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관련, 김유찬 '기자회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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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관련, 김유찬 '기자회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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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지도자는 지도자 다워야 한다는 것'

 
   
  ▲ 이명박 비리의혹을 밝힌 김유찬 전 비서관  
 

김유찬 기자회견 전문

최근 정가를 강타한 이명박 前 시장의 법정위증교사 및 제3자 간접화법에 의한 살해협박 등 이 전 시장의 도덕성문제를 제기한 저에 대해 이시장 측의 치졸하기 짝이 없는 반응에 대해 사건의 당사자인 저로서는 심히 유감스러움을 금할 길 없습니다.

차제에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저는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분들을 공격할 의사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아니합니다.

금번 사태의 발단은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후보인 이명박 전 시장의 대통령 후보로서의 적격성과 흠결을 따져야 한다는 전 한나라당 정인봉 전의원의 문제제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 자신 금번 사태에 대해 당사자의 한사람으로서 책임 있는 답변을 하여야 할 위치에 서 있습니다.

지난번 기자회견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10년 전 사건이긴 하지만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의 마음으로 당시 사건을 정밀하게 기록 세인으로부터 그간 받아온 오해와 질책에 대해 나름대로 해명하고 이해를 구하고져 출간 계획을 밝힌 것입니다.

저는 지난 10년이란 세월동안 정치와는 일정거리 거리를 둔 채 자숙하는 마음으로 침묵하며 묵묵히 생업에 종사해왔습니다.

지난 기자회견은 정인봉 변호사께서 국회기자회견을 통해 저를 실명으로 거론하셨고, 기자들로부터 빗발치듯 전화공세 인터뷰 공세에 시달린 나머지 일일이 대응할 수 도 없고 해 한 날 한시에 한자리서 입장을 밝히게 된 것입니다.

제가 곧 출간하게 될 책자의 내용은 제가 가까운 거리 지켜본 이명박 전 시장의 허와 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물론 지난 95년5월부터 96년 기자회견 때까지의 그와 함께 하면서 겪었던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지도자 다워야 한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입니다. 더욱이 한나라의 대통령을 꿈꾸는 자라면 자신이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인지 자신의 삶의 과정에서 흠결이 없는지를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최근의 이명박 전 시장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대중적 인기가 몇가지 그릇된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 일반국민은 이명박 전 시장의 ‘조작된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점’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책자의 내용 중 ‘조작된 신화 일그러진 영웅편’은 바로 우리 일반인들이 차마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는 이명박 전 시장의 국민을 상대로 한 이미지 조작행태가 낱낱이 고발되어 있습니다.

이 신기루 같은 허망한 조작에 의해 슈퍼맨 이명박이라는 신기루는 만들어졌고 온 국민은 이 조작된 이미지에 속고 있다는 점을 저는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신화조작은 현대건설회장 시절부터 국회의원을 거쳐 시장직을 수행하는 동안까지 치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전 시장은 대중기만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 자신을 영웅으로 만드는데 병적으로 집착 결국 성공한 듯 보입니다.

그는 그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집 ‘신화는 없다’라는 책자를 베스트 셀러로 만들기 위해 96년 선거 당시 종로지구당 조직책들과 그 부인들까지 총동원 그들에게 돈을 주고 자신의 책을 사재기함으로써 베스트 쎌러 순위를 조작하고 또 이 책을 다시금 종로지구당 부위원장 및 협의회장 등 당직자들에게 반강제적으로 강매하는 등 참으로 혀를 두르는 인기유지 전략을 서스럼없이 자행합니다.

우리 일반인들은 그의 이러한 치밀한 대중조작과 인기관리전략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며 그져 무조건적으로 신기루 같은 환상으로 그를 쫓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식과 부동산에서 묻지마식 투자가 패가망신을 불러오듯 대통령 후보에 대한 묻지마식 지지는 결국 우리 국민모두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5년 동안 똑똑히 체험한 바 있지 않습니까.

