지지요.
반면 어느정도 성장을 하게 되면 교육을 통해 본능통제와 욕구를 표출하는 사회적으로 옳바른 방법을 교육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심리적 고착이나 언어적 고착과 같은 발달심리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즉, 인간은 어떤 교육과 물리적 통제 없이는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상상이 실현될 경우의 카타르시스에 대한 욕구를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 수많은 상상은 사회적 범주라는 테두리에 부딫혀 실행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우리가 말하는 범죄자겠지요.
본능에 충실한 삶, 인간은 애초에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사악합니다.
다만 이 모든 유혹을 참아가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 뿐이지요. 어쩌면 이런점에서 인간은대단한건지도 모르지요.
오랜 고행을 거친 스님들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게 바꿔말하면 얼마나 수많은 욕망을 참고 몸안에 가뒀으면 그런것이 생기는지 반문하게 됩니다. 물론 과학적인 의미로는 다르게 해석되지만요.
결국 인간은 서로의 본능을 인정하고 옳바른 방법으로 표출하면서 서로에게 피해가 될 수 있는 것은 통제하는 제어의 삶을 고수해야 할 것입니다.
간혹 발생하는 친족살해나 법의 이름으로 또는 오래전 종교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의 동의하에 인간이 인간을 고문하는 잔인한 행위는....설명할 길이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