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팔'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한마디의 말은 배운 것들인 애들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리라. 백화의 아니 이점례라는 스물 둘 앳된 처녀가 주는 씨팔이라는 말에서 난 무엇을 느끼는가. 그녀의 말 한마디에 삼포를 가는 영달과 정씨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년 성깔 참 고약하다고 말해야 할까. 하늘은 한없이 눈이 내리는 백색의 고요한 세상인데 분위기를 깨버리는 그녀의 말 한마디가 가슴깊이 파고든다.
눈 내리는 겨울날은 한없이 예쁘기만 한데 하늘만 바라보고 살면 좋으련만 하늘아래 그네들은 가야만 한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아름답건만 내 삶은 씨팔이다...공허함과 연민이 교차하는 씨팔...이말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삶의 뜻하지 않은 방향타가 백화와 정씨와 그리고 영달을 이끌기에 오늘도 걸을 수밖에 없는 그네들이 내뱉을 수 있는 마지막 오기와 독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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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의 삶에서 그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온 떠돌이 인생들이다. 나이 먹기하고 땅따먹기하고 옆집 담벼락 넘어 감도 따먹고 눈 내리는 겨울날은 뒷동산 올라가서 옷 다 젖을 때까지 놀았던 유년의 기억이 있는 그들이다. 부짓갱이로 지 엄마한테 뒈지게 얻어터진 전라도 시골꼬맹이 들이었다. 순박하기만 했던 시골 촌놈, 촌년들이 왜 고향을 찾아가는 그 길에서 아리디 아린 가슴을 쓸어야 하는가.
삼포 가는 길 위에서 고향을 뛰쳐나온 그들의 귀향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어두운 모습이다. 세상은 고요하고 아름답건만 터벅터벅 길 위를 걷는 그네들의 발걸음은 무겁다. 이리저리 돌아다닌 발이건만 이제는 저도 모르게 고향이라는 곳을 찾아가고자 한다. 그래도 그곳에는 나를 받아줄 안식이 있다라는 확신이 있기에 믿음이 있기에 걷는다.
하지만 이내 무너져 버리는 세상의 진실은 지나친 그들의 희망이었나 보다. 멀리서 무임승차한 나 자신은 과연 무뎌지고 지쳐버린 그들의 마음을 들춰보며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런 말을 하려는 내 자신이 참으로 초라하다. 그런 말을 감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려 한 순간 점례의 악에 찬 씨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가난한 시골집은 주렁주렁 매달린 호박 마냥 자식새끼도 많다. 허구 헌날 반복되는 가난의 연속에서 가끔 읍내를 통해 들리는 도시의 환상들. 그렇게 그네들은 집을 나섰겠지. '나도 벗어나겠다. 이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라는 일념에 그들에게 도시는 기회의 땅이요 희망의 땅이었으리라.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가 시골에서 벗어 나온 길이다. 하지만 장밋빛 인생을 선사할 것 같았던 콘크리트 도시는 결코 호락 하지 않다. 꾸역꾸역 밀려오는 시골 뜨내기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초라한 잡일과 하루살이 인생인 것이었겠지. 그렇다고 집에 갈 수 있나 조금만 더 벌고 조금만 더 모으고 내려가리라는 다짐은 어느덧 십년, 이십년 이란 세월을 흐르게 만들어 버린다. 분명 약속의 땅은 그들을 불렀지만 약속의 열매는 없고 남은 건 빈 껍데기와 푸석해진 마음뿐이다.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반복의 악순환처럼 그들의 삶에서 난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눈물이라고 말하겠다. 푸석해진 마음을 끌면서 나누는 떠돌이 인생들의 대화에서 도시화를 찾아 날아온 어설픈 불나방들의 힘겨움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불나방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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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 표지 ⓒ 네이버 | ||
삼포를 찾아가는 정씨, 그는 왜 이제야 가는 것일까 어쩌면 돈벌어 오겠다며 큰소리 떵! 치고 나온 길이기에 쉽사리 접을 수 없는 길이었을지 모르겠다. 고향을 등지고 나온 '한강'의 천두만처럼 그는 자신의 촌놈정신을 믿고 도전하고 또 도전했겠지. 천두만의 밑바닥 인생의 악착함이 그와 일치되건만 돌아온 건 똑같이 등에 착 달라붙은 한 자루 가방뿐이다. 그리고선 십년 이라는 시간이 준 것은 결국 고향이라는 그리움에 가득 찬 향수뿐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이 있다는 희망은 눈 내리는 겨울 길을 걷고 또 걷게 했다. 그런 그에게 불도저로 뒤엎어져 버리는 삼포는 그가 십년 동안 겪어온 삶의 반복을 알리는 암시가 아닐까. 결국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가난, 사회에서 갖은 게 쥐뿔도 없는 이들에게 남게되는 건 모난 톱니바퀴 인생뿐이다. 역에서 정처를 잃어버린 정씨의 씁쓸한 웃음에서 차마 책을 덮어버릴 수 없는 애증을 느낀다.