둘째 그는 매우 박덕하고 부도덕한 행보를 스스럼없이 행해온 분이라는 점을 일반국민들은 전혀 모른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범법행위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잔인할 정도로 태연스럽게 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저의 지난 96년 종로부정선거 양심선언은 돈으로 권력까지 사려는 금권정치의 그릇된 행태에 대해 일대경종을 울린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저 자신 모시던 주군을 공격하기까지 적지 아니한 갈등과 번민을 하였습니다. 우리사회의 보수적 정서는 자신을 모시던 주군에 대한 공격을 패덕한 배반행위로 규정합니다. 저는 사실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주군을 배반한 배반자라는 딱지가 줄 곧 꼬리표로 따라다니며 저를 괴롭혀왔습니다.

그러나 배반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같으면 자신이 모시던 상사가 이유없이 자신을 모욕하고 능멸하며 소모품처럼 쓰다가 헌신짝처럼 내버린다면 과연 그에 대해 충성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만일 여러분 같으면 사과하러 간 사람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면 그를 존경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부덕은 논하지 아니하고 법정에서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 부하를 힐란하고, 알량한 돈으로 위증을 교사하고 그런 사람을 주군으로 진정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를 더 이상 주군으로 섬기길 거부했고 그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질게도 제발로 새로이 찾은 직장인 이재창의원실 보좌관직조차도 갖지 못하게 온갖 험담과 힐란으로 물러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경우 제가 96년도 양심선언의 동기가 5급 비서관직을 요구했으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앙심을 품고 양심선언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이명박캠프에서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여론을 조작한 것으로서 사실과 다릅니다.

뭐 국회의원 비서관자리가 대단하다고 그거 안준다고 뛰처 나가 양심선언하고 그러했겠습니까? 당시 이미 마음이 떠난 터였는데…

저는 이명박 전 시장이 개인적으로는 매우 유능하고 추진력있으며 많은 국민들의 기대대로 도탄에 빠진 작금의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많은 자질을 갖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인간으로서 지녀야할 기본적인 도덕성을 결여한 인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예부터 수신 후 제가할 것을 권했으며 그 다음이 치국이요 평천하라 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일반인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성보다 훨씬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의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 그는 대통령감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를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는 그렇습니다.

그분은 교회장로로서 세인에 많이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행보를 보면 교회 장로님이라는 직분조차 자신의 출세를 이용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종교인으로 또한 신앙인으로도 적절치 않은 행보를 그간 해 왔습니다.

책자출간 소식이 알려지면서 제게 많은 이들이 그의 적절치 않은 행보를 알려왔습니다. 이 내용들은 정밀한 실사과정과 법률적 검토과정을 거친 후 ‘이명박 리포트’에 실리게 될 것입니다.

종로부정선거 당시 그는 사건이 불거지자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직을 잃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국민을 상대로 한 거대한 사기극을 벌렸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거짓으로 지어내었다고 우겼지만 결과는 그가 모든 것을 꾸민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그는 최근 그때의 사건은 자신의 인생의 최대실수라고 그리고 죄값을 충분히 치렀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저의 위증교사 주장을 통해 불거진 것처럼 당시 법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이끌어 내기 위해 선거법위반 공범관계가 있던 저에게 거액을 제시하고 위증을 교사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일반적인 범죄자들에게나 있을 법한 죄질이 나쁜 행위를 하고 나서도 이미 유죄판결을 받았으니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의 안이한 정신자세는 대통령후보로서 그 기본적 자세를 의심케하는 것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국법질서와 국민에 대한 모독인 것입니다. 물론 저 자신 이러한 범죄행위에 적극가담 그의 구속을 면하게 한 공범관계이므로 떳떳하다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시 상황이 함께 하던 동료들이 오랏줄에 꽁꽁 묶이어 법정에 들어설때 그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래 그냥 덮자 모든 걸 내가 뒤집어 쓰자!”고 결심하게 하였고 결과적으로 이명박 당시 피고인의 위증교사행위의 공동정범으로 스스로를 전락시킨 것입니다.

당시 저는 종로부정선거를 만천하에 고발하는 양심선언을 해 놓고도 주군을 배반했다는 세간의 따가운 눈총과 비난을 받아야만 하는 어려운 처지였으며 연약하고 정에 약한 인성은 그 모든 상황을 감내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상황이었습니다.

