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진부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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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향기> 소설에서 영화, 다시 드라마까지

^^^▲ '남자의 향기' 한 장면
ⓒ iMBC^^^
MBC 수목드라마 <남자의 향기>는 95년 출간된 하병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출판계의 베스트셀러였으며, 98년에는 장현수 감독에 의해 김승우, 명세빈을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이 작품이 다시 5년의 세월을 거쳐 이제는 TV에서도 리메이크되기에 이르렀다. 안재모와 한은정이라는 청춘 스타들을 기용한 트렌디 드라마의 모습을 하고서.

국내에서 동일한 작품이 소설과 영화를 거쳐,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진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대중적인 매력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어떤 특별한 작품성을 지닌다거나 동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을 대변할만한 사회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남자의 향기>는 조폭 액션, 신파, 근친간 사랑 등 이미 다양한 매체들을 통하여 반복되어왔던 상업적 코드들을 이리저리 끌어모아서 뒤섞어놓은 비빔밥이다.

90년대 중반에 잠시 부활했던 최루성 멜로의 유행붐과 출판업계의 트렌디화는 <남자의 향기>의 상업적 성공과 무관하지 않다.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남자, 거기다가 주먹실력도 최고인 전형적인 겉멋형 조폭 권혁수, 남자의 처분에 모든 것을 맡기는 청순가련의 표본 신은혜의 캐릭터는 다분히 비현실적이고 진부한 인물들이지만, 그래도 낭만적인 판타지를 자극하는 신파의 매력으로 어필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영화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영화 <남자의 향기>는 액션도 멜로도 아닌 어정쩡한 색깔에, 소설과 전혀 차별화되지 못하는 진부한 구성,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로 인하여 참패를 겪어야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 작품으로 스타덤에 오른 명세빈의 스크린 데뷔 시절을 볼수 있다는 것, 덤으로 이범수와 장세진, 이요원, 김래원 등의 무명시절도 확인하며 웃을 수 있다는 정도?

트렌디 드라마로의 또다른 변주

^^^▲ <야인시대>로 스타덤에 오른 안재모는 '김두한'에서 '권혁수'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 iMBC^^^
<남자의 향기>의 내러티브는 사실 지극히 고전적이다. '사랑밖에 난 몰라'를 외치는 순정파 남녀주인공과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악당, 무조건적인 의리와 헌신 등을 남자다움처럼 강조하는 분위기는 80년대 이현세의 열혈만화나 영웅본색류의 홍콩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다.

뭐든 못하는게 없지만 사랑때문에 늘 손해보는 '열혈남' 권혁수의 캐릭터는 '까치' 오혜성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고, 뭐든 잘하는게 없지만 남자 잘만나서 회생하는 '청순녀' 신은혜의 캐릭터는 '엄지'의 모습을 재생시켜 놓았다.

이런 80년대적 정서로 무장한 원작을 어떻게 2003년의 현대적 정서에 걸맞게 치환시킬 것인가? 드라마 <남자의 향기>에게 맡겨진 숙제였지만, 드라마는 한 마디로 별다른 문제의식없이 뻔한 상업적 코드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무기력함을 보여준다.

조폭과 신파라는 다소 철지난 소재를 그대로 부각시키면서, 드라마는 현재 주가를 높이고 있는 젊은 배우들의 스타 시스템으로, 진부함을 살짝 덮으려 한다.

<야인시대>로 스타덤에 오른 안재모는 '김두한'에서 '권혁수'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전혀 달라진게 없는 겉멋형 액션 히어로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활용한다.

90년대 후반부터 사극과 현대물을 오가며 시절의 안재모는 비록 대중적인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폭넓은 연기력과 나이에 맞지 않는 중후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야인시대>의 성공과는 별도로, 안재모는 액션과가 아니다. 배우가 상업적인 성공에 현혹되어, 스스로 비슷한 이미지를 울궈먹는 것은 자기자신을 이미지의 한계속에 가두어놓는 일이다.

^^^▲ 극중 신은혜는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청승가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iMBC^^^
신세대 바비인형으로 주가를 높인 한은정은, 드라마 초기부터 연기력이 도마에 올랐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배우보다 소설과 드라마의 전형성을 전혀 탈피하지 못한 극본의 부실함이다.

극중 신은혜는 2003년의 현재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남성의존적이고,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청승가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까지 신은혜가 극중에서 한 일이라곤 주로 울거나, 납치되거나, 사고를 쳐서 권혁수가 뒷수습하는 일의 반복이다. 도시적이고 도발적인 모습으로 스타덤에 오른 한은정의 이미지와 극중 신은혜의 수동성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연기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드라마에서는 영화나 소설과 다르게 이들 주위를 받쳐주는 조연들을 많이 설정해 놓았지만, 별다른 매력을 가지지 못할 뿐더러, 독자적인 스토리가 전혀 없다. 한 마디로 친구든 적이든,모두 이 커플의 비극적인 사랑을 돋보이게 해주려고 장치된 소도구일 뿐이다. 더구나 정찬이나 이형철, 이주현 등 개성있는 배우들이 하나같이 이미지에 걸맞지 않거나, 별다른 매력없는 부실한 캐릭터들을 맡아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도 아쉬움을 더해준다.

<남자의 향기>는 다분히 남성 중심의 마초적 판타지를 부각시키고, 여성을 수동적이고 남자의 처분만 기다리면 되는 존재로 묘사하는 시대착오적 편견이 내재해 있다. 여전히 조폭들을 멋진 환타지의 세계로 미화하는 뻔한 상술이 아직도 통용된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드라마는 여전히 존재한다. 욕도 많이 먹고 유행이 지나서 사라질 법도 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다시 일어서고 또 다른 모습으로 지겹게 재생되는 걸 보면, 여전히 조폭과 신파는 무시할수 없는 마력을 지닌 소재라는 걸 부정할수 없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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