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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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랫동안 실질적인 조선의 정궁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돈화문
ⓒ 뉴스타운 서명석^^^
창덕궁은 태종5년(1405) 정궁인 정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조선의 궁궐이다 임진왜란(1592-1598)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후 경복궁은 불길하다는 이유로 고종2년(1865)까지 폐허로 방치되었으나, 창덕궁은 광해군(1608-1623) 때 곧바로 재건되어 가장 오랫동안 실질적인 조선의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평지에 지어진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남북을 축으로 하는 일직선을 따라 엄격하게 배치된 데 비해,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의 건물들과 정자들은 산의 지형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창덕궁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점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뛰어난 점이 인정되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돈화문(보물)
창덕궁의 정문으로 태종 12년(1412) 처음 지어 졌고 광해군 원년(1609)에 중간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궁궐의 정문 중 가장 오래되었다. “돈화”는 백성을 가르치어 감화시킨다는 뜻이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진선문
ⓒ 뉴스타운 서명석^^^
▲ 진선문
진선문은 대문인 돈화문(敦化門) 다음에 나오는 일종의 중대문이다. 돈화문과 인정문 사이에 다시 한 번 문을 만들어 놓은 것은, 창덕궁 정전(正殿)인 인정전의 권위를 높이기 위함이다.

1908년 탁지부 건축사무소에 의해 시행되었던 인정전 개수공사 때 헐렸던 것을 1996년 복원을 착수, 둘레의 긴 회랑들도 같이 복원, 1999년 완공하였다. 진선문에는 억울한 일이 있는 백성이 와서 치면 왕이 듣고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주마고 하는 큰북이 달려 있었다.

태종대에 처음 설치하였다가 중간에 유명무실해진 것을 영조대에 다시 설치하였다. 이북을 신문고(申聞鼓)혹은 등문고(登聞鼓)라고 하였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금천교
ⓒ 뉴스타운 서명석^^^
▲ 금천교
금천교는 태종 11년(1411) 조성된 서울시에 남아있는 옛다리 중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다. 전통적으로 궁궐에 들어갈 때는 꼭 시냇물을 건너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이는 시냇물이 풍수설에 의한 명당수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숙장문
ⓒ 뉴스타운 서명석^^^
▲ 숙장문
숙장문은 돈화문으로부터 인정전 외행각을 거쳐 선정전 및 내전지역(內殿地域)에 이르는 주출입선상에 위치하는 문으로써, 외행각의 동측면이자, 어차고의 서측편에 위치한다. 북측으로는 인정문 좌월랑과 담장으로 연결시켰고, 남측으로는 인정전 외행각의 동행각과 연결하였다.

그러나 숙장문과 함께 인정전 외행각은 인정전 내행각과는 다소 틀어진 배치로 되어 있으며, 진선문과 함께 동서방향의 축(軸)을 형성하고 있다. 문의 전면에 해당하는 인정전 외행각의 내부 쪽에는 어도를 두었는데, 진선문 및 인정문과 연결된다. 어도는 중앙부와 양측부로 나누어 세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부를 양측부 보다 높여 두 단으로 구성하였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인정전
ⓒ 뉴스타운 서명석^^^
▲ 인정전(국보)
창덕궁의 으뜸되는 건물이다.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왕의 공식적인 행사를 거행하던 의식의 공간이다.

인정전은 태종 5년(1405) 창덕궁을 조성할 때 세워진 후, 임진왜란으로 불타 광해군 1년(1609)에 복원되었다 현재 인정전은 순조3년(1803) 화재로 이듬해에 재건된 것이다.

또한 순종 1년(1908) 내부의 일부가 서양식으로 고쳐 졌다 인정전의 정문인 인정문은 인정전과 함께 세워졌으며 현재의 것은 화재로 불탄 것을 순조 3년(1803)에 재건 된 것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인정전 처마
ⓒ 뉴스타운 서명석^^^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인정전 내 용상
ⓒ 뉴스타운 서명석^^^
인정전 내 바닥은 원래 마루가 아니고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중 일본의 역사 훼손과 우리나라의 뿌리를 없애기 위한 일환으로 마루로 변경하였으며 등을 상들리에로 변경하여 무도장으로 쓰였다 한다.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과거가 되살아 난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선정전 입구
ⓒ 뉴스타운 서명석^^^
▲ 선정전(보물)
선정전은 임금의 집무실이다. “선정”이란 정치를 베푼다는 뜻이다. 선정전이 처음 지어진 것은 세조 7년(1461)이다. 임진왜란을 포함한 여러 차례의 화재로 불타 인조 25년(1647)에 재건되었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대조전
ⓒ 뉴스타운 서명석^^^
▲ 대조전
왕비의 침전이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되어 1920년 경복궁의 왕비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은 것으로 내부는 일부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희정당
ⓒ 뉴스타운 서명석^^^
▲ 희정당(보물)
처음에는 임금의 침전으로 사용되었으나 나중에는 임금의 집무공간으로도 사용되었다. 지금의 희정당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7년 화재로 소실되어 1920년 경복궁의 왕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지어 졌다. 이때 내부의 일부는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성정각 또는 내의원
ⓒ 뉴스타운 서명석^^^
▲ 성정각 또는 내의원
성정각은 세자가 서연(학자들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던곳이다. 성정각 뒤의 관무헌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원래 내의원은 인정전 서쪽에 있었는데 1910년 대부터 성정각을 내의원으로 이용하였다. 내의원은 궁중의료기관으로 왕과 왕족의 병을 치료하고 약을 조제하던 곳으로 내국이라고도 불렀다. 내의원에는 의녀도 있었는데 이들은 남자의관에게 진찰받기 어려운 궁중 여성들의 치료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연경당
ⓒ 뉴스타운 서명석^^^
▲ 연경당
원래 이 집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의 덕을 칭송하기 위한 존호를 올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순조 28년(1828) 지어졌다. 이집은 대궐에 있으면서도 단청이 되어 있지 않고, 사랑채와 안채로 남녀의 공간이 구분되어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집을 연상시킨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부용지 및 부용정
ⓒ 뉴스타운 서명석^^^
▲ 부용지
부용지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에 의해 조성된 연못이다. 사각형의 연못은 땅을 의미하며, 가운데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하고 있다. 두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있는 부용정은 사방으로 지붕이 돌출된 열 십자 형태의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애련지 및 애련정
ⓒ 뉴스타운 서명석^^^
▲ 애련지
애련지는 언제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없고 애련정은 숙종 18년(1692)에 세워졌다. “애련”이란 군자의 덕으로 상징되는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 향나무
ⓒ 뉴스타운 서명석^^^
▲ 향나무(천연기념물)
동궐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향나무는 수령이 7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2m 뿌리부분 둘레 5.9m로 여러방향으로 뻗어있는 가지는 뒤틀리며 자라있다. 향나무의 목재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로로 사용되는데, 이 곳에 향나무가 심겨진 것은 동측 선원전이 제례의 공간인 것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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