양심선언-번복편지-해외출국-검찰조사-기소-위증이라는 긴 과정은 한 유약한 인간의 번뇌의 과정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사건이후 다시금 그는 서울시장으로 화려한 컴백을 하였고 이제 청계천복원사업 등으로 그 국민적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자신의 과거는 완전히 정리되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인과응보의 법칙이 정확히 적용되는 것이며 손바닦으로 하늘을 가리지는 못하는 법, 이제 그가 그때 뿌린 거짓과 기만의 씨앗이 자라 이제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통령후보로까지 훌쩍 커버린 그의 코 앞에 성큼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뿌린 그것을 주어 담아야만 합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그와 서로 화해하고 용서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실제 제가 그 노력의 일환으로 98년 6월 3일 오후 서너시쯤 제2회 민선구청장출마를 하기 위해 그를 찾았을 때 그는 제게 격려와 화해 대신 노골적인 적개심과 제3자 화법을 통한 살해위협을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명박이었다니...” 저는 심한 충격 속에 휩싸였습니다. 당시는 2심 공판에서 이명박 전 시장에게 700만원 벌금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그때 그의 사무실을 나서며 그를 매우 협잡한 인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였고 사과차 그를 찾은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위해 분골쇄신하며 일한 지난 세월이 허망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의 잔인성은 자신을 위해 죽도록 충성한 많은 참모들을 해고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여지없이 들어났습니다. 신기루에 불과하기는 하나 오늘날 이명박의 화려한 명성은 주변인의 많은 이들의 노고와 숨은 땀방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마치 현대건설의 신화를 자신이 다 이룬 것처럼 행동하나 현대의 신화는 그가 혼자 이룩한 것이 아닌 현대맨들의 피눈물과 땀방울로 이룩한 것입니다. 그는 종로선거에서 당시 이종찬후보를 꺽고 압승하였으나 그것은 수 많은 선거참모들의 헌신과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던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지인들과 참모들에게 그가 준 것은 격려와 칭찬대신 모욕과 경멸 그리고 잔인한 해고조치였습니다. 그가 참모들을 해고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옹졸함과 박덕함은 그를 모셨던 모든 참모들을 ‘제2의 김유찬’, ‘제3의 김유찬’으로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앞으로 바로 그가 행한 박덕한 행위로 인해 많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이 다수 나올 것입니다. 그는 대통령을 꿈꾸기 전에 그가 소홀히 대하고 박덕하게 쫒아낸 그의 충직스러운 부하들에게 먼저 따듯한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진정한 주군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그리고 제가 주군을 배난했다고 비난하려면 먼저 그는 주군다운 행보를 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그를 모셨던 많은 참모들에게 진정한 주군이 아니었습니다. 이명박과 그들과는 ‘근로계약관계에 의해 고용된 회사의 주인과 머슴관계’였을 뿐입니다.