자신에게 간섭하는 이에 대한 본능적 적대심이 가득 찬 영달은 마음속에 옥자가 있다. 떠돌이 인생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심어준 옥자와의 추억에 살아가고 있는 사내. 본인들은 밑바닥 인생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하룻밤 떡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정작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담고 살아가는 모습을 영달을 통해 느낀다. 결국은 사랑도 가난이라는 것이 최대의 원수가 되어 영달을 잠못 이루게 하건만 속 시원히 반항 못하는 영달의 삶은 무력하기 그지없다.
결국 추억이라는 기억을 더듬으며 정처 없이 그를 떠돌게 만든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벌어도 벌어도 나아지지 않는 세상벌이는 그의 인생을 갉아먹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착취가 불러오는 아픔이다. 다시 한번 찾아온 점례와의 만남에서 쉽사리 발을 띠지 못한 영달의 결정 뒤에도 사랑을 옥죄고 있는 사회의 어둠이 무서웠기 때문이리라. 끝까지 가난으로 대표되는 착취는 밑바닥 인생에게 감정의 솔직함마저 현실세계에서 뺏어간 것이다.
점례...70년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하물며 시골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백화가 고향을 벗어나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걷게 된 화류계의 길은 예정이 되어 있었던 것일까. 혹자는 쉽게 몸을 팔아 호식하려는 그녀의 의식을 욕할지도 모르겠다. 의지가 약한 여인의 전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유시민이 말했듯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시골아이들이 용산역에서 북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588이요, 남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구로 공단 공순이의 길이었다'는 말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면 난 결코 점례를 욕할 수 없다.
오히려 세상살이에 녹슬 대로 녹슬어 버린 그녀의 감성에 삶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하룻밤 사랑들을 용인해 주고 싶어진다. 도망치듯 길을 떠나는 점례가 찾아가고 걸어가는 고향길에서 영달과의 애틋한 감정이 함께 싹트기를 기원했지만 내 짧은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못하는 그들의 삶은 결국 현실이 짖누르고 있는 무게의 힘겨움이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상이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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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 표지 ⓒ 네이버 | ||
여기서 60-70년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라도에 대한 착취다. 아픔이 고스란히 베여 있는 땅 전라도. 그 속에 살아가던 정 많던 시골출신들은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도시를 향해 고향을 등졌으며 그 행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비단 시골이면 어디나 같은 상황이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소외된 땅이기에 삼포 가는 길의 두 주인공의 삶에서 전라도의 아픔도 함께 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개발을 위한 변화 속에는 변화를 위한 도구로 착취당한 밑바닥 인생들 그 기저에는 결국엔 한으로 응어리진 전라도의 슬픔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발에서 가장 소외를 받은 그곳이 현재도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있으며, 그곳을 언젠가 찾아가게 될 오늘날의 또 다른 정씨와 점례는 계속해서 도시를 찾아 상경한다. 그리고 떠돌고 있다. 결국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화되지 않은 모순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과연 오늘날은 우리는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 먹고 살만해 졌다고는 하나 밑바닥 인생에 대한 배려는 외면 받는 이 사회의 현실에서 말이다. 나는 쉽사리 말을 못하겠다. 그저 부끄럽다.
삼포 가는 길에서 눈 쌓이는 시골길을 걷는 그네들의 모습이 너무도 정겹게 다가온 것은 왜일까. 투박하고 직설적인 그들의 언어에서 거부감보다는 나도 모르게 끄덕이는 공감이 신기하다. 사람은 결국 보여지는 것에 대한 판단보다는 그들이 걸어온 여정을 알고 난 이후의 삶에서 더 감동을 받는다. 점례. 영달. 정씨가 나에게 삶의 진솔함이 무엇인지 느끼게 한다. 비록 그들이 살아갔던 삶이 버겹고 힘들었어도 인간성을 잊지 않았던 내면의 모습은 거창한 삶의 이야기보다도 더욱 값지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픔으로 다가온다.
끝내는 꿈이 무엇이었는지 잃어버리고 돌아가는 발걸음. 또한 그들의 진솔함과 반대되는 가혹한 현실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때, 세상살이의 모순이 결코 쉽게 고쳐지지 않으리란 암시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소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네 삶이었기에 또한 계속되고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세상이 바라보는 그들에 대한 시선이 삼포를 뒤짚어 엎는 불도저의 바퀴자국 마냥 날카롭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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