10여년 가까이 자신을 분골쇄신하며 모신 자신의 충직한 운전기사가 생활이 어려워 전세돈 200만원만 지원해 달라고 했다고 다음날 바로 해고하는 고용주를 여러분은 좋은 고용주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명박 전 시장은 지금은 고인이 되시고 말았지만 우리 나라 경제성장의 주역이셨던 정주영 회장 밑에서 초고속 성장한 인물입니다. 아마 한 30년 가까이 모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92년도 당시 정주영회장은 한국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때 이명박 전시장이 왜 자신을 키워주고 밀어준 30년의 버팀목 정주영회장을 배반하고 떠났는가는 오로지 이명박 전시장의 주장만 있을 뿐 정작 정주영회장측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명박씨의 배신에 대해 극도의 배신감을 정주영회장과 그 일가가 가졌을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배반자는 바로 제가 아니라 이명박 전시장 그 자신인 것입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주장대로 수백억 재산을 재직시절 상여금으로 받고, 셀러리맨의 신화로 추앙받게 끔 물심양면으로 밀어준 정주영회장을 버린 그가 배반자이지 왜 제가 배반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저는 차제에 왜 이명박 전시장이 고 정주영회장을 배반하게 되었는지 백일하에 드러나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은 그의 인격과 도덕성 그리고 의혹투성이인 그의 천문학적인 재산의 형성과정을 밝히는데 핵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도둑질해 번 돈을 그 스스로 밝히는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전 시장은 지금까지 현대 정주영회장 일가측과의 어색한 관계를 개선키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연치 않은 계기를 통해 알게 된 정회장 일가측 한 인사의 말에 의하면 이명박 전시장이 재직시절 정무부시장으로 근무하게 된 한 분이 바로 정씨일가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이 전시장이 현대 정회장 일가측과의 화해메신저로서 그를 천거 이명박 전시장 임기내 정무부시장으로 활동케 한 바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명박 전시장이 얼마나 현대 정회장님일가에 못쓸 짓을 하였고 큰 죄를 지었길래 서울시 정무부시장이라는 자리조차 자신의 과거를 덮기 위해 이처럼 뒷거래가 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최근 일련의 사태는 상당부분 이명박 전 시장이 스스로 뿌려놓은 업보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정인을 비방하거나 음해할 목적으로 기자회견이나 일삼는 그런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특히 최근 이명박 전시장측에서 저를 힐란하고 자신들에게 기웃거리며 거래를 시도했다는 식의 3류소설 같은 주장을 하고 있어 과연 이명박 전 시장캠프측이 이 나라를 진정 책임있게 끌고 나갈 능력이 있는 이들로 구성되어있나 의심케 합니다.

제가 10년의 침묵을 깨고 감히 다시금 국민 앞에 선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난 5년간 우리는 국가지도자를 잘못 뽑아 적지 아니한 고생한 터이기에 이제 좀 제대로 검증된 대통령을 가져보자는 이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명박 신기루라는 대중기만과 거짓명성에 현혹되어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할 수 있는 ‘묻지마식 투표’라는 작금의 상황을 예리하게 짚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선택은 국민의 몫입니다.

저는 아직 시작은 미미하나 어엿한 사업체를 영위하고 있는 대표입니다. 제가 지난 5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온 것은 상암동 DMC단지내 F1,F2블럭에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을 건립하는 사업입니다. 내외자를 포함 총 2조원 정도의 큰 돈이 들어가는 사업입니다.

이 사업은 이미 지난 2003년초부터 시작해 5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총 사업비 규모 20억달라로 경제파급효과도 크고 일자리 창출효과만도 25만명에 이르는 초대형 준 국책사업입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야 할 정도의 대규모 외자유치업무를 일개 민간인인 제가 그 어렵다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년간 2억원 상당의 출장비를 지불해 가며 세계 곳곳을 누빈 이야기는 눈물겨운 한편의 드라마입니다.

후일 저는 사업의 전과정을 기록하여 ‘신화의 눈물’이라는 제하에 사업과정의 애환과 교훈을 후세에 남길 것입니다. 당시 저는 우연치 않은 계기를 통해 미국계 부동산 투자 및 중개네트워크인 NAI의 한국측 대표를 맡게 되었고 그 이후 5년간 동 사업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상암동 DMC단지내 랜드마크 빌딩 건립사업은 총 2조원 가량 소요되는 초대형 시행사업으로 2003년 8월 당시 저는 한국외국기업협회 (FORCA)측과 공동으로 동 사업에 소요되는 사업비 중 13억달라(한화 1조 3천억상당액)를 미국 NAI그룹으로부터 투자의향서를 받아 한국외국기업협회를 경유 서울시측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당시 서울시측에서는 동 13억 달라 투자의향서의 진위확인을 위해 미국NAI그룹측에 재차 투자의향서를 발급해 줄 것을 요청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동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이 전시장의 명에 의해 그의 최측근 중의 한 분이었던 최 모 당시 산업경제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외자유치 사절단을 구성 미국 달라스에서 2003년12월1일부터 7일 간 IT관련 기업 투자설명회를 개최하였고, 이때 2003년12월 4일 오후 2시경 미국 달라스 포시즌호텔에서 NAI그룹의 제럴드 핀회장,제프리 핀사장 일행을 서울시 최 모국장 등이 만나 제가 제출한 13억 달라상당의 투자의향서의 진위여부와 투자의향을 직접 서울시가 확인 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이 자리에서는 NAI측이 동 금액에 대한 투자의향이 있는 경우 서울시측에서는 해당사업 사업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의 경우 수의계약 형태의 계약의사가 있는 것처럼 미국 투자사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고, 저는 이를 근거로 동 사업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과거 이명박 전시장과의 개인적인 악연도 있고 해 ‘김유찬’이라는 실명대신 미국명인 ‘리처드 킴’이라는 이름으로 동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 미국 투자사측에서 예상하였던 것과는 달리 서울시측에서는갑자기 사업방식을 변경 2003년 5월20일 동 사업권에 대해 국제입찰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결정하였고, 수의계약 하에 진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진행하던 동 사업은 그 근본부터 흔들리는 등 매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서울시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13억달라라는 적지 않은 외자도입 가능성을 구태여 마다하고 국제입찰로 전격 사업방식을 교체하였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여하간 서울시측이 동 사업에 대한 수의계약방식을 급선회하고 국제입찰방식으로 전환하여 어쩔 수 없이 저는 제반 사업계획서와 입찰서류를 준비하여야만 하였습니다. 현재까지 제안서 제작비용을 포함 총 30억여원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저와 동업자 개인들의 신용과 빚입니다.

어느 날 서울시측으로부터 난데없이 저의 개인 프로필을 보고하라는 내용이 전달되었고 저는 왜 국제입찰과정에는 전혀 필요 없는 시행사대표의 개인 프로필을 보고하라는 것인가 의아해서 당시 최 모 국장을 만나 그 자초지종을 묻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이 전시장실의 특별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답변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최국장과의 긴 시간에 걸친 면담에서 이명박 전시장과의 10여년 악연을 설명하며 다만 이제 그분도 공인이시고 본인도 세계적인 유수 부동산 투자기업의 한국대표를 맡아 국익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고 있느니만치 과거의 사감을 모두 버리고 대승적 견지에서 상암동 사업을 추진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습니다.

그 후 미국측에서는 서울시 정책의 표변에 대한 불신 때문에(이명박시장의 개인적 사감이 작용한 듯함) 동 국제입찰에 100억원 상당의 입찰보증금을 걸어가면서 동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알려왔고 이에 저는 100억원 상당의 입찰보증금 마련을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 결국 2003년12월6일 유찰이라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2003년 12월 6일 유찰 이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애초 2005년 2월초 재입찰을 하겠다고 해 놓고서는 그의 시장 임기가 다 마치도록 동 사업을 진행시키지 않아 전술한 바와 같이 저로서는 총 30여억원 이상의 추가비용이 발생하였습니다.

몇 차례 요로를 통해 동 사업의 신속한 진행을 촉구도 해보았지만 이 전시장측은 재임기간 내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전시장측이 저와의 구원을 의식하여 제 사업에 대한 고사작전이었던 듯 싶습니다.

2005년 9월경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이시장의 측근이었던 C모씨가 찾아와 이명박 전시장이 자신의 뒤를 봐주고 있다며 자신이 상암동 랜드마크 빌딩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4년을 오로지 동 사업에만 전념해 온 저로서는 이 전시장의 객관적이질 못한 행보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 그는 이 전시장을 서너차례 만났으며 이 전 시장이 상암동 130층 사업을 적극 밀어주고 있다고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도 결국 이 전시장의 말을 믿고 동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십수억의 손해만 보고 현재 파산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초대형 국책사업에 준하는 상암동 137층 랜드마크 빌딩사업을 개인적인 사감 때문에 사업추진 일정을 질질 끄는 등 납득할 수 없는 행보를 계속해온 이 전시장측은 몇몇 자신을 방문한 지인들과의 대화 자리에서도 ‘김유찬’이에게는 절대로 상암동 사업권을 줄 수 없다는 등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어 공인으로서의 자질이 참으로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이는 시장재직시 행정권한의 남용이요 횡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이 전시장측이 공개적으로 답변해야할 차례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국민여러분에게 용서를 구할 사항이 있습니다. 96년 기자회견 후 동 건의 확산을 덮는 과정에서 저는 있지도 않은 이종찬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측과의 3억원 거래설에 대해 ‘ 3억원 거래사실 있었음’이라고 법정에서 위증하였습니다.

물론 이명박 전 시장측의 교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당시 저의 양심선언 기자회견의 순수성을 어떻게든 훼손시켜야만 이명박씨 자신이 살아날 수 있는 ‘ 제로썸 게임’의 구조였기에 이 시장측 인사들은 제게 이종찬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측과 3억원을 거래하기로 했다고 허위증언을 해 줄 것을 요청해 왔고 이에 저는 “모든 것을 내가 뒤집어 쓴다!”차원에서 바보스럽게도 양심선언의 순수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하게 된 이종찬 당시 부총재측과의 3억원 거래설이 있었다고 허위증언하고 말았습니다.

세간의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천추의 한이 되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전술한 바대로 이제 곧 동 사건의 전 과정을 소상히 기록한 책 ‘이명박 리포트’가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당시 이종찬 새정치 국민회의 부총재, 김대중 총재 그리고 국민회의 관계자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새정치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측과 3억원 거래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해 주었다는 김대중 당시 새정치 국민회의 총재의 추인설은 조작된 것입니다.

양심선언을 하기 바로 전날인 96년 9월9일 오후 11시 30분께쯤 저는 기자회견을 결심하고 최종적으로 김대중 총재의 자택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김대중 총재는 “김유찬 동지와 같은 이의 의로운 행동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라는 취지의 격려를 받은 것이 김대중 총재로부터 들었던 전부이며 3억원을 보장하겠다는 식의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 구속된 이명박 전 시장측 이 모비서관 강 모부장 등과 출국직전 만나 해외도피키로 하였을 당시만 해도 김대중 총재 및 이종찬 부총재측과 양심선언 댓가로 3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3억원 거래설에 대해 일관되게 강력 부인한 바 있었지만 이후 법정 진술과정에서는 이 전시장측의 위증교사에 의한 3억원 거래설이 사실인양 허위진술을 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저 자신 당시 새정치 국민회의측 인사들과는 정치적 성향은 달랐지만 당시 사건이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극력 경계할 수 밖에 없었고 더욱이 함께 하던 동료들이 구속되는 등 예기치 않은 상황전개로 이명박 전시장에 대한 전의를 접고 그 대신 양심선언내용의 번복과 동료 감싸기, 위증 등 일련의 바르지 못한 행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이명박 전 시장측에게 양심을 판 댓가로 받은 돈 1억 2500만원 전액은 적절한 시점에 돌려드릴 것입니다. 그것이 한 세상 마음 편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96년 양심선언 당시 저의 경제상황은 호구지책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어려웠고 이를 꾀뚫고 있었던 이명박 전시장측의 허위증언 교사에 대한 순응은 당시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 절막한 선택’이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돈 몇푼 때문에 양심을 팔아야 하는 저와 같은 불행한 인물이 나오질 않길 바랍니다.이유야 어떻든지간에 당시 국법질서를 교란시키며 위증하고 당시 법정을 모독한 점에 대해 당시 담당재판부와 국민여러분에게 참으로 송구하고 죄송합니다.

아울러 이명박 전 시장께서도 자신의 땃떳치 못한 행동을 커버하기 위해 꿈 많은 젊은이를 돈으로 매수하고 그리고 결국 그 삶을 철저히 파괴해버린 부분에 대해 법적 책임 유무를 떠나 인생의 선배로서나, 신앙인으로서나 바람직하질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진실을 왜곡하며 국민을 호도하질 마시고 진실을 인정하고 당신을 지지하는 많은 국민여러분에게 용서를 빌며 다시금 기회를 달라고 하시는 것이 대통령 후보다운 행보입니다.

아무리 가리려 해도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2007년도 2월 21일
서울아이비씨주식회사 대표이사 김 유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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